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 아닌 과학의 눈으로 본 후쿠시마 방류 1년

2024. 8. 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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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기 해양연구소장·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오염수(처리수) 방류로 온 나라가 들썩했던 1년 전, 해양 환경을 연구하는 필자는 지인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다. 그들은 “앞으로 해산물은 먹지 못하는 것인가”라거나 “천일염도 더는 안전하지 않은가”라고 우려했다. 바다에서 생산된 먹거리의 안전성에 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지인들의 불안을 덜어주고 싶었으나, 우려와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각종 안전 검사와 수산물 소비 촉진 행사로 지난 1년간 1조5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 원전 오염수 일러도 9년 뒤 도달
방사성 물질 일상의 10만분의 1
공포 자극한 정치적 주장이 문제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2023년 8월 24일 오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모습. 연합뉴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을 강타한 규모 9.1의 대지진에 따른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쓰나미에 따른 침수로 원자로 1~3호기 냉각시설이 멈추자 폭발이 일어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다. 12년만인 지난해 이 무렵 보관해오던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자 ‘방사성 물질이 수개월 후면 한국 해역에 도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과학적인 해양학 지식으로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워 필자가 책임자로 있는 연구팀은 후쿠시마에서 방류된 방사성 물질의 이동 시간과 농도 변화를 시뮬레이션해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해류에 의해 방사성 물질이 한국 주변 바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간은 일러도 9년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후쿠시마 인근 바다의 해수는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태평양 동쪽으로 흘러 미국 연안에 도착하는 데 4~5년, 다시 서쪽으로 돌아오는 데 4~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바다로 방류된 방사성 물질은 수년이 지나는 동안 희석돼 농도가 크게 낮아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이 없는 일상의 바다에서도 세슘이 1~2Bq/m3, 삼중수소는 약 100Bq/m3 농도로 존재한다. 당시 연구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한국 해역에 유입될 것으로 예측된 방사성 물질의 농도는 현존하는 농도의 약 10만분의 1 정도로 추정됐다. 현장에서 변화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값이다.

김현태 해양수산부 수산물정책실장(오른쪽)이 3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정례브리핑에 참석해 해양 방사능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해양수산부가 우리나라 주변 바다 여러 지점에서 지속해서 방사성 물질의 농도 변화를 모니터링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다행스럽게도 필자의 예측처럼 유의할 만한 방사성 물질 농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폐기 시점은 2051년으로 예상되고, 그때까지는 오염수 방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 주변 바다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적더라도 측정 가능한 태평양의 여러 지점에서 방사성 물질의 농도 변화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측정 결과들을 함께 비교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된다면 관측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과거에 여러 환경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전문가들의 과학적 의견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후쿠시마 방류 초기에도 상황이 비슷했다. 전문가들의 과학적 의견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과학적이고 정치적 득실을 노린 주장들이 난무해 불필요하고 과도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1년이 지났지만 진지한 반성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러스트=김지윤


인간 활동에 따른 사회적 재난이나 자연재난이 환경에 주는 충격과 영향에 대한 판단은 관련 분야 전문가 집단이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충분한 실험과 토론을 통해 도출해야 한다. 과학자들에 의해 도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정치인들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합의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순리다. 물론 이런 과정은 대중에게 투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종종 전문가들의 과학적 판단을 위한 숙의 과정이 생략되고, 과학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정치적 이익을 겨냥한 주장만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진영 논리에 따라 과학자들도 찬반으로 분열되면서 과학적 원리에 근거한 목소리가 묻히곤 했다. 정치가 힘으로 과학을 압도하면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놓고 홍역을 치른 한국사회도 이제는 좀 달라지면 좋겠다. 전문성을 갖춘 과학자들의 의견이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불필요한 논란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양기 해양연구소장·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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