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힘이 센 개인정보, 위태로운 개인

정승훈 2024. 8. 2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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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훈 논설위원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도입
미룰 수 없는 측면 있지만
보안문제에 각별히 신경써야

개인정보 포함 빅데이터 각광
산업엔 유용하고 도움 돼도
유출되면 개인은 치명적 피해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를 일상에 활용한다는 건 양날의 검 같은 일이다. 제대로 사용하면 개인은 그야말로 최적화된 맞춤형 서비스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동의 없는 유출 등이 발생할 경우엔 피해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나의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불안은 증폭된다. 그 정보가 가족이나 주변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개인정보 유출은 개인에겐 그만큼 치명적이다. 데이터는 힘이 세고, 특히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아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민감한 개인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사례 중 손꼽히는 건 우리의 건강보험체계다. 우리 정부는 국민들의 생체정보와 관련한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암과 중증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의 치료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환자들이 본인의 개인정보를 제공한 덕분에 우리나라는 이들 질환에 대한 세계 최고 수준의 치료 노하우를 갖게 됐다. 한국의 의료를 세계적 수준으로 높인 것은 이런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던 건강보험체계가 큰 힘이 됐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관련 기업의 활성화가 국가 경쟁력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정부는 각 분야의 빅데이터 구축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학업 관련 정보나 사회 보장 정보 등을 가명 처리 과정을 거쳐 기업·기관이나 연구자, 개인에게 개방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의도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교통카드 이용 내용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20개 분야 공공데이터를 ‘국가중점데이터 개방사업’에 따라 개방했고, 지난 5월 교육부는 3년이 경과한 수학능력시험 성적 등을 정보 주체가 식별되지 않도록 해서 연구자에게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학술적 연구와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AI 기술 개발을 위한 데이터 제공 확대라는 측면도 있다. AI 기술 생태계에서 ‘데이터 제공→기술 발전·기업 경쟁력 강화→국민 편의 개선’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는 의도다.

내년 3월 도입될 예정인 ‘AI 디지털 교과서’도 비슷한 맥락이다. AI 기술로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수준을 분석해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차원이다. 초등학교 3∼4학년과 중1, 고1을 대상으로 수학·영어·정보 과목에서 시작된다. 2028년까지 국어·사회·과학·역사 등의 교과에도 도입될 예정이다.

학생들의 취약점을 분석해 맞춤형 학습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의도지만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성적 등 민감한 정보가 수집되기 때문에 우려도 제기된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면 학생들은 여러 출판사가 개발한 교과서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축적된 학생들의 학습 정보가 업체들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주체가 정부가 아닌 기업이 되는 만큼 염려하는 시선이 많다. 유출 사고는 물론 기업 간 협약 등에 따라 사용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넘겨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알리페이에 대한 카카오페이의 개인신용정보 이전 논란이 대표적이다. 개별 학생의 학습능력과 성적 데이터는 우리 사회에서 생체정보 못지 않게 민감한 개인정보다. 게다가 정보 주체는 미성년자들이다. 자칫 관련 데이터가 공개되거나 유출될 경우 학생들과 학부모의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

AI 기술이 다양한 분야에서 확산되고 있고, 이 분야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의 척도가 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AI 교과서 활용은 미룰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유 기업에 대한 관리 등 보안에는 정부가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별도로 암호화해 정보 주체가 식별되지 않도록 하고, 입시정보 사이트처럼 일정 기간 활용 이후 입력된 정보를 파기하는 식의 관리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개인주의와 인본주의가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데이터가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에서 진짜 위태로운 건 모든 개인인지도 모른다. 각종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현실에서 민감한 정보가 유출되면 피해자가 된 개인은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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