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반대에도, 희귀병에도 꿈을 계속 꾼 이 사람

신예진 2024. 8. 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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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알려준 디자이너 나흘라 이야기

[신예진 기자]

▲ 이집트인 커플이 알렉산드리아 바다를 바라보며  이집트인 커플이 알렉산드리아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바다를 품은 도시답게 약간의 여유가 거리 곳곳에 배어난다.
ⓒ 신예진
요르단에서 이집트로 넘어온 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수도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이동하니 잿빛 빌딩은 사라지고 넓은 여름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를 품은 도시답게 약간의 여유가 거리 곳곳에 배어난다. 여행자 커뮤니티 카우치서핑을 통해 연락한 호스트 나흘라는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반긴다.
벽지, 소파 모두 빨간색으로 치장된 그의 방 위에 디자인 도안이 붙어있다. 마네킹과 각종 패션 가구가 가득한 방에 들어서니 나흘라는 내게 차와 다과를 가져온다. 패션디자이너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나흘라는 하룻밤 머무르는 동안 자신의 삶을 들려준다. 그의 삶을 통해 나는 다시는 잊지 못할 용기와 지혜를 배웠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 데이지 꽃과 함께 미소짓는 나흘라 카이로 로마 패션대학에서 모던패션(modern fashion)학과를 전공한 그는 올해 39살인 나흘라는 패션으로 유명세를 날리는 디자이너이다. 웨딩드레스를 제작하는 패션 회사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 신예진
부모의 반대에도 열정을 좇던 청년

올해 39살인 나흘라는 패션으로 유명세를 날리는 디자이너이자 패션 회사를 설립한 CEO이다. 그는 찻잔을 가져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카이로 로마 패션대학에서 현대패션(Modern Fashion)학과를 전공한 그는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자신의 열정을 따라갔다. 부모님의 반대를 꺾기 위해 그는 5년간 빠짐없이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카이로에서 수업을 듣고 밤늦게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열정만으로 꿈을 쫓기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대학 관련 지원을 일절 받지 못한 그는 재정난에 시달렸고, 유모로 알바를 시작했다. 나아가 시작한 재단 알바에서 2년 동안 진행하면서 의류 기술을 배우며 패션 분야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전시켰다. 그러던 중, 24살이 되어 결혼하는 대학 친구에게 나흘라는 제안한다.

"너를 위해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줄게. 네가 마음에 들면 사고, 마음에 안 들면 버려도 돼."

그 대학 친구는 부자였다고 호탕하게 웃으며 전한다. 그의 웃음은 보수적이라 느낀 여타 이집트인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그의 도전정신과 추진력은 대학 친구의 마음을 샀고, 이를 기점으로 그는 조금씩 자신의 사업을 펼쳐나간다. 작은 사업은 사무실을 가진 어엿한 회사로 성장한다.
▲ 나흘라와 친구들과 함께한 알렉산드리아의 저녁 잠시 나갔다 오니 주방은 나흘라와 조카들이 이집트식 만찬을 만들기 위해 북적였다. 크림과 함께한 쌀음식 로즈메아마르, 닭고기 육수에 몰로키야 채소로 만든 몰로키야 등 다양한 이집트 전통음식으로 우린 저녁 식사를 함께 보냈다. 길게 펼쳐진 상은 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이 가득 놓여있다.
ⓒ 신예진
나흘라와의 이야기를 끝으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다녀오니 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이 가득 놓여있다. 음식 조리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흘라 옆에 가서 무슨 일인지 묻는다.

"데이지, 지금껏 경험해 보지 않은 이집트 전통 요리를 보여줄게!"

잠을 줄여가며 회사를 운영하고, 옷을 제작하는 그가 오늘 처음 본 배낭객을 위해 땀 흘려 요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보인 호의에 감동하며 한바탕 성대한 만찬을 음미한다.

이후 만찬을 마친 이들이 하나둘씩 떠난 뒤 나흘라와 단둘이 남는다. 만찬 여운을 다독이며 빨간 소파에 앉아 찻잔을 부딪친다. 고동색으로 우러난 홍차 온기를 움켜쥐면서 그는 못다 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

나흘라는 암묵적으로 밝은 피부를 선호하는 이집트인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흑인, 백인, 황인 등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이집트인이지만, 상대적으로 어두운 피부색을 가질수록 은근히 멸시를 당한다는 것이다.

은연 중에 밝은 피부색을 동경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피부를 밝게 하는 화장하며 밝은 피부색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여긴단다. 나흘라도 본인의 어두운 피부색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차별받으며 자라온 이야기를 한다.

"형제 모두는 밝은 피부색이지만, 어두운 피부와 곱슬머리를 가진 나만이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했지. 나는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이, 오래 노력해야 했어."

그의 어머니는 나흘라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다른 형제와는 달리 히잡을 강제로 씌우고 그에게만 가사 노동을 맡겼다. 공부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온갖 궂은 집안일을 하고 구박을 당하면서도, 그는 매일 밤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나흘라, 넌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이야. 슬퍼하지 마, 너는 좋은 삶을 살 거야.'

나흘라의 시련은 부모님의 차별과 구박만이 아니었다. 그는 가족 유전자로 지중해열 (Mediterreanan Fever) 희귀병을 앓고 있다. 지중해열은 복통과 고열을 동반하는 유전성 장애이다.

합병증이 유발되면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장기 및 조직에 침착되어 장기 기능을 손상하기도 하며, 여성의 경우 치료받지 않으면 불임과 유산의 위험성도 있다. 염증은 자연 치유되기도 하지만 재발을 반복하며 급성기에는 심한 통증으로 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흘라는 부모님에게 각각 유전을 받아 희귀병 진단을 받은 이후 약을 통해 하루하루 이겨내고 있었다.

"희귀병을 진단받았을 때 고민하다가 깨달았어. 알라가, 그럼에도 삶을 즐기라고 말하고 있는 거구나. 병은 있지만,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여성이 되고 싶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잊지 않았어."
▲ 나흘라와 데이지 어린 시절의 아픔과 희귀병으로 투쟁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성이 되고 싶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잊지 않은 나흘이라. 여러 차례 받은 차별 앞에서 스스로에게 사랑을 외치던 아이는 이후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어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어른이 된다.
ⓒ 신예진
어린 시절의 아픔과 희귀병으로 투쟁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잊거나 포기하지 않은 나흘라. 여러 차례 받은 차별 앞에서 자신에게 사랑을 외치던 아이는, 이후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어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어른이 된다.

"삶은 정말 아름다워. 길거리를 걸으며 만나는 다채로운 꽃들에, 아름다운 건물과 풍경을 보면서도 왜 사람들은 즐기지 못할까?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야. 이 아름다운 삶을 느끼고 사랑해야 해."

그는 차별받고 병과 투쟁하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왔어도 여전히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바쁘게 사업 경영과 디자인의 꿈을 실현하는 그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미소를 잃지 않은 이유를 묻는 나에게 그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활발한 것일뿐'이라며 웃음 짓는다. 아름다운 삶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나흘라를 바라보며 삶의 이유를 묻는다. 그가 답했다.

'내 삶의 이유는 내 집을 갖고 나의 아이들, 남편을 갖는 거야. 그들과 함께 행복한 나머지 삶을 누리며 살고 싶어.'

가족과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를 희망하는 나흘라를 보며 확신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멋진 아내, 엄마가 될 거라고.

어느덧 어두워진 바깥은 새벽 공기로 가득 찬다. 나흘라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짙은 배움을 내게 알려준다. 이집트 한 마을에서 새벽 냄새를 맡으며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이 순간은 황홀하다는 것으로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원본 이야기는 기사 발행 후 기자의 브런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aisy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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