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반도체 허브' 꿈꾸는 체코, 대만과 밀착...한국과도 협력할까
다음 달 윤석열 대통령 체코 방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 재계 총수가 동행하게 되면서, 양국 간 반도체 협력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국내에서는 체코 원전 수주 성과에 주로 주목했지만, 체코는 반도체 산업에서 대만과 국가적 협력을 진행하는 등 ‘동유럽 반도체 허브’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체코+대만, 4년째 반도체 밀착
26일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다음 달 대만 반도체연구소(TSRI)는 최초의 국제 반도체 설계 교육센터를 체코 프라하에 연다. 대만이 자원과 장비·전문가를 제공해 체코에서 반도체 전문가를 양성하고 체코 학생들을 대만에 유학생으로 받으며, R&D 센터에서 개발한 특허를 상용화해 대만 기업이 체코에 진출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체코 대학과의 R&D 협력은 이미 진행 중이다.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20년 체코 상원 의장이 대만을 방문해 대만 의회에서 중국어로 “나는 대만인입니다”라고 발언하며 양국의 파격적 우호 관계는 시작됐다.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이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유럽에서 실리콘 동맹을 확보하려는 대만과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는 체코의 필요가 맞아떨어졌다. 이후 대만 장관급 수십 명과 체코 상하원 의장이 양국을 찾는 등 밀월 속에 반도체 협력을 구체화했다.
지난 21일 TSMC는 독일 드레스덴에 첫 번째 유럽 내 반도체 생산기지를 짓는 준공식을 가졌는데, 대만 경제부는 드레스덴과 인접한 체코에 대만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을 입주시키기로 했다. 대만 소부장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정부가 지원하면서, 그 1차 핵심 거점으로 체코를 점찍은 것이다. TSMC는 드레스덴에 필요한 반도체 인력을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체코에서도 수급한다는 계획이다.
‘미국보단 우리’ 대안 자처하는 유럽
체코를 눈여겨본 건 대만뿐이 아니다. 전 세계 2위 전력 반도체 기업인 미국 온세미는 지난 6월 체코에 20억 달러(약 2조6500억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회사는 “체코 역사상 가장 큰 민간 투자 중 하나이자, 중부 유럽 최초의 첨단 반도체 제조 투자”라며 “체코에서 전기자동차, 재생 에너지, AI 데이터센터용 전력 반도체를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2022년 온세미는 경기도 부천에 10억 달러(약 1조 3200억원)를 투자해 전력 반도체 생산 기지를 지었고, 이번에도 한국과 미국, 체코를 저울질하다 체코를 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체코 정부는 10년간 세금 면제와 최대 100억 크로네(약 5900억원)의 국가 직접 보조금을 약속했고, EU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도 논의 중이다.
유럽도 미국처럼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려 한다. 유럽은 보조금 규모(미국 527억 달러, 유럽 430억 달러)로는 미국을 따라갈 수 없고, 엔비디아·구글·애플 같은 첨단 칩 고객사들도 죄다 미국에 있다. 그러나 유럽은 NXP(네덜란드)나 보쉬(독일) 같은 자동차용 반도체 회사를 보유한 강점을 십분 활용하려 한다.
또한 TSMC의 미국 애리조나 팹 건설 지연 등에서 보듯 미국 내 높은 인건비가 문제되자 유럽은 이 부분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지난주 독일 드레스덴 시장은 대만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제조업 경험이 많아 애리조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노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보단 우리’ 부상하는 체코
냉전 시대에 동구권 전자 산업의 중심지였던 체코는 공산권이 붕괴한 후 외국 투자를 유치해 제조업을 고도화하는 데 힘써 왔다. 최근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자, 체코의 존재감은 커지는 추세다. 블룸버그는 지난주 ‘체코의 조용한 마을이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유럽을 돕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체코로 향하는 외국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보도하며 “급격한 임금 상승과 공급망 붕괴, 중국산 전기차와 경쟁에 직면한 고객사들이 체코를 택했다”라고 분석했다.
체코는 첨단 제조 기술은 약하지만 전자현미경 등 일부 장비와 RISC-V(오픈소스 반도체 아키텍처) 같은 설계 분야에 강점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용석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체코는 유럽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에 우수한 제조 인력을 갖췄다”라며 “한국 반도체 기업과의 패키징 분야 협력을 제안해 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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