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재일교포 지위 강화는 일본 내 식민지 갖는 효과”
한일수교 앞둔 60년 전 한국 정부의 고뇌
보고서는 당시까지 문제가 되었던 사안들을 다루었다. 청구권, 교포의 법적 지위, 선박과 문화재 문제, 그리고 기본관계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사안들이 한국에 크게 불리하지 않게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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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회담 관련 대통령 보고서 곳곳에 박정희 고민 보여주는 메모
“외교정책 담당자가 일본 주장 앞에서 위축되는 모습 유감” 질타
“교포의 제한 없는 참정권 확보가 기천만 달러 차관보다 훨씬 중요”
내년 한일협정 체결 60년…당시 정부 고민과 여론 동향 이해 필요
」
평화선에 대한 정부 내 이견
그러나 한일협정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해서 한국 정부 내부에서 모든 기관의 의견이 일치되지는 않았다. 일본이 반발하고 있던 바다 위의 평화선(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나라 연안수역 보호를 목적으로 선언한 해양주권선)과 관련, 외무부는 평화선이 국제법상으로 불법이기 때문에 어업협력이 합의되면 자동적으로 소멸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반면, 국방부는 전쟁 시기 맥아더 라인의 선례에 따라 국방선으로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협상을 주도했던 무임소장관은 일본의 어로 작업을 허가하는 조건으로 존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보고서에는 이에 대한 논평이 달렸다. 누구의 논평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대통령의 지시였던 것 같다. ‘정부의 외교정책 수립가나 한일교섭의 대표자가 평화선의 불법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일본 측 주장 앞에 위축되고, 마치 현행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고 있지 않는가 염려되는 바, 이는 심히 유감’이라는 내용이었다.
국제법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
오히려 국제법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국제법은 국내법처럼 확고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며 ‘국제법은 국제관행 이후에 합리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일 간의 교섭이 오히려 국제법의 새로운 실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1952년 중남미의 200해리 선언, 1954년 호주의 해양주권 선언이 그 실례로 제시되었다. 호주의 해양주권 선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 근해에서 일본 어선의 어로 금지가 목적이었다.
또한 당시 일본이 주장하고 있었던 전관수역(독점적 어업구역) 12해리는 미·일, 러·일, 중·일 간 어로협정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한국이 이를 승인했다는 일본 외상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며, 일본 정부의 가증할 만한 외교정책이라는 논평이 추가되었다.
결국 평화선은 법률적으로보다는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정부가 평화선을 양보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이러한 논의 끝에 맺어진 어업협정은 1998년 1월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으며, 1999년 새로운 협정이 맺어졌지만, 현재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핵심은 재일교포 문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이 문서에서 쓰여 있는 자필 메모이다. 글자체를 보건대 대통령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지 않고, 회의에서 한 대통령의 발언을 회의에 참여한 비서관이 요약해서 적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어로 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교포의 법적 지위 문제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은 국가 백년대계로 봐 유감된 것임. 일본이 치중하고 있는 조건과 차관이면 타 3국으로부터 얼마든지 받을 수 있음. 교포의 법적 지위가 강화되어 제한 없는 참정권이 확보되면 한국도 일본에 식민지를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질 것임. 이것은 기천만불의 어로 차관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것임.”
콜로니(colony)는 본래 이탈리아에서 자국 외 영토의 자국민 이주지, 또는 그곳에 거주하는 이주민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라틴어로는 경작, 숭배, 거주의 뜻이 담겨 있다(www.etymonline.com). 이 용어는 동아시아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의 근대 국제법이 도입되면서 ‘사람을 심는 지역’이라는 의미의 식민지(植民地)로 번역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재일교포에 대한 논평은 매우 흥미롭다.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일본 내에 식민지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국주의 시대 일본이 강제로 자국민들을 해외에 심었다면, 한국은 그들의 정책으로 인해 이주한 자국민들, 그리고 그 후손들을 통해 반대로 일본 내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일교포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1964년 3월 4일 자 보고서에 대한 논평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어업협정에서 상당한 양보를 생각해야 될 것이며, 그의 대가는 소위 어로협력이 아니고 교포의 법적 지위의 확보임.”
물론 재일교포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그들이 한국과 한국 정부에 대해 애정과 소속감을 갖는다는 전제 위에서만 작동한다. 또한 재일교포의 지지를 얻어 야당의 반대를 누르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 식민주의 정책을 역이용, 국제법을 앞세워 과거사 뒤에 숨으려던 일본 정부에 대응하고자 했다는 점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미국·일본에 대해 불만 표출
1964년 7월 4일 자 보고에는 한일회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불만이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일교섭에 있어서 미국이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느껴진 일은 전연 없었던 바, 금반의 이와 같은 발언은 우리로서는 주목하여야 할 사실이라고 판단됨.” 한일협정 체결 이전에 주한 일본 대표부가 설치되어야 한다는 주일미국대사의 발언에 대한 평가였다.
동년 9월 16일 자 보고에 대한 논평에서는 과격한 용어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태도는 분명히 야만적인 침략 근성의 구현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언어도단한 행위인 것임. 이것은 확실히 국제법 이전의 얘기이며, 감정적 폭력시대의 행위인 것임.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자유진영 속의 선린우호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불가사의한 현상임.”
우여곡절 끝에 한일협정이 체결되었지만, 그걸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는 않았다. 재일교포와의 관계는 북송과 조총련으로 인해 계속 문제가 발생했고,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청구권 자금을 이유로 한국으로의 기술 이관에 소극적이었다. 일본 자금으로 추진되는 한국의 산업정책이 일본의 이해관계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1968년 8월 28일 청와대 본관 소접견실에서 이루어진 일본 측 대표와의 회담은 이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은 “내 집에 귀빈을 모시고 실례된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이 점 양해해 주기 바란다”라고 운을 띄웠다. 일본의 소극적 자세에 대해 “일본이 전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인색하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본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한일 간 교역 불균형의 문제, 일본 사양산업의 한국 이전 문제 등 다양한 경제정책에 있어 일본 정부가 일본 농민과 중소기업의 반대를 명분 삼아 지속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60년이 되는 한일협정
내년이면 한일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을 맞는다. 다양한 행사가 열릴 것이고, 학술연구 결과도 발표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 60년간 한일관계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양국 간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분명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60년 전 한일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당시 한국 정부가 했던 고민과 노력,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 그리고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변하지 않는 현재 일본 정부의 자세이다. 그리고 당시 정부 내에서 다양한 이견이 표출되었고, 이를 조정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당시 국민의 여론이 한일협정에서 했던 역할을 주목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확히 60년 전인 1964년의 한일협정 반대 운동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양보를 받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민 여론은 상대국에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데 결정적 배경이 되기 때문이었다. 외교에서 국내 여론은 국익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점을 60년 전의 역사를 통해 기억해야 한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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