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거대한 전파망원경 같은 소설, 삼체
지글지글 타오르는 폭염의 나날, 온몸의 수분을 빼서 ‘탈수’한 다음 가을에 되살아나고 싶을 지경이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류츠신의 SF 소설 『삼체』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이 세 개인 ‘난세기’의 삼체인들은 ‘탈수’를 통해 ‘인간가죽’처럼 변한 다음, 태양이 줄어 살기 좋은 ‘항세기’까지 버틴다. 삼체인들이 지구를 공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00년. 이야기는 지구와 외계문명의 대결을 넘어 우주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확장된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감은 ‘거대함’이다. 책에 빠져있는 동안은 백악관의 대소사가 작아 보였다는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독자가 이보다 큰 스케일의 책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읽다 보니 납득이 된다. 소설의 형태로 만들어진 거대한 전파망원경을 보는 느낌, 그 망원경으로 인류와 우주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2권에서 3권으로 넘어가는 동안 ‘이것은 어떤 소설인가’라는 판단을 내려놓고 ‘소설이란 인간이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르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와 문명, 인간에 대한 절망과 희망,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종합적인 시야각을 갖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삼체』
를 읽는 것은 지구 밖의 발코니에 앉는 것과 같다. 군데군데 이야기가 성글고 과학적으로 불충분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 위치 하나만으로도 두툼한 세 권의 책을 통과할 이유가 된다.
“그들이 행성 사이로 뛰어넘어 우리 세계에 올 수 있다면 그들의 과학은 이미 상당한 단계로 발전했을 것이고, 과학이 그토록 발전한 사회라면 더 높은 문명과 도덕 수준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에게 절망한 나머지 삼체인을 끌어들인 한 등장인물의 대사는 기후변화를 목도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높은 문명과 도덕 수준, 이것이 동반되지 않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실감하는 2024년의 여름이었으니까.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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