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총량제’ 사실상 부활

정진호, 곽재민 2024. 8. 2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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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사실상의 대출 총량 규제를 부활시켰다. 은행별 올해 대출액이 기존에 제출한 계획 수준을 넘어서면 내년도엔 대출 한도를 줄이는 페널티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 개입을 예고한 지 이틀 만이다. 당장 은행권에선 실수요자들 중심으로 ‘대출 절벽’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은 브리핑을 열고 이런 내용의 가계부채 대응 방안을 내놨다. 이에 앞서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내에서 관리하겠다고 해 왔다. 이 같은 기준으로 올해 초 각 은행으로부터 자체 가계부채 관리 목표를 제출받았다. 올해 경영 상황 등을 고려해 연말까지 가계대출 잔액이 어느 정도로 늘어날지 계획을 세우라는 취지다. 이때까지는 페널티를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금감원은 경영계획상 대출 목표를 초과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내년도 은행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계획 수립 시 평균 DSR 관리 목표를 낮추기로 했다. 원리금,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예컨대 평균 DSR이 30%인 은행의 DSR 목표를 25%로 설정하면 신규 대출 한도가 대폭 줄어들게 된다.

금융당국이 이 같은 대응책을 들고나온 건 6월부터 급증한 주담대가 이번 달까지 계속해서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NH농협을 제외한 4곳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 21일 기준으로 모두 계획 수준을 넘어섰다. 금감원이 제시한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말까지 대출 잔액을 줄여야만 한다는 의미다.

당장 은행권에 ‘대출 절벽’이 들이닥칠 가능성이 커졌다. 사실상 올해 남은 기간 은행별 대출 한도가 정해진 만큼 신규 대출 취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당국이 은행별로 관리하는 건 관치” 대출 실수요자까지 피해 가능성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대출 실적이 계획보다 1조8000억원 더 늘어난 은행이 있는데, 이런 은행이라면 앞으로 신규 대출을 많이 취급하지 못한다는 의미”라며 “7~8월 (가계대출) 증가 폭이 관리 수준을 벗어났다.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선 실수요자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용과 담보가 충분한 금융소비자라고 하더라도 대출 총량을 넘어서지 않기 위해 주담대·전세자금대출 등을 중단할 수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은행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한도가 남아 있는 은행을 찾기 위해 창구를 돌아다니는 대출 수요자가 나타날 것”이라며 “지난 정부 대출 총량제의 부작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대출 승인을 받은 사람은 예외를 둘 수 있겠지만 매매를 준비하며 이사 계획을 세운 ‘그레이존’에 있는 사람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부동산이 꿈틀하면 가계대출을 막고 잠잠해지면 대출을 늘리는 인위적 조정이 반복되고 있다”며 “2021년 인위적 대출 중단으로 이사를 앞둔 실수요자가 대출이 안 돼 못 가는 등의 일이 벌어졌는데 똑같이 실수요자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국이 은행별 DSR 목표치를 정해 가계부채 증가 폭을 관리하는 건 말 그대로 관치”라며 “은행이 제각각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대응하다 보니 금융 소비자 입장에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은행별 대출 한도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차라리 전세자금이나 정책 대출 등에 대한 DSR 규제 확대와 같은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은행이 실수요자 대출 중단이나 금리 인상 대신 갭투자 등 투기 수요 제한 등으로 대출을 줄이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갭투자 관련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하기로 했고, KB국민은행은 다주택자 대출을 제한하고 수도권 대출 만기를 30년으로 축소했다.

정진호·곽재민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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