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걸의 현란한 액션에 가려진 슬픈 현실
[양형석 기자]
국내에서는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시라소니' 이성순 등 일제 시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소위 '전설의 주먹'들이 있다. 이들은 실제 있었던 사건들에 호사가들의 과장이 더해지면서 후세에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실제보다 더욱 과장되게 이어져 오는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실존했던 무술가(또는 싸움꾼)의 이야기들이 영화를 통해 더욱 과장되고 영웅화 되는 것은 무술가들에 대한 자부심이 큰 중국이 더욱 심하다. 중국 영춘권의 달인 엽계문의 일대기는 2008년부터 2019년까지 견자단 주연의 영화로 4편에 걸쳐 제작됐다. 1972년에 개봉했던 고 이소룡 주연의 <정무문>은 곽원갑의 제자 진진이 독살 당한 스승 곽원갑의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 <황비홍> 개봉 이후 이연걸은 아시아 전역에서 최고의 액션 스타로 급부상했다. |
ⓒ 이화예술필름 |
1962년 홍콩에서 태어난 관지림은 배우로 활동했던 어머니를 닮아 어린 시절부터 작은 얼굴과 또렷한 이목구비로 주목 받다가 고교 졸업 후 배우 수업을 받았고 이듬 해 드라마를 통해 데뷔했다. <칠복성>과 <용형호제> 등에 출연한 관지림이 아시아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은 작품은 <도신-정전자>와 함께 1980년대 후반 '홍콩 도박 영화의 쌍두마차'로 불리던 <지존무상>이었다.
<지존무상>에서 서브 여주인공 보보 역을 맡은 관지림은 아해(유덕화 분)에 대한 순애보를 보여주면서 여주인공 카렌을 연기했던 진옥련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아해를 구하러 갔다가 아해 대신 총에 맞고 세상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관지림은 <지존무상> 이후 <의혈쌍웅>,<성전풍운>, <정고정가>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관지림 배우 인생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역시 개화기 시대의 신여성이자 황비홍의 먼 친척 소균을 연기했던 <황비홍> 시리즈를 들 수 있다. 관지림은 <황비홍>에서 황비홍과 피가 섞이지도 않고 나이도 비슷한 13번째 이모를 연기하며 고전적인 여성상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극찬을 받았다(사실 이 같은 평가와 별개로 영화 속 소균은 양장을 즐겨 입고 기독교를 믿는 전형적인 '신여성'으로 묘사됐다).
<지존무상>과 <황비홍>을 통해 홍콩을 대표하는 스타 여성배우 중 한 명으로 떠오른 관지림은 1992년 <동방불패>에서 원작소설 <소호강호>의 히로인 임영영 역을 맡았다. 그 후 <신조협려2>와 <황비홍 2,3>,<가유희사2>,<유덕화의 도망자>,<모험왕> 등에 출연하며 1990년대 중반까지 바쁘게 활동했다. 특히 그 시절 유덕화와는 무려 11편의 영화에서 연기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활동이 급격히 줄었다. 2000년대 들어 <거장의 장례식>,<남혈인> 등에 출연한 관지림은 2004년 <헤어 드레서>를 끝으로 사실상 배우활동을 접었다.
▲ 황비홍과 엄진동의 사다리 액션은 <황비홍>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
ⓒ 이화예술필름 |
영화 <황비홍>은 1875년 근대화의 바람에 휩쓸리던 청나라 말 중국 젊은이들을 값싼 노동자로 팔아 치우는 일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황비홍과 제자들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개봉 당시만 해도 이연걸은 국내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황비홍>은 서울에서만 43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크게 흥행했고 2015년엔 HD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 되기도 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황비홍>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이연걸이 선보이는 현란한 액션 연기다. 성룡이주변의 사물을 활용해 적을 물리치는 액션을 선보인다면 이연걸은 봉술이나 창술 등 '전통'에 가까운 액션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자신의 몸을 강철로 만드는 '경기공'을 사용하는 악역 엄진동(임세관 분)과의 대결에서 보여주는 사다리 액션은 이연걸 액션의 진수를 보여준 <황비홍>의 명장면이다.
<영웅본색1,2>와 <천녀유혼>의 음악을 담당했던 홍콩 영화 음악의 대가 고 황점은 <황비홍>에서도 음악을 맡았다. 특히 중국 장쑤성의 전통연주곡 <장군령>을 편곡하고 황점이 직접 가사를 붙힌 주제가 <남아당자강>은 제목은 몰라도 음악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유명한 OST다. 실제로 <남아당자강>은 이듬 해 개봉한 <황비홍2>의 부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2년에 만들어진 <황비홍2-남아당자강>은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개봉되지 못했다. 1편이 엄청난 흥행 대박을 거두자 2편 수입을 두고 엄청난 경쟁이 붙었고 결국 <황비홍2>는 1993년 1월에 개봉한 <황비홍3-사왕쟁패>보다 늦은 1993년 5월에 개봉했다. 결과적으로 <황비홍2>는 서울 관객 18만에 그치며 1편은 물론이고 3편(서울관객 25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다소 아쉬운 성적에 머물렀다.
▲ 1980년대를 주름 잡았던 액션스타 원표는 <황비홍>에서 황비홍의 사고뭉치 제자 양관을 연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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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유덕화, 곽부성,여명과 함께 '4대천왕'으로 불렸고 '가신'으로 불릴 정도로 중화권 최고의 가수로 명성을 떨쳤던 장학우도 <황비홍>에 출연했다. 장학우는 <황비홍>에서 황비홍의 제자들 중 유일하게 무술이 아닌 의술을 배우는 제자 아소 역을 맡았다. 아소는 미국인들과의 대화에선 통역으로 나설 정도로 황비홍의 제자 중 가장 똑똑한 캐릭터다.
강렬한 인상으로 홍콩 무협영화 중흥기에 악역을 많이 맡았던 임세관은 <황비홍>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떠돌이 무술가 엄진동을 연기했다. 엄진동은 도장을 세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사하파와 결탁하지만 황비홍과의 승부에서 패한 후 황비홍을 쫓다가 미군들의 총알 세례에 사망한다. 엄진동은 죽기 직전 황비홍에게 "우리 무술이 아무리 강해도 총에는 당해낼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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