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매스터 "文 사드 철회 주장에 트럼프 '한국이 돈 내라' 분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철회를 주장하고, 당선 뒤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기로 한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크게 분노했다고 허버트 R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혔다. 이는 트럼프가 임기 내 방위비 협상 등에서 한국 측에 사드 관련 비용을 부담하라며 증액을 압박한 배경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한 맥매스터는 27일(현지시간) 공개한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에서 : 트럼프 백악관에서의 나의 임무 수행』에서 “당시 10억 달러(약 1조3330억원)에 달하는 요격 미사일 시스템 배치를 다시 고려하겠다는 문 후보의 발언을 들은 트럼프는 내게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이 스스로 내게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맥매스터는 트럼프가 당시 분노(angry)하고 격노(incense)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에 사드는 미국군과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수습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이미 사드 비용을 모두 대기로 했던 미국이 돌연 입장을 바꿔 한국에 비용 부담을 압박하게 된 데는 이런 트럼프의 분노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인 2017년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한국이 사드 배치 비용을 지불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실제 이후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과정에서 미 측은 지속적으로 사드 비용을 부담하라고 한국 측에 요구했다.
맥매스터에 따르면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사드 문제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2017년 6월 첫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와 관련 “정식 배치를 하려면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하자 트럼프가 헛기침을 한 뒤 “환경영향평가는 시간 낭비”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맥매스터는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문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가 환경영향평가의 결과에 달려 있다’는 최근 발언을 반복하지 말라고 말해달라”며 “부동산업자 출신인 트럼프는 환경영향평가를 정말 싫어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환경영향평가 같은 국내법적인 절차는 다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에 분명히 했고 "이를 미국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 것과는 온도 차가 있는 주장이다. 당시 문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를 악용해 사드 기지 정상화를 고의로 지연했다는 의혹은 현재 감사원에서 감사가 진행 중이다.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의 인식도 이번 회고록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 트럼프가 한국을 지칭하며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왜 지켜야 하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또 취임 초부터 “우리는 한국에서 나오고,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이 처리하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고 맥매스터는 전했다. 하지만 이런 트럼프의 발언을 정의용 실장에게 전하지는 않았다고 적어 당시 한·미 간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트럼프는 2017년 11월 첫 방한 때 헬기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위를 지나갈 때 “미국에는 왜 저런 게(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처럼 거대한 첨단 제조업 시설) 하나도 없느냐”고도 물었다. 맥매스터는 “고삐 풀린 세계화 때문에 발생한 미국 제조업 상실을 되돌아보는 것보다 트럼프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고 전했다.
또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했을 때는 "한국이 기지 건설 비용 108억 달러 중 98억 달러를 냈다"는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의 설명에 트럼프가 "왜 100%를 받아내지 않았냐"고 따졌다. 트럼프는 한국이 미국의 모든 주둔 비용에 더해 이익까지 지급해야 한다고 소신도 밝혔다.
맥매스터는 트럼프가 다른 회의를 하던 중에도 '한국'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아주 부유한 나라'(한국)가 미국의 안보에 공짜로 편승한다는 지적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트럼프가 한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역대 최악의 통상합의"로 묘사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가 한·미FTA에 대해 “한국에 25만 개의 미국 일자리를 제공한 ‘호러쇼(horror show·공포쇼)’이자 ‘힐러리 클린턴 특집(Hillary Clinton special)’”이라고 했던 언급도 소개했다.
맥매스터는 “한반도에 미군이 더는 필요하지 않고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강한 경제를 지닌 성공한 나라의 안보를 미국이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에 트럼프 대통령이 동조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맥매스터는 실제 2018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정의용 실장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당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의 회동에서 “대북 기조와 관련해 3국이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며 “만약 미국이 한반도를 방어하는 것이 과소평가되거나 불필요하다는 인상을 줄 경우 미국 내에서 미군을 철수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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