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둥이' 자처한 윤 정부... 중국 좋은 일만 하게 생겼다
다른 시각에서 정부의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말>
[최기원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전 세계가 반도체라는 전략산업을 키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경쟁하는 현실에서 기업 지원은 일정 수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어야 한다는 식으로 헐레벌떡 세액공제와 보조금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타당한지는 자문해 봐야 한다.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수십조 원을 보조금으로 투입하니, 우리도 그만큼 거액의 보조금을 투입해야 할까?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뛰어야 하나
먼저 현재 반도체 공장에 보조금을 투입하는 곳들은 반도체 제조기반이 국내에 없는 나라들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허허벌판에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공장을 세우게 하려면 세액공제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보조금이라는 마중물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조기반이 있는 대만의 경우 보조금을 주지 않고, 투자세액공제 수준도 대한민국보다 낮다.
제조기반이 없는 나라들은 대체로 운영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인건비도 비싸고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 요금도 높다. 미국의 경우 제3국에 비해 운영비용이 20~40%(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2022), 유럽은 한국 대비 33% 높다는 조사가 있다(Kearney(커니), 2022). 2022년 기준 미국의 인건비는 OECD 평균보다도 45%나 높아서 이에 대한 지원 없이는 제조경쟁력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 즉 이들이 투입하는 보조금은 이를 벌충하는 일시금 측면의 요소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서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세액공제와 보조금, 금융지원의 수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계산을 토대로 제시한 합리적인 지원 규모 추산을 포함한 주장은 확인하기 어렵다. 논의가 '옆집 애가 비싼 학원에 가니 우리 애도 보내야 하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앞서 언급한 커니(2022)의 자료에 기반한다면 지금으로서는 도리어 비용 관점에서 현금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 지난 2023년 8월 31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화웨이 매장의 대형 스크린이 신규 프리미엄 스마트폰 mate 60을 광고하고 있는 모습. mate 60 pro는 중국 SMIC가 7나노미터 공정으로 자체 생산한 반도체가 사용됐다고 해서 이슈가 됐다. |
ⓒ 연합뉴스/EPA |
그러나 보조금 경쟁이 격화되어 설비과잉 때문에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고 사이클 진폭이 커지면서 공멸의 길로 가는 경로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설비과잉에 따른 반도체 가격 하락은 반도체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장기적으로 가장 큰 수혜를 누릴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도체 가격이 20% 하락하면 중국의 무역수지는 연간 800억 달러씩 개선된다. 보조금 전쟁을 촉발시킨 미국의 정책 목표와는 상반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익히 알려진 수많은 부작용들을 양산한다. 자원분배의 왜곡,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속 가능하기 어려운 독과점 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 반도체 기술 판별의 어려움에 기인하는 비효율적 보조금 지급과 부패 연루, WTO 보조금 분쟁 시비에 이르기까지 보조금 경쟁에 뛰어든 국가들이 감수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조금 전쟁이 근본적으로 오래 갈 수 없는 이유다.
지금의 보조금 경쟁이 '바닥으로의 경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지나치게 반도체 기업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협상력을 전체적으로 회복하는 국제적 노력이 필요하다. 칩4동맹 같은 것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 국가들의 포괄적 테이블을 구성하고 무역질서의 재정립과 공정한 조세제도의 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아름다운 자원분배'를 그렇게 찬양하면서도, 누구보다도 보조금 경쟁에 부화뇌동하는 이들을 보면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 지난 5월 23일 오후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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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제조공정상 엄청난 전력소비를 요구하고, 최첨단 기술을 적용할수록 소비량 증가는 더욱 가팔라진다. 현 수도권 설비용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15~20기가와트(GW)가 필요하다는 추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산업부는 우선 급한 대로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소를 산단 내에 건설해서 3기가와트를 해결하고, 나머지는 추후 밖에서 끌어온다고 한다. 대번에 의문이 나온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은?
RE100은 비영리 환경단체의 캠페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연성적인 국제규범으로 공급망을 압박하고 있다. 거래기업들과 글로벌 소비자, 투자운용사들이 RE100을 조건으로 요구하는 시대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모두 2050년까지 RE100을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반도체 공장도 재생에너지로 돌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답변은 화석연료인 LNG이고, 나중에 송전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한민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8% 남짓으로 OECD 최하위를 다툰다. 지난 5월 공개된 산업부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계획의 마지막 해인 2038년에 이르러서도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32.9%에 머문다. 수도권이라는 입지는 문제 해결을 더욱 까다롭게 한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마지막 연도인 2036년 기준 수도권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1.5%로 전국권 45.3%에 비해 4분의 1수준이다.
2036년 계획에서 전체 수도권 신재생에너지 정격용량이 7.8기가와트이니 전력 전부를 모두 반도체 팹에다가 공급해도 필요전력을 채울 수 없다. 반도체 공장이 24시간 고압전력 공급을 요구한다는 특성을 고려할 때,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송전 역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요구된다. 근본적으로 더 이상 과거처럼 지역 주민들의 입장과 자연 훼손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송전탑을 짓고 고압 송전선로를 깔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공기는 몇 년씩 늘어지고 비용은 비례해 폭증한다. 불확실한데 비싸다.
34.2km에 불과한 북당진-고덕 송전로만 하더라도 예정보다 12년 늦게 준공되면서 1조 원이 넘는 비용이 투입됐다. 게다가 현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에너지 가격을 통제해 한국전력에 200조 원을 넘나드는 적자를 쌓아두면서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는 구조적으로 대규모 송배전 투자가 가능할 수가 없다. 재생에너지의 양도 부족한데 송전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원자력 발전을 포함하는 CF100이니셔티브(Carbon Free 100, 무탄소연합)로 RE100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마저도 이것이 RE100의 대안이라고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RE100이 대세인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반도체 기업들은 더더욱 논외다. 국가가 주도한다고 해서 국제규범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는 데다, 전 세계 에너지 설비투자 규모에서도 원전은 재생에너지에 비해 대단히 미미하다(IEA, 2024). 글로벌 트렌드로 확대되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뜻이다. 수반되는 폐기물 문제와 막대한 송전 비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에너지 전환을 통해 대규모 재생에너지를 원활히 공급하는 국가 전략이 먼저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부 계획으로는 산업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근본 전제부터 의문스러운 상태다. 여기에 재정을 쓰지 않고 엉뚱하게 보조금과 세액공제로 기업에 돈부터 줄 궁리를 하는 것은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이다. 반도체의 전략적 성격은, 그것이 지속가능한 공급망 속에서 용납되는 물건이라는 전제를 충족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위치한 삼성 오스틴 반도체 공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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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칩스법(반도체와 과학법)'을 두고 상원에서 버니 샌더스 의원이 한 말이다. 보조금 규모에만 집중하는 한국 언론들이 잘 소개하지 않는 미국 칩스법의 특성은 바로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조건들이다. 이는 미국 상무부의 재정 인센티브 세부 지원계획 (Notice of Funding Opportunity) 문서 등으로 공개되어 있다.
1. 초과수익이 나는 경우 연방정부와 공유(보조금의 75%까지 회수, Upside Sharing)
2. 미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에 협조(반도체 연구기관인 NSTC에 기술 및 시설의 접근 허용)
3. 포용적 사업 (소수자, 여성 참여 보장, 거래 다양성 확대)
4. 기후 및 환경에 대한 책임 (100% 재생에너지 사용 강력 권고)
5. 지역사회에 대한 의무 (주택공급, 대학, 연구소 등 인프라 투자)
6. 직원과 건설노동자에 대한 의무 (보육서비스 제공 등)
7.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보조금 사용 금지
8. 가드레일 (중국 등 우려국에 대한 투자 금지)
별 조건 없이 편리하게 세액공제를 해 주는 'K칩스법'과는 달리 원조 칩스법은 보조금 수령자들에게 까다로운 조건들을 부과한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강력 권고하고 지역 주택공급과 교육에 투자하게 한다. 직원과 건설노동자들에게 보육을 제공할 의무를 부과하고, 사업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접근을 보장하고 거래의 인종적 다양성 등을 확보할 계획 제출을 요구한다. 모두 지역사회와 미국 시민들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특히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금지하고, 사업이익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 보조금의 상당액을 회수하는 방식은 인상적이다. 예컨대 삼성에 4조 원의 보조금이 지급이 되었는데, 이익이 연방정부가 정한 금액을 초과해 수십조 원이 발생했다면 이익에 비례해서 3조 원까지 토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시민들의 세금이 일방적으로 기업의 이윤으로 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들이다. 샌더스는 이러한 조건마저도 부족하다며 칩스법에 반대 표결을 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의 방식보다는 기업 이외 시민들과 납세자를 훨씬 고려하는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당한 규모의 세금을 기업에 투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기업에 상응하는 책임과 대가를 요청하고 이를 협상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현금이 많은 기업에 막대한 규모의 지원을 하자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반도체 산업의 유발효과는 통념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부가가치유발계수는 0.67로, 전체 제조업의 0.64와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반도체 산업에 의해 다른 산업에서 유발되는 부가가치는 0.09에 그쳐, 자동차 (0.49)나 선박(0.45)에 비해 현저히 낮다. 취업유발계수 역시 2.1에 불과해 전체 산업(10.1)의 5분의 1, 전체 제조업(6.2)의 3분의 1에 머문다. 세금 투입으로 반도체 기업은 성장하더라도, 다른 산업과 고용에 대한 긍정적인 파급은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보조금과 대규모 세금 감면 정책을 병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반도체 설비투자 지원이 펀드의 지분투자 형태로 이뤄진다. 3440억 위안(약 64조 원)에 달하는 3기 반도체 기금을 국가 차원에서 조성해 팹 건설과 기술투자에 집중시킬 예정이다. 신규 반도체 팹은 자회사를 설립하는 형태로 만들어지며, 반도체 기금과 각 지방정부가 만든 펀드들이 49%의 지분을 가져간다. 인내자본의 역할을 정부가 자임하면서 실패의 책임을 떠안고 성공의 과실도 가져가는 방식이다.
최근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의 노동당 내각은 재생에너지 투자를 위해 GB Energy를 설립하고 대규모 사업프로젝트에 대해 지분을 협상할 계획이다. 이것은 산업 지원을 위해 국민의 돈으로 투입된 비용을 미래산업투자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그 이익을 공유하자는 고민에서 비롯한 모델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세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치를 움직여야 한다. 막연한 공포에 휘둘려 특정 기업에 모든 것을 다 내주는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생각해 봐야 한다. 선택에 따라서는 국가의 투자가 누군가의 금고만을 채워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향상된 산업경쟁력의 혜택이 국민들 모두의 삶에 온기를 더해 줄 수도 있다. '묻지마 K칩스법' 외에, 다른 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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