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예산안]'北 주민 정보접근권' 민간에 떠넘긴 통일부

장희준 2024. 8. 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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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발표한 '통일 독트린'…예산 구체성↓
정보접근권 과제…"민간단체 보조금 사업으로"
北 받지도 않는 '구호 지원'…1000억 넘게 편성

윤석열 대통령이 '8·15 통일 독트린'을 야심 차게 발표했지만, 후속 과제들을 이행하기 위한 내년도 통일부 예산안은 다소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북한 주민들의 정보접근권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을 펼치겠다고 공언한 것과 달리 통일부가 직접 추진하는 사업 없이 사실상 민간단체 보조금 지원으로 갈음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2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내년도 통일부 예산안은 일반회계 2293억원·남북협력기금 8261억원, 총 1조 554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에서 제시한 7개 추진 방안 등 후속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중점 사업을 내실 있게 반영하되, 남북협력기금 집행 부진 사업 예산을 소폭 삭감했다"고 편성 원칙을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발전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남북 간 실무급 대화협의체를 구성하고 북한 주민 정보접근권을 개선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북한의 호응이 필요한 대화협의체와 달리 정보접근권 개선은 우리 정부가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과업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 22일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간담회에서 정보접근권 확대에 관한 질문을 받고 '첨단기술 활용'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하지만 이 같은 후속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예산은 모호하게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접근권 개선을 위해 직접 사업을 편성한 내용은 없고, 대신 기존에 진행되던 민간단체 보조금 지원 사업에 이 과제를 끼워 넣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통령이 밝힌 정보접근권 관련 예산이 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정보접근권 확대를 위해 다양한 사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북한 인권 증진 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북한 인권 실태조사 연구 등 필요한 예산을 반영했다"고 답했다.

'북한 인권 증진활동 지원' 사업은 북한 인권 관련 사업을 공모한 민간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올해 18억 3000만원에서 내년 29억 6000만원으로, 11억 3000만원을 증액했다. 이 사업의 공모 항목은 ▲국제협력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 ▲북한 인권 실상 알리기 ▲학술행사 등 5가지로, 북한 내부로 정보를 유입하는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콘텐츠 개발'의 경우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작할 순 있지만, 이를 북한 내부로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는 사업 공모 심사에서 따지지 않는다.

평안북도 등 수재민 아동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집행이 부진한 남북협력기금 사업 예산을 조정했다는 방침 역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통일부는 기금으로 집행하는 예산 가운데 '구호지원' 항목에 무려 1122억 3000만원을 편성했다. 올해 963억 7000만원에서 159억 2300만원(16.5%)을 늘린 것이다. 이는 내년도 남북협력기금 사업 중 유일하게 10% 이상 증액된 항목이기도 하다.

북한은 최근 압록강 유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큰 수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정부가 제의한 수해 지원을 거부했다. 2023년도 예산 결산 내역을 봐도 '구호지원' 항목은 집행액이 전무하다. 북한이 '적대 국가론'을 앞세워 인도적 차원의 구호지원마저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쓰이지도 못할 예산만 크게 늘려놓은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집행율이 저조한 구호 지원 예산을 늘린 이유에 대해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추진한다는 게 정부 기조"라며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을 통해서도 그런 방침을 밝혔고, 저희는 그런 정책을 이행하기 위한 재정적 뒷받침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일 오전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편 일반회계 예산에서 사업비는 1676억원으로, 올해 1579억원에서 97억원(6.1%) 증가했다. 정착기본금 인상과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활동을 지원하는 예산이 증액된 결과란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탈북민 입국 이후 초기 정착을 돕는 정착기본금은 1000만원에서 내년부터 1500만원으로 늘어난다. 이 밖에도 탈북민이 제3국에서 낳은 자녀의 한국어 교육 지원(1억원), 탈북민 대안교육기관 환경 개선(3억 7000만원), 탈북민 대학생 대상 한미대학생연수(WEST) 프로그램 참가비 지원(1억 7000만원) 등이 신규 사업으로 반영됐다. 또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국제한반도포럼 개최(15억 8000만원) 등에 예산이 증액 편성됐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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