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공급로가 막힌다…발전설비 55% 늘 때 송전선로 9%
충남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건설사업. 서해안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의 천안 차세대 디스플레이 첨단 특화단지 등으로 공급하는 이 사업은 2012년 6월 준공을 목표로 했지만, 12년 넘은 현재까지 공사중이다. 선로가 지나갈 예정인 지역의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해서다.
지난 21일에는 동해안 발전소의 전력을 수도권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으로 보내는 데 필요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에 대해 경기 하남시가 건축허가를 최종 불허하면서 2026년 6월까지 준공한다는 계획을 지연하게 됐다.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발전설비만 빠르게 늘고 송배전망 건설은 지지부진하면서 병목 현상(Bottleneck effect)이 심화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전력 공급이 끊기는 ‘블랙아웃(대정전)’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6일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국내 발전설비는 2014년 9만3216㎿에서 지난해 14만4421㎿로 55%가량 증가했다. 경제성장과 전기자동차 보급, 인공지능(AI) 확산 등으로 전력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송배전망의 주축인 송전선로는 3만2795C-㎞에서 3만5596C-㎞로 약 9% 느는 데 그쳤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로 좁혀 보면 한전은 송전선로를 계획 대비 25% 정도만 확충했다.
송배전망 건설이 늘어지는 이유는 관련 지역에서 “송배전망이 들어오면 사람 건강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반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를 시작으로 반복되고 있다. 주민과 환경 관련 시민단체가 실력 행사에 나서면 지방자치단체는 이들 눈치를 보며 인·허가를 주저하거나 내주지 않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송배전망 확충 노력을 소홀히 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기 보급을 강하게 밀어붙인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송배전망 건설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발전설비만 급증하면 송배전망에선 병목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전력 소매상인 한전은 일부 발전설비를 쉬게 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동해안권의 석탄화력발전사 4곳(민간 3사 포함)의 발전기 8기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사실상 ‘올스톱(All stop)’된 적 있다. 이 가운데 한 민간 발전사 관계자는 “연간 가동률이 50%는 돼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15%에 그치고 있다”면서 “올해만 2000억~3000억원 정도의 적자를 예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력 공급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가령 첨단 산업단지에 대한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면 해당 산업과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최악의 경우 블랙아웃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앞서 2011월 9월15일 전국적 블랙아웃 사태가 일어났을 당시 신호등이 꺼지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신용카드 결제가 먹통이 되는 등 대혼란이 빚어진 바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해외국가들도 송배전망 병목 현상 문제를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보고서를 통해 “전력망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가 크게 후퇴하고 정전이 늘어 경제와 개인 복지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대안으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하루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본다. 이 법안이 적용되면 송배전망 건설에 정부가 직접 나설 수 있어 지자체 인·허가 절차 등에서 속도를 높일 여지가 커진다. 또한 송배전망이 깔리는 지역에 대해 충분히 보상해줄 수 있는 근거 등도 마련된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발전설비가 주로 지방에 있는 반면 주요 수요자는 수도권에 몰려 있는 불일치를 완화해 송배전망 수요를 떨어뜨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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