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급 적용 안 된다는 이유로 호텔 화재 위험 방치해서야
불 잘 붙는 매트리스에 스프링클러는 미설치
에어매트 추락사까지…재발 막을 대비책 시급
순식간에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천 호텔 화재의 원인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화재 시 인명을 살리기 위한 각종 대비책이 단계별로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객실의 벽걸이 에어컨에서 전기 합선 등으로 튄 불씨가 침대 매트리스에 옮겨붙으면서 순식간에 불이 번진 것으로 추정한다. 숙박업소는 난연성 소재로 된 제품을 사용해야 위험이 덜하다. 그러나 사고가 난 호텔의 침구는 삽시간에 불에 타면서 연기를 뿜어내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잡혔다. 화재가 발생하면 천장에서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가 이 업소엔 설치되지 않았다. 이 호텔처럼 지상 8층인 건물은 2018년부터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사고가 난 호텔은 관련법 개정 이전인 2003년에 건축됐다. 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 바람에 위험한 상태로 방치돼 온 셈이다.
스프링클러 미설치와 가연성 침구 비치는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 이전에 건축된 무수한 숙박시설의 실정이 이 호텔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숙박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1843건에 이른다. 32명이 사망했고, 355명이 다쳤다. 거듭되는 사고를 보면서도 당국은 예고된 위험을 방관했다.
안타까움을 자아낸 희생자 A씨(25)와 모친 사이의 사고 당시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도 해당 호텔의 취약한 화재 대비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A씨가 ‘엄마 사랑해’라는 첫 문자를 보낸 시각은 오후 7시49분쯤이었다. 발화 후 15분이 안 됐을 시점이다. 그런데도 탈출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엄마·아빠·동생 모두 미안하고 사랑해’라는 마지막 문자를 보내기까지 8분 동안 속수무책이었다.
구조 과정에서 빚어진 참변도 짚어봐야 한다. 사망자 7명 중 2명은 추락사로 판명됐다. 소방대원이 설치한 에어매트를 향해 7층에서 뛰어내렸다가 사망했다. 한 명은 가장자리에 떨어져서, 한 명은 에어매트가 뒤집혔기 때문이라니, 이 무슨 어이없는 비극인가. 소방당국이 뒤늦게 에어매트 사용 지침을 숙지하고 훈련을 진행한다니 이런 사후약방문이 또 있을까.
평소 대비부터 구조까지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이번 화재를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화재 공포증’이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안전불감증은 나아진 게 없다. “숙박업소의 매트리스는 난연 제품을 써야 한다”(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든가, “숙박업소의 경우 스프링클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문가 의견을 경청해 반복되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사전·사후 대비가 뻥 뚫린 지금 상태를 하루빨리 손보지 않으면 또 다른 참사가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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