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전곡 도전 무모하다지만, 약속 지키고 싶다”
“마흔 전에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겠다.” 2016년 당시 29세였던 지휘자 진솔이 선언했다. 독일 만하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지휘자였고,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도 없는 상황이었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은 길고 거대하며 복잡하다. 한 번 연주에 단원 100명이 넘게 필요한 교향곡 10곡을, 한 곡마다 연주자들을 모으는 프로젝트 방식으로 연주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당연히 다들 ‘무리다’ ‘쉽지 않을 거다’라고 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진솔은 “약속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달 그는 말러 교향곡 7번을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한다.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말러리안’의 7번째 공연이다.
진솔은 ‘말러리안’을 지휘하며 2016년 말러 교향곡 10번으로 전곡 연주를 시작했다. 이어 5번ㆍ1번ㆍ6번ㆍ9번ㆍ3번의 순서로 공연을 이어왔다. “처음에는 단원을 모으기 힘들어 아마추어 연주자들까지 함께했다. 오디션을 열어 말러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모았다.”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으면서 프로 연주자들이 더 많이 지망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마추어 연주자들 없이 연주를 진행한다. “이제는 100명 모집에 300~400명이 지원할 정도로 많이 알려진 프로젝트가 됐다.”
말러의 교향곡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도 명예를 걸고 추진하는 대형 작업이다. 한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축적하기 위해 지휘자가 선택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진솔은 이런 일을 매년 한 번씩 모였다 흩어지는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로 할 생각을 했다.
‘말러리안’ 단원들의 평균 나이는 20대 중후반. “‘말러리안’은 젊다. 그런데 젊은 음악가 친구들은 생각보다 정보가 많고 경험도 있다. 유튜브에서 세상의 온갖 연주를 찾아보고 옛 음반까지 섭렵해온다. 21세 대학생이 베를린필 연주를 보고 와서 지휘자에게 활 움직임을 제안하는 분위기다.” 진솔은 “말러는 원숙한 지휘자와 악단이 잘할 수 있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했다. 또 “말러라는 작곡가 안에도 어린아이와 늙은이가 공존하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진솔은 2012년 한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 시험을 보면서 말러의 세계를 처음 만났다. “말러 교향곡 3번 전 악장(100분 길이)을 익혀서 가야 하는 시험이었다. 유학도 가기 전이고 여전히 학생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어려웠고 시험도 당연히 탈락했다. 하지만 그때 말러에 애정이 생겼고 전곡 연주를 꿈꾸게 됐다.” 진솔은 “브루크너ㆍ바그너ㆍ슈트라우스는 지휘를 시켜주면 감사한 작곡가지만 말러는 일부러 무대를 만들어서라도 하고 싶은 작곡가”라고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뚝딱뚝딱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며 “약속을 지켰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에 끝까지 가보려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밤의 노래’로 불리는 7번 교향곡을 마치면 ‘천(千)인 교향곡’으로 불릴 만큼 거대한 8번 교향곡에도 언젠가 도전한다. “말러와 함께 성장해왔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말러를 주제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어 계속하고 싶다.” ‘말러리안’의 7번 교향곡 연주는 다음 달 15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진솔=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학사(지휘과/예술사), 만하임 음악대학 석사, 플래직 대표이사(2017~현재),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예술부문 수상(2024)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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