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평범한 가족, 고통을 외면한 결과

이초희 2024. 8. 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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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이초희 기자]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3년간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을 역임한 루돌프 프란츠 페르디난트 회스 나치 친위대 중령이라는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다. 수용소 굴뚝이 벽 너머로 보이는 아우슈비츠의 아름다운 주택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이 돋고 찡그린 표정을 풀기 힘들다. 화면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부분의 관객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소각장에서 들리는 굉음과 뭉뚱그려 들려오는 비명,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주택에서 행복해하는 회스 가족의 일상이 소름 끼치게 다가온다.

가정의 안주인 헤트비히 회스는 아우슈비츠에 정착한 후 3년 동안 황무지였던 사택을 아름답게 가꿔온 자부심이 대단하다. 가장인 루돌프 회스는 효율적으로 수용소를 운영하는 유능한 군인이면서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강에서 함께 보트를 타는 다정한 아버지다. 하지만 강에서 낚시하다 강을 시커멓게 덮으며 떠내려오는 재를 피해 서둘러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장면에서 인간을 대량 학살하는 범죄를 자행하고 그 덕을 누리며 사는 이들의 모습이 무섭게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부부도 굴뚝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안다.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는지도 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생활이 비로소 현실이 된 이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들이 흔히 보는 악인처럼 아무에게나 권력을 휘두르며 살인을 즐기는 건 아니다. 그저 배운 대로 직업과 가정에 충실하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로 보인다.

인터레스트(interest)는 이해관계, 중요성, 관심, 흥미 등의 뜻이 있다. 영화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변 반경 40평방킬로미터 지역을 일컫는 명칭이다. 수용소에 모인 수용자들의 노동력과 대량 학살 등이 나치 정권에 미치는 중요성을 내포하는 말인데, 인종 말살을 위한 장소에 이런 명칭을 붙인 건 현실에 대한 외면이다.

하지만 회스 부부에게 아우슈비츠의 중요성은 상당하다. 부인은 정성스레 가꾼 사택을 절대 떠나고 싶지 않아서 자기 집도 아닌데 타지로 발령 난 남편에게 혼자 가라고 한다. 남편은 이 말에 순순히 따르고 타지에서도 성과를 올린 덕에 아우슈비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다시 말해 아우슈비츠는 이들에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즉 '관심 영역'이다. 영화의 제목은 이렇게 수용소 주변 지역을 일컫기도 하지만, 주인공 부부의 심리적 관심 범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부인 헤트비히의 관심사는 아름다운 집에서 성장하는 가정이고 남편 루돌프의 관심사는 승진과 탄탄한 가정이다.

둘의 대화를 통해 부부 모두 젊어서는 그다지 풍족하게 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두 사람이 자기 손으로 쌓은 아름다운 현실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질지는 자녀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사람 입장에서, 아니 그런 사람이 아니라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다. 가정과 성공이라는 가치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런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지 않나. 하지만 이 가치는 나치라는 더 큰 집단의 반인륜적 목표를 만나 무자비하고 소름 끼치는 악이 됐다. 자신의 관심 범위에서 한발 물러서면 더 큰 범주의 악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추구하는 목표에 집착하며 물러서기를 거부했고 그렇게 범죄를 저지르고 거기에 동참하면서 부패해 갔다.

빛을 비추는 사람들

나치 정권은 막을 내렸고 특히 독일은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적극적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가도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가 주제를 심화하며 계속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반면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둘러싸고 역사가 정리되지 않았고 여전히 정치적 갈등이 상당하다. 우리가 지켜온 역사를 부정하는 일부 세력의 목소리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혼란스럽다.

영화에서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밤에 몰래 음식을 놔두고 오는 소녀가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이 나온다. 현실에도 양심에 따라 악을 외면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평화라는 가면을 쓰고 고통을 외면하는 다수의 마음에 빛을 비춘다.

내 행복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되지 않으려면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또 이후에도 바르게 행동하려면 양심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처음에는 그저 소름 끼치는 관점으로 그려낸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 영화 같았지만, 볼수록 인간과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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