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그리스도인의 듣기
목사로서 사역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자리 중 하나가 심방이다. 그런데 심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배우기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청’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 가르침에 점점 더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아마추어다. 듣는 게 쉽지 않다. 물론 듣지만 문제는 듣는 척만 할 뿐이란 점이다. 화자의 이야기를 섣불리 판단하고 있거나 해답을 찾고 있을 때가 많다. 무엇보다 그의 말이 끝난 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떠올릴 때가 많다는 점이다.
사실 경청은 인간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혁신하는 교회’의 저자 스콧 코모드는 이렇게 말한다. “잘 대답하려고 경청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다. 사실은, 우리 자신이 변화되려고 경청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갈망과 상실을 정말 공감하며 듣는다면 듣는 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시대 사람들은 자아 발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를 위해 MBTI 같은 심리검사 도구를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아 발견은 책상에 앉아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타인의 이야기와 조우하는 가운데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게 더 크다. 더불어 수많은 타인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가 통합되며 자아상이 더욱 단단해진다. 즉 경청은 역할이나 과업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말하는 상대를 위함도 아니다. 그저 모든 ‘듣는 이’들을 위해 필요하다. 성경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 10:17)라고 기록한 것처럼 믿음 역시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경청은 어찌 가능한가. 잘 경청하는 자들에게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잘 경청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상대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잘 듣고 잘 물으면 그것으로 되는가. 아니다. 이는 그저 기술적으로 접근한 답이다.
사실 경청은 누구나 그 어떤 준비 없이도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 증거다. 그들은 진짜로 경청한다. 상대의 삶이 정말로 궁금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제3자가 볼 때 정말 무의미해 보이는 이야기라도 상관없다. 상대의 ‘정보’가 아니라 상대의 ‘존재’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랑이 식었을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징조란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의 이야기가 정말 궁금하면 잘 묻고, 무엇보다 잘 듣는다.
그런데 모든 관심이 오직 자기 목소리에 있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상대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가 듣기만을 원한다. 인간의 듣기 능력이 본래 이토록 형편없었을까 싶을 정도인데, 근래 더 처참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듣기 능력을 앗아간다. 텍스트 기반이 문제가 아니라 대화 자리 자체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경청과 신앙의 관계에 주목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경청한 자에게 맺히는 최고의 열매는 바로 ‘사랑’이다. 그 열매에 잇댄 자는 자연스레 이웃의 말에도 경청하게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듣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로저스 아저씨네 동네’에서 주인공 로저스는 이런 말을 자주 언급한다. “사연을 듣고 나면 사랑하지 못할 대상은 없다.”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먼저 그들의 사연을 듣고 난 뒤 미워해도 늦지 않다. 상대가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보여야 할 반응은 귀를 닫고 망상에 빠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더 말해 주세요”라고 청하는 것이다. 이것이 경청이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듣기’다.
손성찬 이음숲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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