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 관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2호선 시청역과 5호선 김포공항역, 6호선 이태원역의 독도 조형물을 전면 리모델링해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이미 철거한 독도 조형물은 10월 25일 독도의 날에 맞춰 승객 동선에 지장이 없도록 벽면에 액자 형태로 재설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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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서울시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광화문역에서 독도 조형물이 철거된 데 이어 광복절을 앞둔 8월 8일에는 잠실역, 12일에는 안국역에서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 21일에는 국방부 전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독도 조형물이 지난 6월 초에 철거된 사실이 보도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새로운 조형물을 10월 25일 독도의 날에 맞춰 재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전쟁기념사업회는 독도 전시물을 보수한 뒤 재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의혹의 시선은 쉽사리 걷히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등의 흉상을 둘러싸고 윤석열 정권의 속뜻이 많이 노출된 뒤라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독도에 관한 윤 정권의 자세는 과거의 보수 정권들과도 확연히 다르다. 물론 윤 정부도 외형상으로는 독도 해양 조사를 하고, 일본 정부가 <외교청서> 등을 통해 독도 망언을 하면 이에 항의를 한다. 하지만 항의의 강도는 이전보다 낮다. 무엇보다 그런 항의에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자주 벌어지고 있다. 지난 2년간 윤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돌아보면, 이 정권의 태도에서 진심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윤 정권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공식적으로는 말하지만, 일본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상황을 많이 연출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국방부가 발간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사실이 밝혀졌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공인시켜 국제사법재판소(ICJ) 같은 데로 갖고 가고자 하는 일본의 의도에 부합하는 사건이었다.
그런 사실이 밝혀진 뒤에 윤 대통령이 크게 질책했다고 알려지고 국방부가 책자를 회수하는 등이 소동이 있었다. 지난 5월에는 민방위 교육 영상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됐다고 행정안전부가 밝히는 일도 있었다.
책자를 회수하고 영상을 삭제한다 해도, 일본은 이미 많은 것을 얻게 된다. 독도가 완전한 한국 영토가 아니라 분쟁 중인 땅이라는 사실이 한국 정부의 공식 문건이나 동영상에서 언급됐다는 사실은 향후 일본이 두고두고 활용할 수 있는 소재다.
독도에 대한 윤 정권의 태도
윤 정권은 이런 일들이 실수인 양하고 있지만, 대일관계에 대한 윤 정권의 집중력을 감안하면 실수로 보기도 어렵다. 윤 정권은 박정희 정권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대일관계에 민감하다. 이런 정권이 독도에 관한 문건이나 동영상을 만들 때 결정적인 실수를 반복해서 벌인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윤 정권이 조금이라도 독도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면, 그런 의혹을 품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독도에 대한 윤 정권의 태도에서 성의가 느껴지지 않기에, 국민들의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대한민국 영토를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나라다. 한국 땅 일부를 빼앗겠다는 의지가 명확하다. 이런 나라 군대를 다른 데도 아닌 독도 부근에 끌어들여 연합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윤 정권의 독도 수호 의지를 의심케 하고도 남는다. 2022년 9월과 10월, 2023년 7월에 국군과 자위대가 함께하는 한미일 연합훈련이 독도 부근에서 벌어진 일은 그런 의심을 확산시키기에 충분하다.
지난 21일 동해영토수호훈련이 비공개로 축소돼 진행된 데서도 나타나듯이 윤 정권은 독도 방어훈련의 수준을 이전보다 낮췄다.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압력이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독도를 지키는 방패를 철기에서 청동기로 바꾸는 듯한 퇴행적 모습을 보인 셈이다. 이러다가 석기 방패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을 정도다.
작년 6월 7일 공개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에서 독도에 관한 언급이 삭제됐다. 이런 일까지 포함하면, 독도에 대한 윤 정권의 태도는 국민을 배신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시내 곳곳의 독도 조형물이 치워지고 있으니, 경각심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재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2006년에 언론인 노대니얼과의 인터뷰에서 독도밀약의 존재를 언급했다. 한일협정으로 통칭되는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이 체결되기 5개월 전인 1965년 1월 11일 박정희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 총리 간에 밀약이 체결됐고 이 밀약이 그 뒤 수십 년간 양국의 입장을 지배했다는 것이 나카소네의 증언이다.
시마모토 겐로 요미우리신문 서울특파원과 함께 밀약의 실무 작업을 했다고 알려진 인물이 고 김종필 총리의 형인 김종락씨다. 김종락씨도 2007년 3월 19일 자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밀약의 실재성을 증언했다.
독도는 대일관계에서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
2010년에 <일본문화학보> 제47집에 수록된 최장근 대구대 교수의 논문 '현 일본 정부의 죽도문제 본질에 대한 오해 - 독도밀약설과 한일협정 비준 국회의 논점을 중심으로'는 1965년 전후의 일본 국회의사록 등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그 자료 안에는 독도밀약과 관련되는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독도밀약에 관한 당시 협정 체결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독도 밀약이 구체화되었다"고 설명했다.
노대니널의 <독도밀약>에 소개된 밀약의 조문들은 1965년 이후의 역대 정권이 보여준 독도정책과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밀약은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한일 양국이 상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어업수역을 설정할 때 독도가 양국 공동수역에 포함되도록 한다", "한국이 독도를 점거하는 현 상태를 유지하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세우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이 한국 영토를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는데도 한국 정부가 의례적 항의로 그치는 일이 반복됐던 그간의 실정을 연상케 하는 내용들이다.
한일협정을 앞둔 양국 정부가 독도에 관한 명시적 결론을 보류하고 내용이 어정쩡한 밀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상황에서는 국교 재개가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독도밀약의 성립을 가능케 한 환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환경이 달라져 있다. 그때는 한국 국민들의 저항 때문에 국교 체결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국교가 체결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한미일 군사협력까지 진행되고 있다. 다른 데도 아닌 독도 부근에서 국군과 자위대가 연합훈련을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독도는 분쟁 중이라는 일본측 주장이 한국 정부의 공식 문건에 등장하고 서울 시내 공공장소에서 독도 조형물이 사라지고 있다. 독도에 관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의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한일 두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부터 첫 번째 환갑이 되는 해이자 1905년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으로부터 두 번째 환갑이 되는 해인 2025년에 한일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독도는 대일관계에서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다. 그래서 한일 극우세력이 군침을 가장 많이 흘리는 대상이다. 이들 극우세력이 한일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가고자 할 경우에 독도만큼 상징성이 높은 곳도 없다. 지금 상황은 대한민국 영토의 최동단 경계선을 더욱 주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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