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방문진 이사 임명 제동…MBC 사장 교체도 일단 스톱
공영방송 운영과 규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이 더 깊은 늪에 빠져들게 됐다. 법원이 26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신임 이사진 6명의 임명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강재원)는 이날 “방문진 이사 임명 처분은 ‘임명 처분 무효 확인 사건’의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효력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이 취임 직후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어 여권 추천 몫 이사 6인(허익범·임무영 변호사, 김동률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 윤길용 방송통신심의위 특별위원, 이우용 언론중재위원)을 임명한 결정이 “적법성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등 3명의 이사가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신청인은 모두 야권 추천 인사들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권 이사장 등의 방문진 이사로서의 법적 지위와 후임자들의 법적 지위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며 “무효를 확인하는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 임기가 끝난 종전 임원들로서는 형식적으로 후임자의 임명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거나 제한되는 불이익을 입게 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본안 소송 심리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을 감안하면 권 이사장 등이 본안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방문진 이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권 이사장 등에게는 이 사건 임명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본안 소송의 쟁점인 2인 체제 방통위 의결의 적법성 문제에 대해 “방통위 구성 내지 의결의 적법 여부와 관련해 판례가 없다”면서도 “합의제 기관의 의사 형성에는 원칙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납득돼야 하는 합치(合致)의 원리가 적용된다”며 판단 방향을 시사했다.
방문진, 야권 우위 구도 당분간 유지…야당 반색, 여당은 당혹
방통위 측은 ‘회의는 2인 이상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한다’(13조 1항),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13조 2항)는 방통위법 조문을 근거로 적법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법률 조항 문언에 충실한 해석에 기초한 주장”이라면서도 “단지 2인의 위원으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방통위법이 추구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 조문을 “정치적 다양성을 구성에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방송의 자유 등 목적을 달성한다”는 방통위법 입법 취지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결정에 대해 방통위는 “법원 결정 내용과 이유 등을 검토해 즉시항고하기로 했다”며 “또한 방문진 이사 임명처분 무효 소송에도 적극 대응해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는 점을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집행정지 신청 사건을 서울고법에서 다시 다투게 돼 본안 소송도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같은 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나진이)는 이날 방문진 이사 모집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조능희 전 MBC플러스 사장 등 지원자 3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조 전 사장 등이 이 사건 임명 처분으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등의 긴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반색했고, 여권엔 당혹감이 역력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권의 MBC 장악 시도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며 “여권 인사만으로 구성된 ‘2인 방통위’의 위법성과 부실한 방문진 이사 선임의 위법성이 재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민주당·조국혁신당 위원들도 “윤 정부의 방송 장악 쿠데타가 저지됐다”고 성명을 냈다.
반면에 국민의힘 미디어특위는 “방통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이뤄진 인사권 집행의 효력이 사법부 결정으로 침해된 것은 3권분립 원칙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사법부 판단은 늘 존중한다”며 “향후 항고심에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니 이를 지켜보겠다”고 반응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현재 야권 우위(야권 추천 6인, 여권 추천 3인) 방문진 이사회 구도가 당분간 이어지게 됐다. 방문진법 6조 2항에 따르면 임기가 끝난 임원은 후임자 임명까지 직무를 수행한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가처분 결정에 대한 항고심은 통상 3개월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본안 소송 결론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최대한 이른 시기에 항고심에서 뒤집히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안형준 사장(임기 2026년 2월) 등 MBC 경영진 교체설도 덩달아 힘을 잃게 됐다.
방문진 이사 선임 결정 이틀 뒤인 지난 2일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한 야권은 “법원 결정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도 영향을 줄 것”(야권 관계자)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탄핵의 주된 사유가 ‘2인 체제 의결의 불법성’이라서다. 반면에 국민의힘 측은 “아직 본안 결정이 나오지 않았는데, 탄핵에 영향을 준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손국희·김준영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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