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단 하나의 SF를 읽는다면

이예린 2024. 8. 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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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폐허에서 변화를 심다...옥타비아 버틀러,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이예린 기자]

옥타비아 버틀러는 1970년대에는 아주 드물었던 빈곤층 출신 흑인 여성 SF 작가로서 장르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며 명성을 얻은 소설가이다. 그 이름만을 알고 있다가 하필이면 2024년에, 하필이면 이 책을 버틀러 입문작으로 고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1993년에 발표되었으며, 당시 기준 미래인 202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극심해진 기후 변화와 경제 충격으로 디스토피아가 된 미국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 세계는 아직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점점 극심해지는 기후와 경제 위기에 대한 이슈가 어느 때보다 낯설지 않은 2024년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 도서출판 비채
책 속의 2024년에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하다. 물, 음식, 집 등…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죽인다. 약간이라도 여유 있는 마을은 동네를 두르는 긴 장벽을 세워 집 없는 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바깥 세상은 여성에게는 아주 위험하고, 유색인종에게도 더 위험하다. 주인공 '로런'은 흑인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다행히 장벽 있는 동네에서 정 있는 가족들과 살고 있다.

장벽 안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고 생필품을 구하러 위험한 장벽 밖으로 주기적으로 나가야 하고, 어떻게든 벽을 넘어와서 물건을 훔치고 불을 지르려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마을 안 사람들을 증오하는 바깥 사람이 구멍에 대고 총을 쏴서 안쪽의 아기가 맞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로런에게는 사실 남모를 생존 핸디캡이 하나 더 있다. 임신 기간에도 마약을 끊지 못했던 친어머니로 인해 '초공감증후군'이라는 병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초공감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면 그 아픔을 자신의 신체로 그대로 느끼게 된다. 누가 총을 맞으면 자신도 총을 맞은 느낌이 들고, 심한 경우 따라서 피를 흘리기도 한다. 매일 누군가 죽어 나가는 디스토피아에서는 아주 골치 아픈 증상이다.

로런의 아버지는 목사다. 힘든 세상에서는 의지할 데가 필요한 법, 로렌은 그 영향으로 설교도 할 줄 알고 성경에도 조예가 있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다른 하느님을 믿는다.

로런이 스스로 고뇌한 결과 그가 믿는 것은 '변화'다. 오로지 변화 그 자체만이 하느님이다. 로런은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일기와 시를 쓰며 자신만의 교리를 발전시켜 간다. 책의 모든 챕터는 로런이 쓴 일기와 시의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대가 손대는 모든 것을 그대는 변화시킨다.
그대가 변화시킨 모든 것은 그대를 변화시킨다.
변치 않는 진리는 오로지 변화뿐. (p.8)

변화의 씨앗을 품고 바깥으로

로런은 세상이 점점 악화되고 있으므로 언젠가 마을 사람들도 바깥에서 생존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예언은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져 로런은 모진 시련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오래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람들이 낙엽처럼 흩어지기도 하고, 전혀 모르던 사람이 일행에 합류하기도 한다. 다인종 커플, 어린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 등 약자를 포함한 일행을 점점 늘려가며 로런은 자신의 종교 '지구종'을 바탕으로 서로를 죽이는 것이 아닌 돕고 발전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꿈을 품는다.

신비로운 기계장치나 놀라운 우주여행이 나오는 SF소설을 기대한다면 이 작품에 대해 실망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로런은 우주의 '우'도 보지 못하며 그들이 이동한 거리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며칠을 걸어서 미국 서부조차 벗어나지 못한 만큼이다.

그러나 로런은 계속 희망을 품는다. 지구종이 종내에는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는, 허황된 정도로 원대한 꿈이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그 첫 걸음 정도를 보여 준다고 할까, 로런이라는 지구종 창시자의 시작 연대기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로런은 씨앗을 뿌리는 자이자, 그 자체로 씨앗이다. 지금은 아주 미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끈질긴 생명력과 높은 잠재력이 있다. 운이 나쁘다면 싹도 틔우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숲이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인류 문명의 추락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이자 살아남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성찰하는 이야기이다.

상냥함이 깃들면 변화가 수월해진다. (p.291)

2024년이 지나기 전 읽을 만한 SF소설을 찾고 있다면 옥타비아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어떨까. 일기로 전개되는 책의 특성상 각 챕터에서 2024년 현재 읽고 있는 오늘의 날짜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타인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종말의 시대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존재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2024년 현재에 유효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추후 개인 브런치에도 업로드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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