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벗으며 다가오는 에이리언, 호평과 혹평 사이
[김성호 기자]
공포였다. 공포가 하나의 영화, 또 하나의 장면, 나아가 하나의 형상을 취한다면 바로 이것이 공포라고 불릴 것이었다. 1979년 나온 <에이리언> 속 '케인의 자식'이 바로 그러했다.
케인의 자식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에이리언', 팬들 사이에서 '제노모프'라고 불리는 외계생명체의 별칭이다. 앞뒤로 길쭉한 두상에 입을 벌리면 끔찍하게 생긴 벌레 같은 무엇이 벌컥 나와서는 또 입을 벌리고 흉측한 속을 드러낸다. 어느 육식동물보다 포악하게 생긴 이빨과 강한 턱, 줄줄 흐르는 타액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데, 타액이며 혈액은 또 대단한 산성이라 강철도 녹인다고.
뿐인가. 인간을 압도하는, 아마도 지구상 어느 동물도 가볍게 제압할 가공한 운동능력으로 인간을 사냥한다. 날카로운 꼬리와 발톱으로 인간을 포획하고 끈적한 점액으로 붙들어서 서서히 빨아먹는다. 웬만한 공격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소리를 내지 않고 은밀히 움직이는 솜씨는 고양이과 맹수 저리 가라다. 태아부터 성체까지 성장하는 속도도 무시무시, 어마어마한 번식력과 적응력은 단 몇 마리만으로 지구 전체를 장악하리란 두려움까지 던진다.
▲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선명히 1편과 2편의 유산을 따른다. 이야기는 1편이 그린 노스트로모호 참사 이후로부터 시작된다. 웨이랜드 유타니 회사가 운용하는 탐사선 하나가 참사 뒤 남은 잔해 근처로 접근해 물체를 수거한다. 참사를 일으킨 제노모프, 즉 케인의 자식 화석을 수거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르네상스 정거장으로 화석을 이송해 나른 뒤 과학자들과 함께 화석을 절단한다.
이야기는 이내 그 아래 위치한 식민지 행성 '잭슨의 별'로 옮겨간다. 이곳은 웨이랜드 유타니가 광물을 채취하는 곳으로, 갈수록 경영이 악화되는 통에 사람들 살기가 영 팍팍하기 짝이 없다. 레인 캐러딘(케일리 스패니 분)은 부모를 잃고 합성 인조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 분)와 함께 열악한 숙소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다. 1만 2000시간의 의무 노동시간을 이제 막 채운 그녀는 앤디와 함께 새로운 터전 이바가 행성으로 떠날 계획이다.
▲ 에이리언: 로물루스 포스터 |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
그런 그녀 앞에 동아줄이 하나 내려온다. 잭슨의 별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식민지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장의 계획을 전해온 것이다. 잭슨의 별 상공엔 버려진 우주기지 '로물루스'가 있는데, 이걸 탈취해 이바가 행성으로 날아가자는 것이다. 막강한 회사의 자산을 무단으로 탈취해 도주하자는 계획이 얼핏 무모하게 들리지만, 장비들은 로물루스가 정말 비어있는 채로 궤도 위에 떠 있음을 보여준다. 딱히 다른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레인은 앤디와 함께 그들을 따르기로 한다.
영화는 그로부터 로물루스에 고립된 일행이 이 기지에서 깨어나고 배양된 수많은 제노모프들로부터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로물루스 안에 이비가 행성까지 갈 수 있는 연료며 동면용 연료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들어간 이들이 제노모프들로부터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게 그 시작이다. 하나둘 위기에 마주하고 죽어가는 과정은 옛 1편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
제노모프의 성장이란 다음과 같다. 알에서 '페이스허거'라 불리는 우주가오리 비슷한 생김의 개체가 태어난다. 페이스허거는 인간을 발견하면 그 얼굴에 달라붙어 인간을 숙주화한다. 강하게 목을 조여 숙주가 된 인간을 죽이지 않고서는 떼어낼 수 없도록 한 뒤 기생하는 본체인 소위 '체스트버스터'를 숙주 안에 심는다. 에이리언 유충이라 보아도 좋을 체스트버스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자라면 인간의 가슴을 깨고 나온다. 그로부터 몇 번의 허물을 벗으면 단 몇 시간 안에 거대한 에이리언 성체로 자란다.
영화는 페이스허거부터 체스트버스터를 거쳐 성체가 된 제노모프를 단계별로 등장시켜 주인공들과 대면토록 한다. 제노모프의 숙주가 되고 성체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인물들이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영화의 줄기를 이룬다. 1편과 마찬가지로 주인공들은 제노모프와는 전혀 상관없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이들이지만 불운하게 이들과 대면한 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싸움에 휘말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포와 긴장은 이 영화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도록 한다.
다시 말해 <로물루스>는 그 구성에 있어 1편을 그대로 따온 판박이다. 다른 목적을 향해 내달리던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위험과 마주하는 과정을 고립된 우주공간에서 그려내는 것. 당해낼 수 없는 강적이 주는 공포, 이물감 있는 존재와 맞닿는 두려움, 숨죽인 외계생명체의 기습을 기다리는 긴장까지가 리들리 스콧이 1편에서 구현한 것이다. 이 모두가 <로물루스>에서 구현되니, 이 영화를 시리즈 올드팬을 위한 헌사라 보는 평가가 나름 일리 있다.
▲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
<로물루스> 또한 그와 얼마 다르지 않다. 네 편의 오리지널 시리즈와 두 편의 프리퀄 가운데 명백히 앞의 오리지널 시리즈에 터를 잡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1편과 2편 사이의 이야기란 점에서 시리즈의 일환으로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구성이나 특색 있는 연출을 내보이기보다 프리퀄 이후 사라진 스타일을 완전히 되살리는 데 치중한다.
다시 말해 두 작품 모두 본편의 미덕을 재구성하는 데 집중한 복고적 작품이다. 이로 인해 오리지널 시리즈 팬들에겐 호평을, 새로운 무엇을 기대하는 이들에겐 실망감과 지루함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할리우드의 현주소일지 모를 일이다. 과거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고전하는 현실, 오랜 시나리오 기근과 새로운 도전의 실패를 겪은 뒤 과거의 이야기를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현재 말이다.
많은 이들이 <로물루스>에 환호하지만 그저 마음껏 손뼉을 칠 수만은 없는 건, '이 영화가 진정으로 새로운가' 하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없는 탓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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