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여야 대표회담, ‘그들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야 대표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솔깃했다. 정치다운 정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두 대표가 만난다고 하니 변화의 실마리라도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 어려운 만남이 이재명 대표의 코로나 확진으로 연기되었다고 해서 아쉬웠다. 연기가 된 것인지 성사 여부 자체가 불투명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만나겠다고 해서 시작된 일인 만큼 나중에라도 회담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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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면공개 회담은 성과 내기 힘들어
지지층 의식해 타협의 여지 없어져
‘회담 생중계’ 주장 철회한 건 다행
정치 복원 위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
여야 대표가 만난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기는 했지만,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는 솔직히 크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무엇보다 대표회담의 형식 때문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측에서 대표회담을 생중계하자고 했는데 이는 적절한 회담 형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선거 운동 때라면 각 당이나 후보자가 마련한 비전이나 공약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하고 상대 후보와의 차별성도 부각해야 하니 후보자 간 토론회를 TV로 생중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상시의 정치에서 여야 대표회담을 생중계하자는 것은 만남을 통해 정치적 쟁점이나 이견을 양보와 타협으로 풀어내기보다는 각자의 지지층을 향해 자기 이야기만 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지난번 윤석열 대통령과의 이른바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대표가 상대방 앞에서 준비해 간 원고를 일방적으로 읽었던 서툰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뒤늦게나마 한동훈 대표가 꼭 생중계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다행이다. 당초 한 대표는 생중계 방식의 회담을 통해 자신의 토론 실력과 논리를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치인이 되었지만, 한 대표는 여전히 검사 시절 법정에서 변호사와 법 논리를 두고 공방을 벌였던 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만남은 원형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 앞에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대결을 하는 검투사들의 경기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일 회담이 이렇게 진행됐다면 그 결과는 보나마나 뻔하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나의 주장만을 고집하려 했을 것이다.
사실 생중계가 아니더라도 100% 공개된 형식의 여야 대표회담 역시 비슷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국회에서 얼굴을 붉히고 다투더라도 나중에 조용한 곳에서 여야가 따로 만나 서로의 입장에 대해 듣고 그 차이를 해소해 내는 ‘뒷면의 정치’가 작동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당 대표회담이나 원내대표 회담과 같은 고위급 정치회담에서조차 정치 지도자의 재량이나 독자적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국가 간 회담을 생각해 보면, 실무자들이 회담 준비과정에서 의제를 조율하지만 거기서 합의되지 못한 것은 최고 지도자들 간의 회담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실무자 간 합의가 쉽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안이라는 의미일 테고, 결국 최고 책임자의 통 큰 결단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런 점은 국내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회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공개된다면 ‘통 큰 결단’은, 특히 강성 지지자들에게는, 일방적 양보나 패배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지지층을 의식한 강경 발언이 앞설 수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손을 잡고 반걸음만 앞서가라”고 조언한 바 있다. 이 말은, 국민의 뜻을 살피되,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설사 지지자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그들을 설득하고 국가발전, 사회 통합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례로 김 대통령은 일부 지지층의 반대에도 박정희 기념관을 승인하고 지원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앞서 이끌기보다 강성 지지자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오히려 한걸음 뒤에서 무기력하게 이끌려 가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정치인들도 왜소해졌다.
그래서 대표회담을 하게 된다면 다만 30분이라도 두 대표가 비공개 회담을 갖기를 권한다. 그 자리에서 외부 눈치 보지 말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회담 의제도 너무 특정해서 좁히지 말고 최근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 설사 한 번의 대표회담에서 구체적 성과가 없더라도 그런 형식의 만남 자체가 주는 울림이 작지 않을 것이다. 여야 대표회담이 한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정치의 복원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별도로 한 가지 꼭 지적할 일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독립기념관장 인사에 반대하며 지난 광복절 기념행사에 불참했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광복절이 어떤 날인가. 그날 민주당은 형제간 분란이 생겼다고 부모 제삿날에 나타나지 않은 못난 자식 같아 보였다. 모름지기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한다면 다툴 때 다투더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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