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다시 찾은 '피식대학', 근데 분위기 왜 이럴까

이진민 2024. 8. 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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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논란 정면 돌파에도 여전히 싸늘한 시선... 과도한 '캔슬컬처' 돌아봐야

[이진민 기자]

'사람'을 불매하는 시대가 왔다. 기업이 잘못하면 물건을 구매하지 않듯 유명인이 실수 혹은 차별적인 발언을 했을 때 그에 대한 관심을 끄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돌고 있다. 대표적인 방식은 구독 취소다. 유명인의 SNS를 차단하거나 유튜브 구독을 끊는 식이다.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팔로워 숫자를 보면 그를 향한 대중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지난 5월 11일 공개한 '메이드인 경상도, 경북 영양편'에서 "영양을 처음 들었다. 여기 중국 아니냐", "식당이 특색 없다", "구매한 젤리에서 할머니 맛이 난다" 등 영양군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발언으로 비판받았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채널 구독 취소 운동이 벌어졌고 318만 명이던 구독자 수는 287만 명까지 떨어졌다.

'피식대학'은 채널 커뮤니티를 통해 "식당 사장님들께 직접 찾아가 사과드렸다. 어떤 형태로든 저희의 잘못을 바로잡을 방법을 찾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고개 숙였다. 그리고 석 달만에 영양군으로 돌아갔다. 축제 홍보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과연 그들의 정면 돌파에 대중은 움직일까.
 경북 영양군 홍보 영상을 제작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 피식대학
지난 20일 '피식대학'에는 오도창 영양군수가 직접 등장해 "지난 수해 때 피식대학의 현물 기부로 큰 도움을 받았다"며 "공식적으로 영양군의 관광 명소와 대표 축제 '영양고추 H.O.T Festival' 홍보를 제안 드리겠다"고 말했다. 채널 측은 축제 기간에 맞춰 약 2주간 매일 하나씩, 총 12개의 콘텐츠를 올릴 계획이라고 밝히며 프로필도 지역 이름이 들어간 로고로 바꿨다.

'피식대학'이 물량 공세만 벌인 건 아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잠시 멈췄던 <한사랑산악회>, < 05학번 is here > 등 전작 시리즈를 가동했다. 두들마을, 자작나무숲, 반딧불이 천문대 등 관광명소에 맞춰 시리즈 내용과 캐릭터 구성을 새롭게 짰다. 출연진들은 캐릭터에 이입하면서 홍보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산악회 아저씨들을 따라 한 <한사랑산악회>에선 자칭 '영남회장'인 캐릭터 김영남이 자신을 '영양회장'이라 칭하고, 영양군을 서울과 도쿄에 연결해야 한다는 과장 섞인 멘트를 던진다. 그들은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 공원을 보유한 영양군에 대해 "아시아에서 별이 제일 잘 보인다"고 축약해 웃음을 자아내고 "다 돌아보려면 1년이 필요한" 세계적인 도시라고 소개한다.

< 05학번 is here >에서는 신도시 부부를 연기하며 데이트 장소로 적합한 야영장을 소개하고, 그 시절 무서운 형님에 빙의해 계곡 물놀이를 즐긴다. 영상 중간중간 SNS에서 유행하고 있는 두바이 초콜릿을 '붐베이' 초콜릿으로 소개한다거나 캐릭터끼리 우스꽝스럽게 말싸움하는 장면을 넣는 등 진부한 홍보 영상이 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이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진정성 있는 방식이다. 이 정도 노력이면 인정해야 한다", "사과하려는 사람을 받아줘야 사회적으로 사과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영양군민으로서 감사한 홍보다" 등 그들의 행보를 반기는 댓글이 이어졌다. 반면,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지역을 비하해 놓고 홍보 영상을 찍는 건 모순적이다", "조롱당한 군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등 영상 시청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사과해도 '나락'... 유명인의 반성은 불가능한가
 한국의 '캔슬 컬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샘 오취리
ⓒ jubilee
SNS상에서 벌어지는 '캔슬 컬처'는 일반적인 불매 운동과 다르다. 특정 상품 구매를 거부하고 대체품을 찾아야 하는 불매 운동은 시간 소요는 물론,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반면, 캔슬 컬처는 간편하다. '취소' 혹은 '차단' 버튼 한 번이면 된다. 그렇게 돌아선 대중은 쉽게 재구독하지 않는다. 비슷한 콘텐츠나 비슷한 이미지의 연예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며 때론 그를 향한 '취소'가 집단적인 조롱 문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2020년 8월 의정부 고등학교의 '관짝소년단' 패러디를 인종차별이라 지적한 바 있다. 일부러 피부를 검게 칠한 학생들에 대해 "문화를 따라 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하나"고 흑인을 흉내내는 '블랙 페이스'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과거 그가 했던 발언까지 도마에 오르며 논란이 빚어졌다.

결국 그는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지난 2023년 2월 유튜브 채널 '주빌리'에 출연해 "한국은 캔슬 컬처가 강한 편"이라며 "2년간 일을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또한 "나를 지지해 준 친구들마저 공격 대상이 될 정도로 (나를) 아웃시켰다"고 했다.

최근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은 유명인 '박제'다. 유명인의 현재 모습이 담긴 게시글에 댓글로 그가 실수한 과거 발언을 적는다거나 재조명한다는 목적으로 유명인의 논란을 재차 올리는 것이다. 중요한 건 당사자가 사과하거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도 '박제'는 계속된다. 말 그대로 그의 잘못은 불변(不變)의 것이 돼 당사자는 영원한 죄인으로 남는다.

과연 '캔슬 컬처'는 대중의 높아진 도덕적 민감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유명인의 문제일까. 즉각적인 화력으로 문제 제기에는 효과적이나, 어떠한 논의도 남기지 못한다. 그가 저지른 문제는 개인 차원으로 축소돼 사회 전반에 대한 자정과 숙고보다는 악인 한 명을 제거하는 데 그친다. 무엇보다 '실수하지 않는' 개인만 포용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하며 이를 통해 성장함으로써 더욱 두터우며 현실적인 선(善)을 추구할 수 있다.

2019년 10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캔슬 컬처에 대해 "나만이 고결하며, 나는 절대 타협하지 않으며, 나만이 항상 정치적으로 깨어있다는 생각을 어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나락'으로 보내거나 '박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기에 세상은 복잡하며 인간은 더욱 복잡하다. 자신의 실수를 딛고 성장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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