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를 보면서 조희연을 떠올리다
[김행수 기자]
▲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러닝메이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지난 20일(현지시각)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유세하고 있다. 팀 월즈는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
ⓒ AP / 연합뉴스 |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제1교원노조 홈페이지에 보수정당 대통령 후보를 "유죄선고받을 중죄인"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진보정당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하는 위원장의 성명이 올라왔다. 가장 큰 교원노조와 두 번째로 큰 교원노조가 동시에 대통령으로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공개 선언을 하고 만인이 보는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와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소집하여 "어떻게 교사들이 이럴 수가 있냐"고 격노하면서 당장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했을까? 검찰총장과 검찰은 교원노조 위원장과 간부들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하고, 영장을 들고 교원노조 사무실로 가 압수수색을 진행했을까? 교육부 장관과 교육당국은 이들 교원단체에 소속된 조합원 교사들을 색출하여 해고하라고 명단 수합에 나섰을까?
보수 언론은 "좌경화된 교사들이 특정 이념으로 학생들을 의식화하려고 했다"면서 속보, 단독 기사를 쏟아내고, 그 교원노조 소속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난리가 났을까? 보수적인 학부모단체와 국기를 든 군복을 입은 할아버지들이 "빨갱이 교사 물러가라"라면서 학교와 교원노조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까?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통령도, 장관도 검찰도, 경찰도, 교육부 장관도 아무 말이 없다. 교원노조 사무실로 쳐들어가는 보수단체나 학부모 단체도 없고, 심지어 이를 심각하게 보도하는 언론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 이야기다. 올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최대 교원노조들이 잇달아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는 공개 선언을 발표하고 나섰다. 그런데, 누구도 잡혀가지 않고,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수사 당국은 물론 교육당국도 아무 말이 없다.
▲ 세계 최대의 교원노조인 NEA 홈페이지. 위원장 명의의 보도자료를 통하여 미국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
ⓒ NEA 홈페이지 캡처 |
그 내용은 "미국 최대의 노동조합(NEA)은 오늘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추천한다고 발표했다.", "우리 교원노조(NEA)는 자랑스럽고 열광적으로(proudly and enthusiastically)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지지를 선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부자들만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나라(미국)를 분열시켜 파괴하려고 하는 유죄 선고 받을 중범죄자(convicted felon,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의미)보다는 학생들과 공교육, 노동하는 가족들의 지도자인 카멀라 해리스 뒤에서 단결할 때이다"라며 트럼프를 비난하고 해리스를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 미국교사연맹 특별 홈페이지. 미국 제2의 교원노조가 이번 대선에서 해리스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최고집행부회의와 총회 소식을 알리고 있다. 교사노조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데 대통령의 격노도 없고, 검찰의 압수수색도, 체포영장도 없고, 교육부도 아무런 대응이 없다. |
ⓒ AFT 홈페이지 캡처 |
총회 하루인 7월 21일, 이 교원노조는 최고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만장일치로 카멀라 해리스를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로 지지한다는 공개 선언을 결의하여 총회에 회부했다.
카멀라 해리스를 미국 대통령 후보로 공개 지지 선언한 최초의 노동조합이 교원노조였던 것이다. 이에 화답하듯 해리스 후보는 직접 이 교원노조의 행사장을 찾아서 자신에 대한 최초의 지지 선언에 감사 인사를 표했고, 이 단체 홈페이지에는 이 사진이 지금도 게시돼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건강 이슈로 흔들리자 해리스가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다. 부통령이자 상원의장이기는 했지만 그리 인기가 높지 않아 트럼프의 대항마가 되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보였던 해리스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당선 유력권까지 가는 데에 1등 공신이 "최초의 공개 지지 선언"을 한 교언노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각종 노조와 단체들의 해리스 지지 선언이 잇따랐고 결국 그는 민주당의 후보로 확정되었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왜 미국은 되는데 대한민국은 안 되나
지금 한창 진행 중인 미국 대선 과정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심지어 시도지사 선거도 아닌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특정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모금하였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정치중립 위반, 불법정치자금 모금에 의한 불법선거운동이라며 집단으로 해고당했다.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전미교원협회(NEA)는 오바마를 지지하며 대통령 선거운동에 5000만 달러(한화 약 600억 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교사들이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을 교육감 후보에게 모금하여 전달했다는 혐의로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교단에서 쫓겨났다.
교육감은 교사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직책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교사들은 교육감 선거에 후원금을 낼 수도 없고, 선거운동을 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교육정책 공약을 만드는 데에도 참여할 수 없다. 도대체 교육감이 누구이냐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고, 교육 정책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교사들을 교육감 선거에서 빠지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렇게 해고된 교사들이 복권되어 다시 교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회복하게 되자 조희연 교육감은 공개 채용 절차를 통하여 이들 중 일부를 특별채용했다. 이들이 교사가 되는데 어떤 법적 제한도 없다. 각종 비리와 불법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사면을 받고 곧바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교사 자격을 회복한 이들이 특별채용되는 것은 한사코 불법이라고 우기는 것은 무슨 논리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를 통해 조희연 교육감을 본다. 카멀라 해리스를 대통령 후보로, 어쩌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면, 그에게 그런 역사적 자리에 앉게 한 1등 공신 중 하나는 최초로 공개 지지를 선언한 미국교원노조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1천만 수도 서울 시민에게 3번 연이어 선택받은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정치후원금을 전달한 교원노조 소속 해고 교사들을 복직시켰다는 이유로 교육감 직위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했다. 30일 대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2심 법원은 조희연 교육감이 이들 해고 교사들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면서 유죄 선고를 내렸고, 29일 대법원에서 이 유죄 선고가 확정될 경우 교육감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 2심 재판 후 법원을 나서는 조희연 서울교육감 |
ⓒ 교육언론창 |
미국 교사들은 대통령 지지 선언도 하고, 정치자금도 모아줄 수 있는데, 대한민국 교사들은 대통령은커녕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교육감 선거에서도 후보 지지 선언은 말할 것도 없고, 1원의 후원금조차 제공할 수 없다. 합리적인 이유도 없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세계 어디에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교사 정치기본권 부여에 관심이 높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 이슈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고, 그 교권의 일환으로 정치기본권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사 유일한 의원내각제의 총리를 지낸 장면 총리가 현직 교사 출신이었다. 몽양 여운형,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등 독립운동가 중에도 교사 또는 교육자 출신들이 많다. 얼마 전 콜롬비아에서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고, 미국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도 교사 출신이다.
그런데 2024년 대한민국 교사들은 출마는커녕 선거운동도 안 되고, 지지 또는 반대 후보 표명도 금지되며,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10원의 후원도 안 된다. 교육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고의 교육전문가들이 최고의 교육수장을 뽑는 선거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60만 교사들에게 정치적 기본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최근 전 사회적 이슈가 된 교권 회복의 첫 단추이다. 정치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본성 회복이기도 하다. 조희연 교육감에게 씌워진 억울한 직권 남용의 굴레를 대법원이 벗겨주는 것이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장면이 될 수 있다. 2024년 8월 29일 대한민국 대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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