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기후정의행진에 갑니다
[하헌종 기자]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희생자 시민 추모제 아리셀 산재 피해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주최로 7/1일부터 현재까지(주말공휴일 제외) 2달 가까이 매일 진행된 시민추모제 광경, 매일 19시부터 20시까지 화성시청 본관 건물 앞에서 시민들의 발언과 예술인들의 추모공연으로 이어져왔다. |
ⓒ 하헌종 |
저는 사회과 교사로 30여 년을 근무하고 퇴임한 이후 정치적 무능력자 신분을 벗기 위해 정당에 가입하였습니다. 60대 남성, 서울지역, 교사로 살아오면서 에너지와 온갖 자원을 탕진한 '꼰대세대'로서 학생들과 제 자녀 등 다음 세대에게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강화시켰던 책임을 느낍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2021년 10월 녹색당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22년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에 처음 참여했을 당시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는 꿀벌들의 실종이었습니다. 이상 기후현상과 꿀벌 응애방제농약의 살포, 말벌의 습격 등이 꿀벌 실종의 주요 원인이었고 그래서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나의 주된 목적은 '꿀벌들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해 꿀벌 모양의 모자를 쓰고 행진에 참여했어요.
작년 923 행진 한달 전 8월 24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핵오염수 태평양 무단 투기를 감행했습니다. 세계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와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의 묵인 방조, 핵산업자본의 후견인 IAEA의 동의하에 후쿠시마 핵폭발 오염수를 알프스라는 정수장치를 통해 희석해서 투기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바다를 핵쓰레기장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내가 작년 9월 23일 기후대행진에 참여한 주된 이유는 후쿠시마핵폐수 태평양 투기 중단이었고 행진 시민들의 주된 구호도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중단"이었습니다. 우리는 핵 드럼통을 메고 행진했습니다.
올해 6월 24일 화성의 아리셀공장에서 리튬전지가 폭발했습니다. 작은 전지의 폭발로 시작했는데 이해할 수 없게 되풀이되는 대형 참사들처럼 어이없는 원인과 대처 과정으로 인해 대형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국내 노동자 5명과 이주노동자 18명을 포함해 노동자 23명이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비극적이게도 하늘색 리본이 상징으로 추가되었습니다.
7월 1일부터 시작된 화성시청 아리셀 희생자 추모문화제에 틈나는 대로 갔었습니다. 한 번은 화성시청 분향소에 분향하고 희생자들 사진 하나 하나와 이름을 보며 기억하려고 있는데 웬 남자분이 다가와 한 영정사진 앞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는 "○○엄마! 나 왔어. 3일만에 보네. 그러길래 왜 내 말 듣지 않고 여기 있냐?" 하면서 흐느꼈습니다. 나 또한 그 희생자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나서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유족들의 입과 귀의 역할을 하는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유가족 통역사를 자임하신 박동찬님을 통해 듣는 희생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억울하고 마음을 짠하게 했습니다.
대형참사가 일어나면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사건 현장을 찾아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라"라고 말하고 이후에는 망각의 상태로 빠집니다. 참사발생 2달 만에 발표된 경찰수사와 언론의 반응은 교과서적인 흐름이었지만 해결되리라는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 몸과 마음으로 느낀 것은 " 자본가들과 정치꾼, 주류언론들은 생명에도 등급이 있다고 행동하는구나. 기억이란 잊혀지는 것이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 중에서 최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파견노동자들은 이윤추구를 위한 수단일 뿐이어서 기업들과 국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위한 비용마저 아까워하는구나...
비자, 국적에 따라 차등보상원칙을 내세워 교섭에 나서지도 않고 개별적으로 유가족을 회유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에스코넥과 아리셀 박순관 대표 등 자본가들과 일이 터지면 무마와 립서비스로 일관하는 대통령이나 총리,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 그리고 오히려 이를 기회로 불법파견 규제완화를 관철하려는 고용노동부 관료들, 적극적인 진상 규명의 의지가 없는 경찰,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바를 외면한 채 백서발간 등 정치적 홍보로 이용하려는 지방자치단체,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왜곡하며 피상적인 보도에 집착하는 언론에 대한 분노가 치밉니다.
이윤 추구 이외에는 무관심한 한국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보는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을 자책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기후위기의 모습은 때와 장소에 따라 꿀벌의 실종으로, 후쿠시마 핵오염수의 태평양 무단투기로, 세월호, 오송리 지하차도, 아리셀 등 대형참사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우리 주변에 나타나지만 무엇보다 기후위기의 본질은 각자도생의 경쟁을 확산하고 각자의 욕망을 부추기는 불평등한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올해 907행진은 대한민국 차별과 불평등의 상징 강남대로에서 열립니다. '나와 내 가족의 강남 진입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기후위기와 노동자나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라는 대한민국 자본의 탐욕스런 부추김을 떨치고 정의로운 체제전환을 위해 나는 907에 자본과 욕망의 거리 서울강남대로를 저항의 거리로 전환하기 위해 갑니다.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을 위해, 우리는 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하헌종씨는 경기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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