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간 고양이가 내게 가르쳐 준 것

김나라 2024. 8. 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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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하는 마음] 미움과 미안함을 비우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시간을 위해

이제는 괜찮아, 싶을 때쯤 삶은 또 힘들어지곤 합니다. 그게 삶이니까요. 소중한 존재들과의 이별,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가족 간의 갈등, 잘 나아지지 않는 반려병 등. 어려움과 동행하면서 매번 다시 일어서는 마음에 대해 씁니다. <기자말>

[김나라 기자]

얼마 전까지 간간이 퇴근길을 함께하는 동료가 있었다. 저녁에 편의점 일을 마친 뒤 자전거를 끌고 집 근처 언덕을 천천히 오르면 그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 말없이 내 곁에서 걸었다. 내리막에서 자전거에 올라타 빠르게 내려오면 자기도 속도를 맞춰 뛰었다. 대문 앞에 도착해 열쇠를 찾고 있을 때는 한참이 걸려도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대문이 열리면 자기 집인 양 잽싸게 마당으로 들어가서는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나는 현관문을 열고 신발장 위에 올려둔 츄르를 꺼내서 짜주었는데, 그는 대충 냄새를 맡는 시늉만 하고 단 한 번도 먹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바로 떠나지 않고 계속 나를 보고만 있었고, 그럴 때는 길에서와는 다르게 화가 난 표정이었다.

고양이가 자전거를 따라 집까지 오는 것도 신기한데 밥을 달라고 따라오는 것도 아니라니. 무슨 마음인 건지 정말 궁금했다. 혹시 얘는 토시가 아닐까? 집까지 바래다는 주면서도, 잘해주지 못한 나한테 삐진 티를 내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담 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 나는 한참 말을 건네곤 했다. 토시야. 너 토시구나. 미안해 토시. 정말 미안해. 보고 싶었어. 사랑해 토시. 이 말을 몇 번 반복하다가 그가 지루한 듯 고개를 돌리거나 담을 넘어 사라지면 나도 돌아서 집으로 들어왔다.

사실 토시가 떠난 후 나는 이름 모르는 모든 고양이를 토시라고 부른다. 하지만 토시 같은 고양이는 세상에 다시 있을 수 없다. 토시는 천사야. 전 동거인과 나는 토시가 살아 있었을 때도, 고양이별로 떠난 뒤에도 자주 그렇게 이야기했다.

묘보살이 된 토시

토시는 '보살 고양이'였다. 토시에게 짓궂게 장난을 쳐도, 호되게 야단을 쳐도 하악질 한 번 하지 않았고 발톱을 세운 적도 없었다. 딱 한 번 하악질을 본 것은 진공청소기가 토시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셋이 같이 살기 전 7년 동안 토시를 키웠던 동거인은 그때 토시의 하악질을 처음 보고, 마치 아이의 뒤집기를 처음 본 엄마처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사실 토시가 말대꾸는 곧잘 해서, 꾸중을 듣다가 미간 근육을 울퉁불퉁하게 만들며 애옹거리면 나는 어디서 말대답이냐며 더 긴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으면 동거인은 SNL을 볼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토시는 정말로 용서의 달인이었다. 꾸중을 듣고 시무룩해져 있다가도 몇 번 쓰다듬어주면 곧바로 기분이 풀려 골골거리는 녀석.

덩치가 웬만한 강아지보다 큰 토시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때 동거인은 짠한 표정으로 토시를 보며 "애는 착한데…"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웃겼다. 토시는 늘 우리를 웃기는 고양이였다.

걸을 때마다 늘어진 뱃살이 추처럼 흔들리는 중년 고양이 토시. 팔 한쪽에만 토시를 낀 것 같은 무늬를 가진 고등어 냥이. 그루밍을 열심히 하는 척하면서 맨날 하는 데만 하는 대충 사는 토시. 마음이 너무도 순수한 우윳빛깔 토시.

토시가 떠난 뒤 동거인과 나는 어느 절에 템플스테이를 갔다. 입소한 참가자들이 법당에 모여 주지스님과 인사를 나눌 때, 동거인이 말했다. "같이 살던 고양이가 얼마 전에 하늘나라에 가서요." 주지스님이 온화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아아, 묘보살이 되었군요."

생각지 못한 말에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묘보살이라니! 토시가 보살 고양이인 거 어떻게 아셨을까. 스님은 묘보살이 된 토시를 잘 보내주라고 말씀하셨다. 한 명씩 돌아가며 불단에 향을 꽂고 허리 숙여 절을 할 때, 나는 묘보살님이 된 토시를 생각했다. 동거인도 그랬을 것이다.
▲ 또다른 토시 어릴 적의 토시 모습을 닮은 앞집 길냥이
ⓒ 김나라
몇 주 전 내가 다니는 상담센터에서 사이코드라마를 했다. 사이코드라마는 연극적인 기법을 활용한 집단 심리치료인데, 나는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 왔다. 이날은 내가 주인공을 맡아 토시에 얽힌 마음을 풀어내게 되었다. 토시와 함께 산 시간보다 떠난 후의 시간이 더 길어졌지만, 내 안에는 그리움만큼 커다란 미안함과 죄책감이 엉켜 있었다.

토시에게 금지한 것들, 눈치채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는 나에게 동거인은 말했었다. 좋았던 것들만 얘기하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러자고 대답했는데, 그 말의 반만 지킬 수 있었다. 좋았던 것들만 얘기하기는 쉬웠지만 좋았던 것들만 기억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선생님이 말했다. 벽을 보고 서서 토시에게 미안하다고 크게 외쳐 봅시다. 그런데 그간 사이코드라마를 하면서 아버지에게도, 엄마에게도, 성추행 가해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잘했던 내가 그때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조용히 혼잣말로 해보라고 말한 뒤에는 한참 후에 작은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미안해.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하얀 천을 덮어쓴 토시(토시 역할을 하는 참가자)에게 다가갔다. 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토시,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너무 보고 싶어. 몇 번이나 말해주었다. 그리고 내 손으로 강의실 문을 열고 토시를 떠나보냈다.

사이코드라마를 하면서 새삼 떠올랐다. 내가 토시를 웃긴 고양이로 여기면서도 존경했던, 지금도 존경하는 이유는 토시가 큰 그릇을 가진 고양이였기 때문이란 걸. 토시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 중 가장 큰 것은 용서할 줄 아는 마음이었다. 맞아. 미워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마음에 미움 없이 사랑만 채우는 토시를 보면, 우주가 들어있는 토시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토시를 묘보살이 된 뒤에도 나를 원망하고 있는 옹졸한 고양이로 생각하는 건 내 오산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 퇴근길 친구가 토시라면, 미운 정이 든 나를 보고 싶어서 왔을 것이다. 아니면 꿈에서 토시의 부탁을 받고, 거 참 귀찮아 죽겠네, 하면서 나를 집까지 수행해 주는 동네 츤데레 고양이일 거다. 이 집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고 말이다.

모든 관계는 흐른다

내 수행원이 이만하면 토시 부탁을 충분히 들어줬다고 생각했는지, 여름이 되고부터는 통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올여름은 못 보던 냥이 가족이 앞집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인절미 엄마, 카오스 아빠, 고등어와 삼색이와 까망이 새끼들. 애옹거리는 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면 다섯 식구가 서로 부르며 지붕에서 지붕으로 오가고 있었다.
▲ 앞집 길냥이 가족 애옹거리는 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면 서로 부르며 지붕 위를 오가고 있었다. 한여름 몇 주간 앞집에 머물다 떠났다.
ⓒ 김나라
어떤 날은 새끼 셋이 붙어 웅크리고 엄마 젖을 먹고 있었다. 젖을 빨 때마다 맞춰서 연습이라도 한 듯 여섯 개의 귀가 나비처럼 팔락거렸다. 또 어떤 날 나는 기분이 상한 채 집에 들어오다가, 고등어 무늬 새끼가 지붕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낮잠을 자는 모습에 위안을 받았다.

사진으로 본 토시의 어릴 적 모습을 꼭 닮은 아이. 며칠 사이 독립을 한 건지 혼자 다니게 된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다섯 식구 모두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존재는 늘 다음 자리를 찾아 떠나고, 모든 관계는 흐른다. 잠시나마 머물러준 토시들에게 감사한다. 공허한 귀갓길을 웃음과 놀라움으로 채워준 토시, 불볕을 피해 한여름을 방안에서 보내는 내게 창문만 열면 만날 수 있는 행복을 선사한 다섯 토시, 그리고 항상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마음속 토시.

나에게 찾아와 주었던 존재와 나눈 마음과 배움. 그 힘으로 살아가는 일. 없을 수도 있었던 인연에 감사하는 일. 그건 남은 자만의 기쁨이다.

아직 내게 머물러 있는 인연들을 생각한다. 언젠가는 다음 자리로 떠나게 될 사람들. 사랑은 미움을 포함하는 마음이라지만, 함께하는 동안 미워하는 시간보다 순수하게 사랑하는 시간이 더 많으면 좋겠다.

나의 묘보살 님께 약속하고 싶다. 당신이 나를 몇 번이고 용서해줬던 만큼, 나도 용서를 아는 사람이 될게요. 바람처럼 가볍게, 비워낼 줄 아는 사람이 될게요. 스스로 괴롭히지 않을게요. 그는 우주가 다 들어있는 멍하고 아리송한 눈으로 나를 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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