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다 다 죽어요… 쌀 수매 늘리고 한우는 ‘폭풍 할인’
“가격 하락에 공급 과잉 관리 시급”
농민 부담 확대… “정교한 관리 필요”
추석 전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고 있지만 국산 쌀과 한우는 ‘밀어내기’ 공급 물량 급증에 따른 가격 하락 우려로 정부가 수급 조절에 나서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추석 대목에 재고를 털어내려는 농가 수요가 몰리면 단순한 가격 하락을 넘어 관련 생태계가 무너지는 최악의 사태가 초래될 수 있어서다.
정부는 추석 전에 구곡(舊穀·묵은 쌀)을 사들이고, 한우는 할인 행사를 확대해 재고를 소진하는 ‘투 트랙’ 전략에 들어갔다. 1년 내내 먹는 쌀은 당장 소비를 늘리기 어려우니 공급을 줄이고, 소고기는 추석을 계기로 소비량을 늘려 누적된 사육 물량을 덜어낸다는 취지다. 정부 관계자는 26일 “추석 전에 가격이 올라서가 아니라 너무 내려서 문제”라며 “수급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지난 25일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지난해 생산된 쌀 5만t을 추가로 매입하는 내용이 담긴 ‘쌀값 안정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공공 비축용으로 쌀 40만t을 사들였고,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 6월까지 세 차례나 5만t씩 총 15만t을 매입했다. 그럼에도 쌀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자 추가로 5만t을 더 사들이기로 했다.
정부는 통상 추석 전 주요 성수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비축분을 풀며 수급 조절에 나선다. 올해도 장마와 폭염으로 배추값이 들썩이자 하루 최대 400t의 비축물량 방출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쌀은 오히려 추석 전 재고를 사들이는 이례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산지 쌀값이 4만4435원(20㎏ 기준)으로 1년 전(4만8591원) 대비 10%가량 떨어지는 등 하락세가 멈추지 않아서다. ‘추석 민생 대책’에 가격 할인이 아닌 쌀 수매가 담긴 것은 처음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20만원대였던 쌀 한 가마(80㎏) 가격이 지금은 17만원대로 떨어진 상황”이라며 “추석 전에 구곡을 시장에서 빼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똑같이 공급 과잉을 겪는 한우는 가격 할인으로 판매 확대에 나선다. 농식품부는 농협·한우협회·한우자조금 등과 추석 성수기에 한우 선물세트를 30% 이상 할인 판매한다. 연말까지 최대 50% 할인 행사도 이어간다. 추석 명절을 육류 소비량 증가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농식품부 관계자는 “한우는 가격이 내리면 소비량이 증가하는 ‘수요 탄력성’이 큰 품목”이라며 “사육 과잉에 따른 한우 농가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선 판매량부터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정부·여당의 추석 민생 안정 대책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선 “이게 추석 민생 대책이 맞느냐”는 말이 나왔다. 추석 차례상에 오를 과일·야채 등의 소비자가격 인하보다 ‘쌀 수매’나 ‘한우 사료 가격 인하’ 등 농가 지원책이 더 많이 담겼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처음 들었을 때 민생 대책인지, 농가 지원책인지 헷갈렸을 정도”라고 했다.
정부는 추석을 쌀과 한우 가격 정상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수년간 누적된 가격 하락으로 농가 피해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고, 추석을 통해 만성적 재고를 적절하게 덜어내지 못한다면 향후 가격 하락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임성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26일 “쌀과 한우는 지금 너무 비싸서 국민들이 못 먹는 상황이 아니다”며 “수요 감소로 농가들이 무너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정부도 수급 지원책을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쌀과 한우는 공급 과잉으로 인해 팔수록 적자만 불어나는 구조가 된 지 오래다. 3년 전 20㎏당 5만4943원이던 산지 쌀값은 지난 15일 기준 4만4435원으로 23.6% 급락했다. 정부가 약속했던 ‘한 가마(80㎏)당 20만원’의 가격 마지노선이 무너지며 지난해에만 쌀 유통을 하는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 네 곳이 도산했다.
한우도 사육 두수 증가와 수입 확대, 육류 소비 감소 현상이 겹치며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지난달 한우 도매가격은 ㎏당 1만7185원(거세우 기준)으로 3년 전(2만3397원)보다 26.6% 떨어졌다. 통계청이 매년 조사하는 ‘축산물 생산비’ 통계에서 한우 농가의 마리당(비육우) 소득(총수입-일반비)은 2021년 142만5000원에서 지난해 마이너스(-) 9만1000원으로 떨어졌다. 이에 한우 농가들은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2년 만에 ‘한우 반납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쌀과 한우의 공급 과잉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쌀은 추석을 계기로 햅쌀과 묵은 쌀이 교체 시기를 맞는데, 올해도 역대급 풍년이 예고됐다. 정부가 지난해 쌀을 매입해 사료용으로 소비하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한우 역시 2분기 기준 340만 마리 안팎의 사육 두수가 감소 추세로 돌아서려면 3년가량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일이나 채소처럼 한 해에도 여러 번 수확해 물량을 조절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닌 만큼 중장기적 수급 대책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쌀과 한우는 모두 식량 자급 및 안보와 직결된 품목들”이라며 “수급 조절이나 소비 촉진 같은 단기적 처방보다 농가 생산 및 수요 구조를 정부가 더 정교하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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