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가계대출 금리 대신 '만기·한도' 죈다…실수요자 피해 우려도

유제훈 2024. 8. 2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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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가계대출 조절을 위해 주택담보대출 만기·한도 제한에 나섰다. 기존의 대출금리 인상만으론 부동산 투자심리를 꺾지 못하고 있는 데다, 벌어진 예대금리차에 당국이 '이자 장사'를 경고하고 나서면서다. 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이어 담보인정비율(LTV) 조정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는 가운데, 일각선 이런 한도 축소 흐름이 청년층 또는 실수요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우려하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오는 29일부터 주택담보대출 만기·한도 등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가계부채 관리 종합대책'을 본격 시행한다. 앞서 금리 인상에 더해 주택담보대출 대환대출(갈아타기),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한 데 이어 추가 조치에 나선 것이다.

우선 투기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주택 구입 용도가 아닌 주택을 담보로 한 생활안정자금 대출의 한도를 최대 1억원으로 제한한다. 아울러 서울·수도권 지역의 주택구입자금대출의 최장 대출기간을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한다. 대출의 한도와 만기를 동시에 축소해 대출수요를 누르겠단 것이다.

이 외에도 국민은행은 또 투기성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는 토지(나대지) 담보대출도 취급 중단하며, 신용대출 중 신규 통장자동대출(마이너스대출)의 최대 대출한도도 5000만원으로 제한한다.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할 때 모기지보험(MCI·MCG) 가입을 중단하고 거치기간도 설정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이렇듯 대출 축소에 나선 것은 비단 국민은행만의 일은 아니다. 신한은행도 전날부터 소위 '갭투자'의 기반이 됐다는 비판을 받은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의 취급을 일시 중단했다. 대출 실행일에 임대인(매수자)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하는 내용이다. 주택을 매입하면서 새 전세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갭투자를 제어하겠단 것이다.

또 신한은행은 국민은행과 마찬가지로 플러스모기지보험(MCI·MCG) 취급을 중단한다. 이 경우 소액임차보증금(서울 5500만원, 경기 4800만원, 지방 2500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해 그만큼 대출한도를 축소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외 다른 은행들도 국민·신한은행과 같은 가계부채 대책을 속속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은행권이 이런 조치에 나선 것은 앞선 대출금리 인상이 대출수요 축소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스무 차례 넘는 인상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1%포인트 이상 인상했지만, 집값 상승세가 지속되며 이를 감수하고 대출을 내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면서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이 미뤄지며 대출 막차 수요가 여전했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시장금리 대비 대출금리가 인위적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당국이 견제에 나선 것도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최근 대출금리 인상에 "당국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개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당국도 금리를 넘어 대출한도를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에 적용되는 스트레스 금리를 기존(0.75%) 대비 45bp(1bp=0.01%) 높은 1.2%까지 인상키로 한 데 이어, DSR에 전세대출이나 정책모기지 등을 포함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후에도 수요가 줄지 않으면 LTV를 축소하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수도권에 적용되는 LTV를 현행 50%에서 40%로 줄인다고 가정하면, 가격 10억원의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5억원에서 4억원으로 격감한다. 사실상 극약처방인 셈이다.

다만 금융권 일각선 이런 흐름에 회의적인 분위기다. 부동산 투자심리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란 것이다. 특히 만기·한도를 제한할 경우 청년·실수요자들 역시 규제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수년 전 대출총량 규제 때와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단 우려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투자심리가 꺾이지 않으면 대출한도를 제한하더라도 사인과의 거래, 제2금융권 등 여러 편법이 동원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정작 청년층이나 실수요자들이 필요한 수준의 대출을 받지 못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 있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4~5년 전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급등과 이를 막기 위한 대출 총량 규제 등으로 빚어졌던 일들이 재현될 가능성이 나타난 셈"이라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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