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출근을 못 했습니다
[범유경]
비정규직 차별에 맞서 노동조합을 설립한 이후, 회사로부터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됐던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이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이에 이르기까지 9년의 시간과 대법원의 세가지 판결이 있었습니다. 직접고용을 구하는 민사, 부당노동행위가 쟁점인 행정, 파견법 위반이 문제 된 형사의 세 판결입니다. 각각의 판결의 의미와 아직도 남은 싸움에 대해 범유경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 근로자 지위 확인 (민사, 노동자 승소) : 대법원 제3부 대법관 이흥구(재판장), 엄상필(주심), 노정희, 오석준 대법관, 2024.07.11. 선고 2022다265635, 2022다265642(병합)
- 부당노동행위 (행정, 노동자 패소) : 대법원 제3부 대법관 오석준(재판장), 노정희(주심), 이흥구, 엄상필, 2024.07.11. 선고 2018두44661
- 파견법 위반 (형사, 사측 유죄 취지 파기환송) : 대법원 제3부 대법관 노정희(재판장), 오석준(주심), 이흥구, 엄상필, 2024.07.11. 선고 2023도3915
9년
▲ 외국인투자기업인 구미 아사히글라스에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9년 만인 8월 1일 첫 출근하자 전국에서 달려온 노동자들이 환영하고 있다. |
ⓒ 조정훈 |
이들이 드디어 다시 출근하게 된 날짜는 2024. 8. 1.이다. 약 9년 만이다. 9년이란 세월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보다는 조금 짧다. 그러나 그사이 탄핵 한 번과 대선 두 번이 있었다. 그 사이 2015년 유행했던 메르스가 물러나고,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다가, 코로나도 한 풀 시들해졌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고, 30대였던 노동자는 40대가, 40대였던 노동자는 50대가 되었다. 쉴 새 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들에게 닫혀 있던 아사히글라스의 정문은 굳건했다. 그 세월 동안 오로지 복직 하나만을 바라보며 길거리에서 투쟁했던 이들에게 9년은 결코 짧을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9년의 끝에는 2024. 7. 11. 하루 동안 선고된 대법원의 세 판결이 있다. 직접고용을 구하는 민사, 부당노동행위가 쟁점인 행정, 파견법 위반이 문제 된 형사의 세 판결이다. 하나씩 살펴본다.
첫 번째 싸움, 직접고용(민사)
하청과 원청, 사내도급과 파견
하나의 사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여도 항상 같은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A라는 고용주와 근로계약서를 쓴 다음 정작 일은 B라는 사업주의 사업장에서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을 발생시키는 형태로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내도급이고, 하나는 근로자파견이다. 사내(하)도급은 원청(B)이 하청(A)에 일을 맡기면서(=도급) 그 일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사업장에서 업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민법에 의해 규율되는 '도급'의 한 형태이다. 적법한, 진정한 사내도급이라면 직접고용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근로자파견의 경우는 다르다. 근로자파견에서도 원청(B)에서 하청(A) 소속 노동자들이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근로자파견이 성립할 경우에 원청(B)은 파견법 제6조의2에 따라 일정한 경우 직접 고용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경우(제6조의2 제1항 제1호), 2년을 초과해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경우(제6조의2 제1항 제3호)도 포함된다. 그리고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는 근로자파견 대상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민사소송은 이 부분이 쟁점이었다. 지회 노동자들은 지티에스(A)에 명목상 속해있었지만 아사히글라스(B)에서 일했다. 이것이 사내도급이라면 아사히글라스는 지회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이라면 2년 넘게 일한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2년 이하로 일한 노동자들도 직접생산공정업무를 맡았다면 직접고용해야 한다.
근로자파견 vs. 사내도급
근로자파견이 될 경우 자연히 사내도급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고용노동부 2020. 11. <사내하도급 근로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그렇다면 근로자파견과 사내도급은 어떻게 다른가? 대법원은 그간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는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보아 왔다. 그 세부 고려 요소는 아래와 같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① 원청이 그 노동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해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상당한 지휘·명령을 한다면 원청의 근로자로 일하는 것이므로 파견 성립)
② 그 노동자가 원청 소속 노동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원청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공동 작업 등으로 편입되었다면 파견 성립)
③ 하청이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독자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면 파견 성립)
④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그 노동자가 맡은 업무가 원청 소속 노동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계약의 목적이 업무 이행으로 확정되지 않거나 원청-하청 노동자 업무가 구별되지 않거나 전문성과 기술성이 없다면 파견 성립)
⑤ 하청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하청이 독립적인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지 못하면 파견 성립)
아사히글라스 사건에 대한 불법파견 인정
▲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인정, 해고 비정규직노동자들 9년 만에 최종 승소 노조설립 이후 문자 한통으로 해고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간 벌인 소송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왔다. 해고노동자들과 참석자들이 7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아사히글라스 9년 만에 대법원 선고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이정민 |
① 지티에스의 관리자들이나 노동자들이 아사히글라스의 업무상 지시에 그대로 구속되었고 이를 임의로 변경하거나 수정할 수 없었다.
② 또한 아사히글라스의 공정(Hot→Cold→Gut) 중 지티에스 노동자들은 Cold 공정 일부와 Gut 공정에서 일했는데, Cold는 Hot의, Gut은 Cold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Cold 공정에서 지티에스 노동자들은 아사히글라스 소속 노동자들과 연동되어 일했고, 아사히글라스는 실질적으로 Gut 공정의 작업속도를 통제할 수 있었으며, Cold 공정과 Gut 공정 사이에서는 담당 업무가 오가기도 했다.
③ 지티에스는 아사히글라스가 결정한 인원 배치 계획에 따라 노동자를 채용해 현장에 배치했고 아사히글라스는 신규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지티에스 노동자들의 휴가나 작업·휴게시간도 아사히글라스의 생산계획이나 공장 가동 사정에 상당한 양형을 받았다.
④ 도급 계약 내용이 포괄적으로 규정되어서 당초 도급 대상이 아니었던 업무도 지티에스 노동자들이 수행할 수 있었고 실제로 이들의 업무 범위는 아사히글라스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었다. 또한 지티에스 노동자들에게 부여된 업무가 높은 전문성이나 기술성이 필요한 업무도 아니었다.
⑤ 지티에스는 설립 후 아사히글라스 업무만을 수행하면서 회사를 운영했고 도급계약이 해지되자 지회 노동자 등 소속 근로자들을 해고한 후 폐업했다. 시설과 장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한 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아사히글라스는 지티에스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노동자처럼 사용했다. 지티에스는 독립적으로 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는 역량도 없었다. 따라서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파견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아사히글라스는 지티에스 노동자들, 즉 일괄 해고당했던 지회 노동자들을 모두 직접 고용할 의무를 진다. 이로써 일터로의 길이 열리고 이들은 다시 출근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싸움, 부당노동행위(행정)
부당노동행위와 사용자
두 번째 싸움은 행정소송이다. 지회 노동자들은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는 등 지배·개입하기 위해서 지티에스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게 했다고, 즉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지회 노동자들의 주장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받아들여졌고, 아사히글라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한 것이다.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는 '사용자'이다. 그리고 이때 사용자인지 여부는 ① 그 사용자가 근로관계에 관여하고 있는 구체적 형태, ② 근로관계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 내지 지배력의 유무 및 행사의 정도, ③ 해당 지배․개입행위의 내용과 태양 등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대법원 2021. 2. 4. 선고 2020도11559 판결 등 참조).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용자에 해당하더라도 실제로 부당노동행위가 되려면 사용자에게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존재해야 한다. 한꺼번에 조합원을 해고했더라도 부당노동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아니었다면 이는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없다.
아사히글라스와 사용자
1심과 항소심은 모두 애초에 아사히글라스가 부당노동행위의 주체인 '사용자'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아사히글라스는 지티에스에 도급을 주었을 뿐이지 지티에스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관여를 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아사히글라스의 협업관계, 채용, 작업 배치, 작업 환경 및 방식에 미친 영향력 내지 지배력, 도급계약 해지 후 지티에스 노동자들이 모두 해고된 사실 등을 들어 아사히글라스가 지회 노동자들의 사용자라고 보았다. 대법원은 앞서 민사소송에서 아사히글라스가 사실상 지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처럼 사용했다고 판단했는데, 행정소송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지회 노동자들을 아사히글라스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고 본 것이다.
아사히글라스와 부당노동행위 의사
다만 대법원은 항소심을 깨뜨리지는 않았다. 아사히글라스가 부당노동행위를 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아사히글라스가 지티에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직후에 도급계약 해지를 하여 사실상 지회 노동자들을 해고로 내몰았다는 사실은 부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1심, 항소심, 대법원 모두의 입장이었다.
세 번째 싸움, 불법파견의 형사처벌(형사)
세 번째, 다시 파견법이다. 파견법상 불법파견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파견이냐, 사내도급이냐가 다시 쟁점이 되었다. 만약 아사히글라스에서 지티에스 노동자들을 일하게 한 것이 근로자파견에 해당하고, 그 파견이 파견법상 허용되지 않는 파견이라면 파견사업을 한 지티에스 대표, 그 대표와 양벌규정으로 묶이는 지티에스, 지티에스로부터 파견근로자를 제공받은 아사히글라스는 모두 처벌 대상이다.
1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무죄로 결론을 바꾸었다. 파견법 제43조에 따라 '불법파견'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근로자파견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아사히글라스와 지티에스 사이 관계는 사내도급일 뿐 근로자파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형사 판결은 지티에스가 아사히글라스에 근로자를 파견했다고 판단하면서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다시 판단하라며 돌려보냈다. 요지는 앞서 민사소송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다.
▲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인정, 해고 비정규직노동자들 9년 만에 최종 승소 노조설립 이후 문자 한통으로 해고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간 벌인 소송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왔다. 해고노동자들과 참석자들이 7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아사히글라스 9년 만에 대법원 선고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지회장과 금속법률원 변호사를 헹가래하고 있다. |
ⓒ 이정민 |
아사히글라스 밖 노동자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을 사용한 원청이 '사용자'임을 인정받기 위해서, 고용의 형태가 도급이 아니라 '파견'임을 인정받기 위해서, 나아가 그 파견이 '불법'임을 인정받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을 각오하고도 법정으로 간다.
그리고 법정다툼에는 돈과 시간과 심력이 들어간다. 아사히글라스는 9년 동안 법률비용으로 100억 원을 넘게 쓸 수 있었지만(참고로 노동자들이 1심에서 이긴 임금 소송에서 인정된 임금이 63억 원이다) 노동자들에게 그런 천문학적 법률비용 지출은 대부분 무리다. 여기에 싸워나가면서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 활동도 해야 한다. '소를 취하하면 너는 고용해 주겠다'는 식의 사측의 유혹에도 맞서야 한다. 아사히글라스도 민사 1심에서 패소한 후 지회장 외 나머지를 정규직으로 고용해 주겠다고 제안했었다. 지회 노동자들은 만장일치로 이를 거부했지만, 그러한 결단은 정말이지 너무나 쉽지 않다.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할까? 아사히글라스는 그래도 복직까지는 확정되었고,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9년이었다. 그러나 법정 싸움은 시작을 알 수 있을 뿐 끝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9년보다 긴 시간 길거리에서 투쟁을 외쳐야 할 수도 있다. 부당하게 일터에서 쫓겨난 이들의 삶이 무너지기 전에 그들이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는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입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도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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