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친인척 특혜 비리 의혹 이면엔…
뿌리 깊은 계파 갈등···통합은 ‘공염불’
“부당대출 우리은행, 더는 신뢰하기 힘들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우리은행을 향해 격노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 년 전에나 있을 법한 구시대적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우리은행에서는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처남 등 친인척에 616억원(42건)에 달하는 대출이 실행됐다. 금감원은 이 가운데 350억원(28건)이 심사나 사후 관리에서 통상의 기준과 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대출된 것으로 봤다. 손 전 회장 취임 전 대출이 4억5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형’ 지위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판단하기 힘들다.
우리은행 내부통제 부실은 이전에도 심각했다. 지난 2022년 본점 기업개선부 직원이 2012년부터 8년간 총 697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금감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 직원은 검찰 수사 중 추가 범행이 드러나 횡령 금액은 707억원으로 불어났고 징역 19년을 선고받았다. 올해 6월에는 경남 지역 지점 대리급 직원이 고객 명의로 허위대출을 발생시켜 177억원 넘는 돈을 횡령해 구속기소됐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사과하고 내부통제 강화를 지시했지만, ‘제왕적 권한’을 가진 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특혜 대출에 금융권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기계적 균형에도 계파 간 반목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은행은 내부통제 강화를 내세운다. 우리은행도 사고가 터질 때마다 똑같이 외쳤다. 직원 윤리 교육 강화나 위법·부당행위에 대한 엄정 조치는 단골 메뉴였다.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며 준법감시실 산하에 내부통제기획팀 등 다양한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부당여신에 대한 내부자 신고 채널을 확대하거나, 반복적인 여신 심사에 소홀한 영업점장에 대해 여신 전결권을 제한하는 방침도 내놨다. 하지만 각종 제도에도 불구하고 정작 최고경영자 관련 비리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주인 없는 공기업처럼 변한 데다, 뿌리 깊은 계파 갈등이 내부통제를 헐겁게 만든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은행은 과거 ‘조·한·제·상·서(조흥·한일·제일·상업·서울)’로 불리던 5대 은행에 포함된 한일·상업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1997년 발생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5대 은행이 위태로웠지만 두 은행은 정도가 심했다. 주력 비즈니스 모델이 ‘기업 금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며 두 은행도 함께 불안해졌다. 결국 1999년 두 은행은 합병을 통해 자산 규모 105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은행으로 재탄생했다.
우리은행은 합병 이후 ‘공기업화’됐다. 당시 정부는 한일과 상업에 공적자금 12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예금보험공사는 공적자금 투입을 계기로 우리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6년 우리은행과 맺은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을 해제할 때까지 사실상 정부 입김 아래 놓여 있었다. 한 우리은행 출신 관계자는 “우리은행 주인은 국가였던 셈인데, 내부적으로는 감시 주체가 모호하다 보니 사내 정치만 횡행하고 스스로 통제하는 기능이 약화됐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계파 갈등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두 은행 모두 한때 금융권을 호령하던 곳이라 외환위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묶일 수 없는 조합이었다. 각 은행 출신으로 자부심이 높았고, 한쪽 계파가 ‘대권’을 잡으면 지주와 은행 요직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그간의 해법은 기계적인 균형이었다. 합병 이후 초반 외부 인사(이덕훈·황영기·박해춘)를 제외하면 한일과 상업 출신이 번갈아 행장을 맡았다. 임원진을 구성할 때도 양행 출신을 비슷한 비율로 배치했다. 2023년 신임 우리은행장을 선임할 때 1차 후보군(롱리스트) 역시 한일과 상업 출신을 2명씩 맞춰 올렸다. 이 역시 계파 잡음을 없애려는 취지에서였다. 다만 조병규 현 행장이 부임하며 우리은행장은 한일 출신 3명(이종휘·손태승·이원덕)과 상업 출신 5명(김진만, 이순우, 이광구, 권광석, 조병규)으로 상업 출신 쪽으로 다소 기울어졌다. 임종룡 회장이 한일 쪽으로 쏠리던 전임자의 색채를 지우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신한과 하나 역시 인수합병으로 규모를 키웠지만, 신한과 하나가 주도권을 잡고 인수한 경우라 상대적으로 계파 갈등이 심하지 않다”며 “우리은행은 합병 이후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경영진 레벨은 한일-상업 출신이 남아 있어 계파 간 반목이 심하다”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 묵인 있었는지 밝혀야
계파는 타 계파를 몰아내고 자신의 계보를 챙긴다. 손 전 회장 사건이 드러난 단초 역시 다른 계파의 제보라는 설이 파다하다. 금감원이 제보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며 비리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2017년 불거진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태에도 내부 고발이 있었다. 상업은행 출신 인사(이순우·이광구)가 연달아 행장에 선임되며 한일은행 출신들 불만이 내부 비리 문건 유출로 이어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채용 비리로 당시 상업 출신인 이광구 행장이 사퇴하고 새 은행장으로 오른 이가 한일 출신 손태승 전 회장이었다.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계파 챙기기에서 찾는 시각이 있다. 이미 사내에서는 손 전 회장 재임 시절에도 부당대출에 대한 뒷말이 꽤 나왔는데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손 전 회장은 2017년 우리은행장에 취임한 이후 행장·회장을 겸직했고, 이후 회장직만 맡았다가 2023년 퇴임했다. 손 전 회장의 행장직 후임은 권광석 행장이었다. 그는 손 회장과 다른 상업 출신으로 재임 2년 동안 손 전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권 행장은 손 전 회장 특혜 대출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관련 인사를 조치하려다 실패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번 대출의 핵심 인물인 임 모 전 본부장 승진을 만류했지만 손 전 회장 뜻대로 됐다는 후문이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손 전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특혜 사건을 묵인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조병규 현 행장이나 임종룡 회장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 행장은 권 전 행장과 같은 상업 출신으로 권 행장 시절 경영기획그룹장을 맡은 최측근이다. 손 전 회장 특혜를 알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임종룡 회장 역시 제보가 들어가고 금감원이 나서 밝혀낼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밝혀내기 전 임 회장에게 보고가 됐을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라며 “손태승 지우기에 나서면서도 정작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건 의아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차기 그룹 회장 후보로 거론될 때부터 우리금융 계파 갈등을 끝낼 적임자라고 스스로 강조해왔다. 그가 금융권 최초로 오디션 형식을 차용한 ‘4단계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유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계파 갈등은 이어질 듯 보인다. 현재 주요직은 모두 상업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어서다. 조 행장을 비롯해 영업 핵심인 국내영업부문장 자리를 맡은 김범석 부행장도 상업 출신이다.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유도현 부행장과 최고리스크책임자(CRO)인 박장근 부행장 역시 상업 출신이다. 내부통제의 핵심인 준법감시인도 지난 7월 상업 출신인 전재화 부행장이 임명됐다.
우리은행 측은 “내부에서 깊이 반성하고, 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방안을 찾고 있다”며 “우리은행 간판으로 입사한 조직원이 지점장에 나간 지 3년이 넘은 터라 계파 갈등은 앞으로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월 황금연휴 생기나… “국군의 날 임시공휴일 검토” - 매일경제
- 조선미녀? 생소한데 美서 대박...매출 2000억 노리는 K뷰티 등극 [내일은 유니콘] - 매일경제
- “매각설 돌았는데”...카카오게임즈 사라는 증권가, 왜? - 매일경제
- ‘한솥 에디션’이라 불리더니...‘숙적’ 쏘렌토에 완패한 싼타페 - 매일경제
- 압구정·여의도·목동 재건축 관심…신통기획 재건축 잠실장미 눈길 - 매일경제
- “세금이 아깝다” 서울시 ‘개고기 감별 키트’ 개발 논란 - 매일경제
- ‘반도체 저승사자’ 모건스탠리 잇단 경고···이번에도? - 매일경제
- ‘얼죽新’ 계속된다…청약·준신축 눈길 - 매일경제
- ‘정자 기증’으로 화제 된 텔레그램 창업자, 佛서 돌연 ‘체포’…왜? - 매일경제
- “코로나 진짜 심각한가보네”...당근서 ‘코로나’ 검색량 23배 폭증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