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사과 만든 기후플레이션, 스마트 농업에 해법 있다"[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 2024. 8. 2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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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령 농림부 장관과 이인영 대풍농원 대표의 '사과밭 대화'


장세정 논설위원
사상 최장 열대야(서울 기준 34일)가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기승을 부리던 지난 23일 오후. 춘천역에 내려 차량으로 20여분을 이동하니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대풍농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인영(49) 대풍농원 대표가 가족, 그리고 외국인 계절 근로자 한 명과 함께 1만평 규모의 과수원을 가꾸고 있었다.

부모 때부터 2대째 경영하는 이 대표의 과수원은 복숭아와 사과를 과거엔 7대 3 비율로 재배했는데, 몇 년 전부터 2대 8로 비율이 역전됐다. 이 대표는 "지구 온난화로 사과 재배지가 (경북·충남에서) 강원도까지 북상하면서 위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춘천 일대 기상 조건이 사과 재배에 더 적합해졌다"고 설명했다.

「 올해는 평년 수준 사과 수확 기대
9월 이후 태풍이 중대 고비 전망

기상 영향 덜 받는 스마트 과수원
사계절 내내 안정적 공급 가능해

‘온라인 도매시장’ 집중 육성중
쌀 의무 매입은 공급과잉 초래

지난 겨울과 올봄에 '금 사과'란 말이 나올 정도로 사과 가격이 폭등해 사회적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자 주부들의 장바구니에 불만과 시름이 깊어졌고, 급기야 대통령의 '대파 발언'이 오해와 억측을 일으켜 4월 총선 민심에도 격랑을 일으켰다.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 일상이 된 상황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또다시 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벌어질까. 사과 한 쪽 먹기도 겁나는 '금 사과' 사태가 또 벌어질까. 사과의 가을 작황과 수급 전망 등이 궁금해 재배 현장으로 직접 달려가 봤다.

사과 재배 적지, 강원도까지 빠르게 북상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아 여기저기 사과에 붉은 빛이 탐스럽게 물들어가는 대풍농원 현장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이인영 대표의 즉석 문답이 벌어졌다. 폭염 와중에 모자도 선글라스도 쓰지 않은 두 사람의 볼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3일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에서 사과와 복숭아를 재배하는 이인영 대풍농원 대표 가족을 만나 사과 작황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장세정 기자

▶송미령 장관=올해 사과 작황이 어떤가요.
▶이인영 대표=지난해는 비가 많이 와서 수확량이 급감했는데, 올해는 현재까지 양호합니다.
▶송장관=사과나무 위에 친 푸른색 차광막의 효과는 어떤가요.
▶이 대표=폭염으로 과일이 햇빛에 데이는 일소(日燒) 피해를 막기 위해 쳤는데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송장관=사과 당도는 13~14 브릭스(Brix) 정도 되나요.
▶이 대표=16브릭스는 돼야 소비자 입맛에 맞아 재구매로 이어집니다. 좋은 묘목을 조달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송장관=농업기술원이 잘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사과나무를 6~10줄로 심는 강원형 다축수형(多軸樹形) 과수원을 운영하시는데, 1축·2축 등 기존 수형보다 수확량은 어떤가요.
▶이 대표=다축수형은 수확량이 2~3배 증가하고, 일손은 3분의 1 수준으로 절감됩니다.
▶송장관=휴대전화로 차광막 등을 조절하는 스마트팜 과수원을 해보시니 어떤가요.
▶이 대표=기존의 미세살수 방식보다 차광막 방식은 설비 비용이 2배 정도 들어가지만, 약제비 절감과 방제 효율, 노동력 절감과 생산량 증가, 상품성 향상, 환경 친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스마트 과수원 방식이 더 유리합니다.
▶송장관=스마트 농법을 현장에서 검증하면서 피드백을 계속 좀 해주세요.
▶이 대표=예. 인간이 환경을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후위기 시대에는 첨단 농업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해법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내친김에 장소를 인근 찻집으로 옮겨 기후 위기 시대의 농정 핵심 이슈를 화제로 송장관을 추가 인터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말 개각 때 발탁한 송장관은 농림부 역사상 첫 여성 장관이다.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농촌 지역개발사업 분야 권위자로 농촌경제연구원에서 26년간 일해왔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23일 강원도 춘천을 방문해 신품종 복숭아 '강원1호'와 '설홍'을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은 육동한 춘천시장. 장세정 기자


과수 생육 시기별로 위험요소 철저 관리
-올해는 금 사과 사태가 없을까.
"지난해에 사과·배는 겪을 수 있는 모든 재해를 다 겪으면서 생산량이 30%나 줄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연초부터 농촌진흥청·농협·지자체 등 유관기관들과 함께 생육 시기별로 위험 요소를 철저히 관리하는 '사과 안심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냉해·폭우·폭염 등 자연재해는 물론 각종 병해충 피해 우려 지역을 중심으로 모니터링하고 농가 기술지도를 강화했다. 다행히 올해는 사과·배 등 주요 과수 생산량이 평년 수준이어서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39만t이었는데 올해는 최대 49만t으로 내다봤다. 다만 9월 이후엔 태풍이 중대 고비가 될 것 같다."
-농산물이 장바구니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는데.
"사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농축산물의 가중치는 전체의 6.48%에 불과해 고물가의 최대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택·수도·연료(17.2%), 교통(11.1%), 보건(8.4%) 등의 비중이 크다. 다만 농축산물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이기에 체감도가 높아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농업인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역대 정부마다 유통 구조 개선을 외쳐왔는데.
"과거와 달리 이번엔 경쟁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전국의 공영 도매시장에 집중됐던 농산물 도매 거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전국 단위에서 거래 참여가 가능한 '농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을 개설했다. 서울 가락시장은 193개 품목을 연간 5조원 규모로 거래하는데, 올해 5000억원 규모인 온라인 도매 시장을 2027년까지 5조원 규모로 키울 것이다. 과다하다는 지적을 받는 위탁 수수료의 적정성을 살펴보고 도매시장 법인의 지정·운영 제도를 개선하겠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4월 21일 경북 문경 따봄농장(대표 이주연)을 방문해 사과꽃 수분 작업을 한 뒤 이주연 양 가족과 포즈를 취했다. 송 장관은 여름 휴가 때 다시 농장을 방문해 작황을 점검했다.[사진 농림부]


기존 온실 30%, 2027년까지 스마트화
-기후플레이션 충격을 최소화할 대책이 있다면.
"기후변화로 농산물 재배 적지가 이동하고, 폭우·폭염 등 이상 기후에 따른 병해충 피해 증가로 농산물 수급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력과 생산성을 높일 대책을 마련했다. 예컨대 강원도 같은 신규 재배 적지를 중심으로 일반 과수원보다 품질과 생산성이 높은 스마트 과수원 단지를 조성해 중장기적으로 기상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안정적 생산 기반을 확보할 것이다. 변화하는 기후에 맞는 신품종을 개발 보급해 과수의 생육·출하 시기를 다양화할 것이다."
-스마트팜 확대가 기후위기 시대에 대안이 될까.
"스마트 농업 기술을 활용하면 기상재해 등 환경의 영향을 줄이고 사계절 내내 일정한 품질의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기존 온실의 30%를 2027년까지 스마트 시설로 전환할 것이다. 농지와 산업단지에 수직농장 설치를 허용해 스마트팜 입지의 걸림돌이 없도록 지원하겠다. "
우리 국민의 식습관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kg에서 지난해 56.4kg으로 58.7% 감소했다. 같은 기간에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5.2kg에서 60.5kg으로 무려 1063.5% 급증했다.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사상 처음 앞질렀다.
-쌀이 남아돈다고 하니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약해진 듯하다.
"쌀은 평년작만 되더라도 매년 20만t 이상 초과 생산될 정도로 구조적 공급과잉이다. 문제는 주요 식량 작물인 밀(자급률 2.0%)과 콩(33.6%)을 수입에 의존하는 데 있다. 2023년 기준 식량자급률은 쌀 포함시 44.4%, 쌀 제외시 22.3%였다. 전쟁이나 기상 이변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발생하면 식량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 국민의 식생활 변화를 고려한 국내 생산 구조조정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등 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18일 충남 당진 해나루쌀조합 들판에서 올해 첫 수확한 조생종 벼를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송 장관은 취임 이후 235일간 141회 현장을 방문했다. [사진 농림부]


양곡관리법 개정안, 미래농업 투자 제약
-최근 3년(2021~2023년) 곡물 자급률이 19.5%로 사상 처음 20% 이하로 떨어졌다.
"2027년 식량자급률 55.5%를 목표로 밀·콩·가루쌀 등 전략작물의 생산·소비 기반 확충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전략작물 직불금은 품목을 확대하고 단가 인상으로 농가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14개 농식품 경제안보 품목의 중점 지원 대상 기업에 재정·조세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차 발의했는데.
"법 개정안의 핵심인 쌀 의무매입은 남는 쌀의 판로를 정부가 보장한다는 신호로 인식돼 농가의 재배 유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농가의 쌀 생산을 더욱 증대시켜 공급 과잉이 심해지고 쌀값이 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의무매입에 막대한 재정을 지출하면 농업직불금 5조원 확보, 청년농과 스마트 농업 육성, 밀·콩 등 전략작물로의 재배 전환 등 미래 농업에 대한 투자에 큰 제약이 된다. 부작용이 너무 커서 수용하기 어렵다."
-올해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지 20주년이다.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지난 20년 동안 59개국과 21건의 FTA를 체결했다. 농업계가 걱정했지만, 개방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결과적으로 FTA는 우리 농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지난 20년간 농업 생산액은 65%, 농식품 수출액은 332%나 증가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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