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살 간송미술관의 변신…국보·보물 40건 통째 대구로 옮겼다

강혜란 2024. 8. 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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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간송미술관 오는 9월3일 개관
오는 8월 3일 개관하는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조선 대표화가들의 작품을 실감영상으로 만나는 전시 '흐름·The Flow'. 간송 측이 소장한 정선, 김홍도, 신윤복, 이인문 등의 작품을 재구성해 38m 반원형 스크린을 채운다. 사진 간송미술관


오롯이 훈민정음 해례본(국보)만 놓인 밀실에서 스피커 속 각기 다른 목소리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들려준다. 또 다른 전시실에는 화폭만 8m가 넘는 심사정(1707~1769의 ‘촉잔도권’(보물)이 11m 길이의 진열장에서 위용을 드러낸다. 혜원 신윤복(1758 ~ ?)의 ‘미인도’(보물)가 놓인 단독 공간에선 신비로운 조명과 향기가 관람객을 18세기 조선으로 불러들인다.

오는 9월 3일 문을 여는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전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12월1일까지)의 풍경이다. 27일 이곳을 미리 찾았을 때 ”마치 올림픽 선수단 입장식 같은 전시”(백인산 간송미술관 부관장)라는 소개대로 간송 컬렉션을 대표하는 유물이 2개 층의 4개 전시실을 채웠다. 간송 측이 소장한 국보·보물 가운데 현실적으로 옮겨올 수 없던 석조물 2건(석탑·승탑)을 제외하고 40건 97점이 모두 한데 모였다. 간송미술관의 역대 전시는 물론이고 웬만한 국립박물관 전시도 뛰어넘는 규모다.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단독 공간으로 선보이는 신윤복의 미인도(보물). 사진 간송미술관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전을 맞아 대구로 나들이 한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사진 간송미술관

간송 컬렉션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우려한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유산이다. 1938년 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설립한 이래 분관 개설은 처음이고 미술관 86년 역사상 상설전시관이 마련된 것도 처음이다. 지난 7월 경찰차 등 호위 속에 극비리에 옮겨온 유물은 그 동안 보존처리를 거쳐 이번에 공개됐다.

특히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됐던 해례본은 간송 품에 안긴 뒤 6·25 피난을 제외하곤 한번도 서울을 떠난 적 없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귀향’했다. 국보·보물로만 이뤄진 이번 전시의 총 보험가액만 1000억원이 넘는다. 간송의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먼 길을 왔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말로 새로운 간송 시대를 여는 소회를 밝혔다.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선보이는 '보이는 수리복원실'. 사진 간송미술관

대구 간송미술관 설립은 대구시와 간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2015년 처음 분관 설립 계획이 나온 뒤 대구시가 부지와 사업비 446억원을 국비와 시비로 조달했고 간송 측이 전시 콘텐트를 내주기로 했다. 다소 외진 곳(수성구 삼덕동)에 위치한 대구미술관 바로 옆에 간송미술관이 지난 4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준공되면서 일종의 미술 클러스터를 형성하게 됐다.

전 관장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건물 소유권 등 일체 권리와 무관하고 전시만 책임지는 민간위탁운영 관계”라고 소개했다. 운영비도 대구시가 대는 만큼 입장료 수익도 전액 대구시에 귀속된다.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민관협동 사례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이 유사 사례”(전 관장)라고 한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이기도 한 보화각은 지난 5월 수리·복원을 거쳐 재개관했지만 내부 공간이 협소해 전시 제약이 컸다. 대구 분관은 이와 차별화해 ‘보이는 수리복원실’까지 운영한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학예연구사들이 유물을 보존처리 하는 모습을 관객이 실시간 볼 수 있다. 전 관장은 “대구 분관은 상설전시를 기반으로 친밀하게 경험·향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려가고, 서울 보화각은 제한적이되 특별한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가꿔가겠다”고 했다.

대구 간송미술관의 전경. 연세대 최문규 교수와 ㈜가아건축사사무소의 작품이다. 사진 대구간송미술관
대구 수성구 소재 대구간송미술관 전경. 연세대 최문규 교수와 ㈜가아건축사사무소의 작품이다. 사진 대구간송미술관

간송 유품 26건 60점을 바탕으로 한 ‘간송의 방’도 돋보인다. 그의 문화보국(文化保國) 정신과 생애를 그 자체로 스토리텔링한 공간이다. 전 관장은 “간송미술관이 가진 자산 중에 컬렉션은 물론이고 간송이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면서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대구에서 교육적으로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대 송예슬 작가와 협업한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 등 디지털 접목이 두드러진다. 제5 전시실은 아예 정선, 김홍도, 신윤복, 이인문 등의 작품으로 실감영상을 제작해 38m 반원형 스크린을 채웠다. 전 관장은 “일종의 쉼터이자 디지털에 더 익숙한 세대가 우리 문화유산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마침 서울 DDP에서도 간송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가 열리고 있다(내년 4월30일까지). 대구에 나들이한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겸재 정선(1676~1759)의 ‘해악전신첩’ ‘관동명승첩’ 등 99점이 몰입형 전시로 소개되고 있다.

8월 15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되는 간송미술관의 몰입형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중 훈민정음. 사진 간송미술관
8월 15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되는 간송미술관의 몰입형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중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과 관동명승첩. 사진 간송미술관


전 관장은 “소위 Z세대, 알파 세대는 디지털을 통해 작품을 흥미롭게 접하면 원본까지 관심을 넓히는 경향이 있어 계속 이같은 실험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보·보물의 경우 이동과 반출에 제한이 있고 서화류는 장기전시도 힘든데 디지털 콘텐트는 이를 보완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이머시브 K’로 발전해갈 게획”이라고 덧붙였다.

대구 간송미술관은 개관 특별전 후에 전시물을 교체해 일부 상설전시실로 운영하고 타 기관과 협업하는 기획전도 열 예정이다.

대구=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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