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데 가는 곳마다 현대, 기아차... 여긴 어디?

임병식 2024. 8. 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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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알마티 기행]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생각보다 가까운 곳

[임병식 기자]

서울 한낮 온도가 최고 35도를 넘나들 때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떠났다. 광활한 초원을 걸으며 나를 잊고, 온몸을 휘감는 바람을 맞고 싶었다. 인천공항을 떠난 아스타나 항공기는 알마티 국제공항까지 꼬박 6시간 날았다. 알마티에 가까워오자 창 너머로 만년설을 머리에 두른 천산산맥이 물결치듯 다가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산 영봉과 눈부신 만년설은 서울에서 불볕더위를 잊게 했다. 비행기 트랩을 나서는 순간, 멀리 천산산맥과 폐부를 찌르는 청량한 바람이 성큼 다가왔다. 드디어 중앙아시아 초원에 들어섰음을 몸으로 체감한 순간이다.

중앙아시아 최대 도시
▲ 하늘에서 바라본 천산산맥 알마티에 가까워오자 창 너머로 고산 영봉과 만년설이 물결치듯 다가왔다.
ⓒ 임병식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1992년 수교 이후 30년 넘게 교류해온 오랜 친구이자 각별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여러 종교와 120여개 민족이 어울려 사는 카자흐스탄은 공존의 땅이고 융합의 땅이다. 나아가 원소 주기율표에 있는 모든 자원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자 만년설과 초원, 호수, 사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연 부국이다.
스탈린 시대 연해주에서 강제 추방당한 고려인은 이곳에 첫 기착했으며, 지난해 논란을 빚은 홍범도 장군 묘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있었다. 지금도 4만여 명에 달하는 고려인들은 유랑의 아픔을 안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
▲ 알마티 대통령궁 인근 대규모 현대식 쇼핑몰과 고층 건물로 빼곡한 알마티 시가지 전경.
ⓒ 임병식
알마티Almaty는 중앙아시아 최대 도시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뒤 수도로서 역할하다 1997년 12월 아스타나Astana에 그 자리를 내어줬다. 아스타나가 행정수도라면 알마티는 경제수도다. 남한 면적 27배에 달하는 카자흐스탄 인구는 2,000여만 명으로, 도심을 벗어나면 좀처럼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국토 절반 이상은 황량한 불모지다.
알마티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번성하고 화려하며 활기차다. 금융과 교육,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알마티는 초원만 생각했던 이들에겐 의외다. 소련 시절 낡은 공공건물과 함께 현대적인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뒤섞인 알마티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핫한 도시다. 다국적 기업과 프랜차이즈 카페, 세련된 레스토랑은 이곳이 유목민들이 양치며 말 몰았던 초원이 맞나 싶다.
▲ 알마티 사과 사과의 도시답게 알마티에서 생산되는 사과 품종은 수십종에 달하며 빛깔도 곱고 맛도 뛰어나다.
ⓒ 임병식
알마티는 사과를 뜻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온통 사과밭이다. 수십 종에 달하는 사과는 빛깔도 곱고 맛도 뛰어나다. 화학비료나 농약 살 형편이 안 돼, 의도하지 않았지만 유기농 사과로 명성을 얻었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에 날개 돋친 듯 팔린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자 잘 닦인 도로와 고층 건물이 반겼다. 현대자동차 판매사업소가 자주 눈에 뜨인다. 그러고 보니 굴러다니는 승용차 10대 가운데 4~5대는 현대 기아차다. 이슬람은 50%에 달하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번듯한 모스크 사원은커녕 이슬람 복식을 한 사람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재래시장에나 가야 히잡 비슷한 스카프를 두른 나이든 여인을 간간히 볼 수 있다. 인접 우즈베키스탄만 해도 온통 이슬람 분위기인데 알마티는 도무지 정체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 이슬람 사원 무슬림 인구가 절반을 차지하지만 알마티에서 모스크나 무슬림 복식을 한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 임병식
도심에 들어서자 2020년 반정부 시위로 혼란스러웠던 흔적은 말끔히 지워졌다. 2년 전 방문 당시 불탄 대통령궁과 격렬한 시위 흔적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핏물로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는 광장 주변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주변을 지나는 젊은이들도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무심한 표정이다. 허나 평온한 일상과 침묵 속에서도 그날의 비통과 슬픔을 기억하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때, 어디에서건 시간은 망각과 치유를 반복하지만 때가되면 상처는 돋는다.

대통령궁에서 가까운 판필로프Panfilov 공원은 한낮의 적막이 깊게 깔려 있다. 판필로프 공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을 방어하다 숨진 카자흐스탄 군인 28명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짙은 녹음 아래 자리한 영령들은 꺼지지 않는 불꽃을 위로삼아 영면에 들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싸움의 기억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왜일까.
▲ 판필로프 공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을 저지하다 숨진 카자흐스탄 군인 28명을 기린 판일로프 공원의 꺼지지 않는 불.
ⓒ 임병식
공원 바로 앞 파스텔 톤으로 화사한 젠코브Zenkov 성당은 알마티를 대표하는 랜드 마크다. 1907년에 건축한 러시아 정교회 젠코브 성당에는 신심이 깃들어 있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춘 목조건물이다. 높이 56m로 세계 목재 건축물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불국사를 세우며 온 정성을 다했듯 젠코브 성당을 건축한 이도 그랬을 것이다.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기도하고 묵상하며 죄를 씻었다.
▲ 젠코브 성당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춘 젠코브 성당은 목조 건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 높이를 자랑한다.
ⓒ 임병식
가까운 재래시장 질료니 바자르는 현대적인 쇼핑몰로 둘러싸인 알마티에서 그나마 옛 정취를 확인하는 공간이다. 사람냄새가 물씬한 이곳은 육류부터 치즈, 소시지, 향신료, 채소, 생선, 견과류 등 중앙아시아 요리에 필요한 온갖 식재료를 한자리에 모았다. 시장은 놀라울 만큼 정갈하다. 반듯한 매대와 파리 한 마리 볼 수 없는 위생상태는 인상적이다. 흔한 호객 행위도 없다. 고려인으로 보이는 상인들의 무표정한 얼굴만 마음에 걸렸다.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카자흐스탄은 정서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친근하다. 알마티에서 흔히 만나는 현대, 기아자동차는 이를 방증한다. 현대차는 알마티 현지에서 연산 4만5,000대에 달하는 쏘나타와 싼타페 조립생산 공장을 가동 중이다. 9월부터는 프리미엄급 시장을 노리고 제네시스 승용차를 생산한다.

지난해 카자흐스탄 프리미엄급 자동차 판매는 1위 렉서스 3,615대, 2위 BMW 265대, 3위 벤츠 189대 순이다. 제네시스는 9대에 그쳤다. 프리미엄급 시장에서도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전북대학교는 지난 6월 현지에 '새만금 한글학당'을 개설했다. 한국어 보급과 카자흐스탄 유학생 유치를 위해서다. 한글학당은 한국과 실크로드를 잇는 디딤돌이다. 120개 민족, 그리고 이슬람과 러시아 정교, 기독교가 공존하는 카자흐스탄과 알마티는 이렇듯 생각보다 가깝다.

- 다음 회에 2편이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임병식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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