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돌봄보험'의 충고 "저출생? 돈만으론 부족" 또다른 타깃
촘촘하게 짜여진 일본의 노인 돌봄 시스템을 말할 때면 등장하는 개념이 있다.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개호(돌봄) 보험(介護保險)이다. 개호보험을 일본이 도입한 건 2000년. 해당 제도의 구상과 도입을 담당, ‘미스터(Mr) 개호보험’으로 불리는 이는 야마자키 시로(山崎史郎·69) 내각관방 참여(총리 어드바이저)다.
그는 소설 형식을 빌어 550쪽이 넘는 『인구전략법안』을 지난 2021년 발간했는데, 일본 정·관계에서 “소설이지만 현실을 잘 반영했다”며 지금껏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달 25일 도쿄 나가타초(永田町) 일본 내각부 청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80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인구 문제는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설의 주인공 노구치(野口)는 39살, 내각부의 과장급 공무원이다. 도심 외곽 맨션(아파트)에 살며 하루 1시간 30분 전철을 타고 정부 청사로 출근한다.
소설은 노구치가 ‘소국(小国)을 향하는 일본’이라는 일본의 인구 감소 문제를 다룬 해외 리포트를 마주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이와 이름만 다를 뿐 노구치는 마치 야마자키를 본따 만든 인물처럼 보일 정도로 그와 같은 고민을 한다. 야마자키는 왜 소설로 인구 문제 이야기를 제기했을까.
“3년 전 리투아니아 대사를 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시간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그간 인구 문제에 대해 생각해온 것들을 써보려 했다. 실은 인구 문제는 굉장히 복잡해서 논문으로 쓰면 방대해져 아무도 안 본다. 소설이라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해보자고 생각했다. 젊은 관료들, 정치인, 언론인들이 책을 읽고 인구 문제를 이해했다고 하더라. 많은 이가 읽어줘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그는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8년 후생성(현 후생노동성)에 들어갔다. 후생성이 개호보험 도입을 고려하기 시작한 91년부터 관여한 그는 9년 뒤인 2000년 개호보험이 일본에 생겨날 때는 '미스터 개호보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약 40년에 걸친 관료의 생활을 접고 리투아니아 대사를 거쳐 그는 2022년부터 내각관방 참여를 맡고 있다.
“원래부터 복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행정관이 된 것이었다. 어르신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호보험 시스템을 도입했다. 최초 법안 작성부터 거의 10년이 걸렸지만, 성취감도 있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른바 ‘리먼 쇼크’ 후의 일로 젊은이들의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히비야(日比谷) 공원에 새해맞이를 못하는 젋은이들이 모여서 도시락을 먹고 밤을 지새우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이후 2010년 경부터 젊은이들의 문제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먼 쇼크로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잃고, 생활 곤란에 빠졌다. 미혼율은 치솟았다.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문제는 그에겐 저출생 문제로, 또 인구 감소 문제로 다가왔다. “차원이 다른 저출생 대책을 내놓겠다”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를 위한 어드바이저를 맡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인구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민간 모임인 ‘인구전략회의’ 간사도 맡고 있는 그에게 가장 효과적인 저출생 대책을 묻자 다른 말을 꺼냈다.
“고령화 문제도 해결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는 정말 효과가 있는지 다음 세대가 되어야 알 수 있다.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은 앞으로 20년, 30년 뒤 효과가 나는 일이라고 본다. 지금 당장, 혹은 내년에 효과가 나는 일은 절대 없다. ”
구체적인 저출생 대책이 아닌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강조하며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제도나 정책으로 간단히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령화 문제보다 저출생이 더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어려운 일이기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각오하고 해야 되는 일이란 얘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도록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희망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 않으냐는 말에 그가 웃었다.
“물론 결혼이나 출산은 개인의 자유다. 다만 일본에도, 한국에도 희망하지만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출산하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그간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했던 사람들이 희망을 갖지 않겠나.”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를 묻자 그는 뜻밖에도 고령자들의 인식 문제를 꺼내 들었다. 고령자들의 이해를 얻어야 하는 것이 향후 도전과제란 취지였다.
“개호보험의 경우 당신도 노인이 된다는 이유로 도입을 위한 설득이 가능했다. 하지만 고령자들은 아이들의 문제를 '자신의 일'로 여기기 어렵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일을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문제다. 일본엔 에키덴(駅伝·장거리 달리기 선수들 5~10인이 각 코스를 돌며 순위를 겨루는 육상경기)이란 스포츠가 있는데, 인구 문제는 이것과 닮았다. 제1번 주자가 2번 주자에게 바통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면 안 된다. 저출생 대책 마련을 에키덴처럼 생각해줬으면 한다.”
한국 정부가 신설할 예정인 인구전략기획부 이야기를 꺼내자 야마자키는 “지금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사회 전체적으로 거의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 시작이다. 개호보험을 도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돌봄은 가족들이 하는 것”이라며 반대가 심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사회가 노인을 돌봐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한국 정부의 대처에 대해 조언을 하자면, 현금 지급 등의 금전적인 지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또 하나는 일본도, 한국도 아이가 태어나면 여성에게 부담이 집중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쪽이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구 문제의 최종 목표는 모든 이들이 아이들을 소중히 키우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이뤄진다면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늘어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지 않겠나.”
도쿄=오누키 도모코·김현예 특파원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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