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인사들의 친일 논란과 그 뒤에 깔린 위험한 논리

김태완 2024. 8. 2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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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단순한 역사논쟁이 아니라 친일파, 독재세력, 뉴라이트를 관통하는 사회진화론에 주목해야

[김태완 기자]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이 정부 주최와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의 주최 기념식으로 나뉘어 열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독립기념관장으로 '일제강점기가 한국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고 발언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가진 김형석 고신대 교수를 임명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더 나아가 독립기념관 이사장으로 뉴라이트의 산실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박이택 소장을 임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동 연구소 출신의 김낙년 교수를 임명하는 등 뉴라이트들을 대거 주요 기관장에 임명했다. 여기에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길을 사실상 허용해 주면서 윤석열 정부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시민들이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적이고 비상식적인 인사와 정책에 우려와 걱정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친일파'와 '신종 밀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윤석열 정부 배후에 존재하는 세력을 의심한다. 지금의 비상식적인 인사와 반역사적인 행보를 보면 이러한 의심도 결코 음모론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밀정'이나 '신친일파'의 존재보다도 근본적으로 위험한 것은 윤석열 정부와 그들이 기용한 인사들의 논리에 있다. 개별 '밀정'과 '신친일파'가 문제라면 그들을 솎아내고 인적 관계를 청산하면 그만이지만, 이것이 논리의 문제라면 언제든지 그 논리에 동의하는 이가 나타난다면 지금과 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위험한 논리란 바로 '사회진화론'이다.

사회진화론이란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인간 사회에 적용한 이론이다. 적자생존, 자연선택이 인간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보는 사회진화론은 중국과 일본을 통해 구한말 한반도에 들어왔다. 사회진화론은 서구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던 논리로 활용됐지만 한국에서는 약육강식의 냉정한 현실을 깨닫고 실력을 양성하자는 논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장기화되자 친일로 전향한 많은 지식인들이 친일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했다. 민족성을 개조하자던 이광수나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는 말을 즐겨 쓰던 윤치호는 사회진화론을 바탕으로 실력 양성을 주장하다가 결국 강자인 일본에 약자인 조선이 따라야 한다고 본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해방이 되고 이들은 사라졌지만, 이들이 가진 사회진화론적 인식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자립과 자주라는 수사를 민족주의적으로 활용했지만, 그 내용은 전쟁의 위협과 고립을 거론하면서 국민들이 적자생존의 원리를 익히게 한다는 데에 있었다. 대표적으로 새마을운동의 목표가 국민들에게 적자생존의 원리를 생활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리 아래서 강자가 강자인 것은 오직 당연한 승리의 결과일 따름인 반면, 약자는 진화적 경쟁에서 도태된, 구제할 필요가 없는 자들이었다. 사회진화론이 새겨진 채 성장한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약육강식과 우승열패를 강조했다.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던 시기 등장한 뉴라이트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독재가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공유하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국방부장관을 지냈고 현재는 국가안보실장인 신원식은 2019년 한 유튜브에서 "역사에 가정을 둘 순 없지만 그 당시 누가 이기더라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대한제국에는 재앙이었다. 조선을 승계한 대한제국에 무슨 인권이 있었나, 개인의 재산권이 있었나. 대한제국이 존속했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느냐"라고 주장한 바가 있는데 이는 패자, 약자는 열등하고 승자, 강자는 그 자체로 정당하고 선하다는 사회진화론적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이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차별적 정책, 노동탄압, 복지예산 감축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주체적으로 책임을 요구하는 약자는 탄압하고 시혜적으로 약간의 복지만 제공하려는 시각은 친일파, 박정희, 뉴라이트가 공유한 논리와 공명한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의 친일 옹호, 독재 찬양의 역사관만큼 위험한 것이 이들의 사회진화론적 논리다. 이들처럼 노골적으로 친일을 옹호하고 독재를 찬양하지 않아도 약자를 멸시하고 강자를 숭배하며 적자생존을 당연시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다. 친일 옹호와 독재 찬양은 그런 논리의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논리를 가진 이들이 한국 사회를 이끌 때, 단지 역사관의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고통에 빠뜨리고 사회를 분열시킬 것이다. 소모적으로 여겨지곤 하는 역사논쟁 뒤에 깔린 논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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