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엇박자' 주담대 폭증에 은행 '진땀'…소비자는 '발동동'
이복현 "은행, 미리 포트폴리오 관리했어야"
은행권 "금리 인상 외 대책 마련 쉽지 않아"
주택담보대출이 계속 불어나면서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집값 상승 신호가 감지됐던 올해 2분기에 되레 대출 규제를 두 달 간 미뤄 막차 수요를 부추겨 놓고, 대출을 조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은행들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불안에 은행을 찾는 금융 소비자들이 몰리고, 일부는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게 되는 상황까지 불어지며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달 말 주담대 잔액은 559조7501억원으로 한 달 만에 7조5975억원 늘었다.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16년 이후 최대 월간 상승 폭이다. 지난 22일까지 5대 은행 주담대는 6조1456억원 늘었는데, 이 속도라면 7월에 세웠던 월간 최대 증가 기록을 한 달 만에 갈아 치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담대가 이처럼 크게 늘어나는 이유는 내달 대출 한도를 추가로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가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지기 전 막차 수요가 여전한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당국의 가계 부채 대책이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주택 가격 상승 경고음이 켜졌을 때, 예정대로 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를 7월에 시행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당시 6월 넷째 주까지 14주 연속 상승했고,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90.4로 지난해 9월(90.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 시행일인 7월 1일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9월로 두 달을 미뤘는데, 이 같은 조치가 시장에 ‘곧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시그널로 작용해 수요가 몰렸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다른 한쪽에서는 대출을 조이겠다고 나서면서 정책 엇박자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DSR 규제 시행 연기 후 대출이 급격하게 불어나자 금융감독원은 은행 부행장 간담회를 소집하고, 현장 점검에 나선 바 있다.
이후 5대 은행은 지난 7월 이후 최근까지 각각 2~7차례 주담대 금리를 끌어올리면서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이 기간 누적 금리 인상폭도 최대 1.4%포인트(p)에 달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상황에 금융당국 수장이 직접 나서며 가계대출 증가를 은행의 잘못된 영업 행태인 것처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최근의 대출 급증세를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가 아닌, 은행의 월별·분기별 관리 실패로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전날 TV프로그램에서 그는 또 “일종의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연초 은행들이 설정한 스케줄보다 가계대출이 늘었는데, 이에 대한 대응으로 금리를 올리면 돈도 많이 벌고 수요를 누르는 측면이 있어서 쉽겠지만 금융당국이 바란 부분은 (쉬운 금리 인상이 아닌) 미리미리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대출) 물량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며 “지금까지는 은행 자율성을 고려해 개입을 적게 했는데, 앞으로 더 개입을 세게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이 금리를 올려 주담대 등의 수요를 줄이려는 행태에 제동을 걸면서 은행들은 향후 가계대출 관리를 두고 셈법이 복잡해지게 됐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주문대로 엄격한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최근 릴레이 금리 인상을 이어왔는데 지금까지 사실상 묵인해 오다 지적을 받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또 금리 인상 외에 대출을 통제할 만한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급증세가 꺾이지 않을 것에 대비해 DSR 관리 강화 외에도 모든 수단을 놓고 검토중이다. 지금은 최대 100%까지 해주는 전세자금대출 보증 비율을 80% 이하로 내리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보증을 적게 해 주면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수)’ 등에 쓰일 수 있는 전세대출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주담대 이자만 내고 원금은 갚지 않는 거치 기간을 없애 대출 심리를 묶는 방안도 유력한 검토 대상이다.
금융권에선 결국 정책 엇박자로 인한 피해는 금융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우려가 더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은행도 혼란을 겪고 있지만 직접 돈을 빌려야 하는 차주들의 경우 갈지자 정책으로 대출 시기나 조건 등을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장과 차주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일관된 정책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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