[노트북을 열며] 친일파 대 반국가세력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장악했을까? 21세기에 생뚱맞은 질문 같지만,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그렇다’가 답이다. 서울 지하철역과 전쟁기념관에 설치돼 있던 독도 조형물이 사라진 게 근거다. 서울교통공사는 물론 대통령실까지 나서 “노후화된 조형물을 독도의날에 맞춰 새로 단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민주당은 “도둑이 제 발 저린가 보다”(윤종군 원내대변인)라고 받아쳤다. 국군의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는 소식엔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 설립일과 겹치는 것은 우연인가”(강득구 의원)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 회의에서 ‘친일파’를 언급하는 횟수도 잦아졌다. 이번 달에서만 벌써 18차례 등장했다. 똑같이 총선이 열린 2020년엔 지도부 회의에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2016년엔 1년 중 딱 한 번 언급됐다. 친일몰이의 정점엔 이재명 대표가 있다. 그는 지난 14일 유튜브 방송에서 “독립기념관장 같은 건 단편적 현상처럼 보이지만, 독도 문제는 꾸준하게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며 독도 조형물 이슈를 처음 꺼냈다. 지난 25일엔 병상에서 민주당에 ‘독도 지우기 의혹 진상조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반대로 여권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엔 반(反)국가세력이 활개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제주 4·3 사건을 “남로당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했다. 1999년 한나라당 주도로 만든 4·3 특별법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김 후보자는 2019년 거리 집회에서 “정부, 법원, 검찰청, 언론기관, 학교마다, 골목마다 시뻘건 빨갱이가 여러분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고 말한 인물이다. 김 후보자는 향후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친일파 대 반국가세력.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에서 협치가 들어설 공간은 없다. 대화와 타협이 악마와 손잡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나 종교 문제에 대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 심장이 요동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과는 토론이 불가능하다. 심장이 요동치면 두뇌는 멈추기 때문이다.” 독일의 정치학자 로베르트 미헬스가 『정당사회학』 서문에 적은 말이 요즘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일 듯하다.
오현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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