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핵무기 경쟁 최고조”… 핵확산 방지 체제 ‘흔들’

강창욱 2024. 8. 2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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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유럽서 핵무기 필요성 언급 늘어
“북, 몇 주 내 핵폭탄 3개 생산 가능”
트럼프 재선 가능성, 각국 불안감 높여
러시아 북서부 플레세츠크의 발사 기지에서 핵 훈련 일환으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시험 발사되는 장면. 2022년 10월 26일 러시아 국방부가 배포한 영상. AP연합뉴스


핵무기 개발 경쟁이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고 유엔이 경고했다. 주요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 여부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면서 핵확산 방지 체제가 냉전 종식 이래 최대 압박을 받는 것으로 평가됐다.

유엔 핵 감시기관 수장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미국 러시아 중국 간 긴장 관계와 중동 갈등이 1968년 핵무기 개발 제한을 위해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에 전례 없는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FT 인터뷰에서 “90년대에는 주요 국가들이 ‘우리도 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느냐’라고 말하지 않았다”며 “이들 국가는 이전에는 없었던 공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국 지도자들이 핵무기 개발에 관한 모든 것을 재고할 가능성을 언급한 점을 상기시켰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일부 국가가 핵무기 개발에 다시 관심을 갖는 요인으로 ‘현존하는 모든 긴장’ ‘동맹이 약화할 가능성’ ‘국가들이 스스로 방어해야 할 가능성’을 꼽으며 “이 지점에서 핵무기 개발 요인과 매력이 매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부상한다”고 설명했다.

어느 나라에서 핵무기 개발 의지를 보이는지 특정 국가 이름을 밝히기는 거부했다고 FT는 부연했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 니콜라스 밀러 조교수는 “핵확산 위험 증가는 강대국 간 지정학적 경쟁이 더 치열한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FT에 말했다. 이런 시기에 강대국은 ‘다른 나라와 경쟁하느라 바빠서’ 핵확산에 대한 주의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밀러 교수는 “비확산 조약 체제가 붕괴 직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늘 있었다”며 역사적으로는 이 체제가 예상보다 더 견고하게 유지돼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지목한 최대 위험은 이란이다. 지난해 이란 당국자들이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거론한 성명을 여럿 내놨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마수드 페제쉬키안 이란 대통령이 지난 21일 테헤란 의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핵 협정을 폐기한 2018년 5월 이후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공격적으로 확대해왔다. 지난 3년여 동안 무기급에 가까운 60% 순도의 우라늄을 농축했다고 FT는 설명했다.

북한은 마음만 먹으면 몇 주 안에 핵폭탄 3개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핵분열 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실제로 무기화하려면 훨씬 더 오래 걸리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란은 자국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입장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외교 고문 ​​카말 카라지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FT 인터뷰에서 2003년 무기 개발을 금지한 ‘파트와’(이슬람 칙령)를 들어 “우리는 핵무기를 만드는 데 찬성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란이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다면 당연히 교리를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AEA는 이란이 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이를 추진하려 한다는 증거가 아직 없다고 본다.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은 서방과 관계를 개선하고 핵 대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을 제안한 상태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나선다면 중동은 군비 경쟁 시대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지도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폭탄을 개발한다면 우리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윤석열 대통령이 핵으로 무장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 프로그램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한 사례도 언급했다.

북한의 중장거리 고체탄도미사일 '화성포-16'형. 조선중앙TV 영상


중도우파 성향인 유럽국민당 만프레드 베버 대표는 올해 초 “(러시아로부터) 압박이 가해지면 핵 옵션이 매우 결정적인 억제력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루카스 쿨레사는 핵무기에 대한 논의가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에 제공하던 안보 보장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핵무기 보유 의지를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우리는 핵확산 금지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핵무기 보유국을 더 늘린다고 상황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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