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대통령, 펜스에 김정은의 핵개발은 방어용이라 말해”

강태화, 임선영 2024. 8. 2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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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인 2017년 6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두 나라 정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AFP=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6월 취임 뒤 첫 방미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 개발 이유를 ‘방어적 목적’이라고 미 측에 설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한 허버트 R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7일(현지시간) 공개한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에서 : 트럼프 백악관에서의 나의 임무 수행』(사진)에서 밝힌 내용이다.

3성 장군 출신의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두 번째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다(2017년 2월~2018년 3월). 358쪽 분량의 회고록에는 ‘한국’이 101번, 북한을 지칭할 때 쓴 ‘북(north)’이 80번, 북한의 공식 명칭인 DPRK는 9번 등장한다. 또 당시 문 대통령을 지칭하는 ‘문(Moon)’은 20번에 걸쳐 기술됐다.

“한국은 협상, 미국은 비핵화에 방점”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했고, 첫 한·미 정상회담은 2017년 6월 30일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와 공동 기자회견을 한 뒤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꼭 후세인이나 카다피가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for defense) 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위적 차원에서 핵을 개발하는 것이라는 북한의 기존 논리를 사실상 그대로 반복한 격이었다. 펜스는 문 대통령에게 “이미 북한은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재래식 포를 보유하고 있는데 왜 핵이 필요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김정은이 ‘공격적 목적’으로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2017년은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고강도 도발을 이어가던 시기다. 남·북·미 간 대화 국면은 2018년 들어서야 조성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미 측을 상대로 김정은의 핵 개발이 ‘자위권 차원’이라는 식으로 사실상 옹호한 건 김정은을 직접 만나기도 전이었다.

맥매스터는 첫 정상회담부터 한·미가 대북 정책 방향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양국 공동성명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국 측은 지속적으로 북한과의 협상 전망을 강조하는 표현을 고수했다”며 “반면에 (백악관 안보팀은) 비핵화가 김정은에게 최선의 이익이란 점을 설득하기 위해 제재 이행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맥매스터는 문 정부가 북한의 위협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는 식의 주장도 내놨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7월 4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뒤 통화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우리는 아직 도발에 사용된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규정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맥매스터는 “의용, 당신이 ICBM이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해서 그 미사일이 ICBM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따졌다고도 했다. 이튿날 김정은은 ICBM인 화성-14형을 발사했다고 확인하며 “(미국놈들에게)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보따리들을 자주 보내 주자”고 말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직후인 7월 6일 평화체제 구축 등 대북 관여를 중심에 둔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문 정부, 북의 ICBM 발사 때 축소 급급”

맥매스터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데 대해 트럼프가 격노했다고도 맥매스터는 전했다. 그는 “당시 10억 달러(약 1조3330억원)에 달하는 요격 미사일 시스템 배치를 다시 고려하겠다는 문 후보 발언을 들은 트럼프는 내게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이 스스로 내게 해야겠다고 말했다”며 “이에 사드는 미국군과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이는 이미 사드 비용을 모두 대기로 했던 미국이 돌연 입장을 바꿔 한국에 비용 부담을 압박하게 된 배경일 수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인 2017년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사드 배치 비용을 지불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실제 이후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과정에서 미 측은 지속적으로 사드 비용을 부담하라고 한국 측에 요구했다. 맥매스터에 따르면 트럼프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사드 문제로 불쾌감을 표했다. 2017년 6월 첫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와 관련, “정식 배치를 하려면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하자 트럼프가 헛기침을 한 뒤 “환경영향평가는 시간 낭비”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맥매스터는 정의용 실장에게 “문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가 환경영향평가의 결과에 달려 있다’는 최근 발언을 반복하지 말라고 말해 달라”며 “부동산업자 출신인 트럼프는 환경영향평가를 정말 싫어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의 인식도 이번에 다시 확인됐다. 트럼프가 한국을 지칭하며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왜 지켜야 하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한국에서 나오고,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이 처리하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고 맥매스터는 전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임선영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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