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별론데"... 비건 교사가 아이들 설득하는 법

서부원 2024. 8. 2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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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해온 채식, 더는 얘기하지 않는 이유... '해야한다'는 당위는 힘이 없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부원 기자]

"이건 너희들 이용하라고 설치된 게 아니야. 웬만하면 계단으로 가자."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데, 굳이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요?"

교사인 나는 오늘도 학교 안 승강기 앞에서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이런다고 달라질 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쇠귀에 경 읽는다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막아선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교사의 질책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단 머리를 조아렸다면, 요즘엔 뭐가 문제냐며 따지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

고작 4층짜리 고등학교 건물에 승강기가 설치된 건 이유가 있었다. 과거 '통합 교육'이 강조되면서 장애인 학생 이동 편의를 위해 국가 예산을 들여 설치한 것이다. 지금은 좀 뜨뜻미지근하지만, 당시엔 달랐다. 학교마다 특수 학급이 생기는가 하면, 일반 교실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수업 듣는 모습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승강기엔 '건강을 위해서 이용을 자제합시다'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여있지만, 눈길을 주는 아이는 없다. 요즘 같은 폭염엔 계단을 오르내리다 되레 건강을 해치게 될 거라며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섣부르긴 해도, 요즘 아이들은 힘들고 번거로운 걸 유독 못 참고, 걷거나 뛰는 등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것 같다.
 어느 학교의 교실 모습(자료사진).
ⓒ weisanjiang
전기 생산을 위해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가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거의 없다. 다만, 안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필요악이며 불가항력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심지어 기후 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중화시키는 기술이 곧 개발될 거라며 낙관하는 아이도 드물지 않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이자, 면피를 위한 '정신 승리법'이다. 예전엔 남들 다 그렇게 산다는 말로 눙치기 일쑤였는데, 그랬다간 비루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어쭙잖게 과학에 기대는 것이다. 예컨대,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면, 텀블러 생산에 다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통계까지 끌어와 수만 번 사용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종이컵이 낫다고 주장한다.

머리로는 알아도 행동하긴 어렵다

번거로운 건 싫고, 그렇다고 환경 보호에 무관심하다는 손가락질도 받기 싫다는 이야기다. 그럴 때 전가의 보도처럼 들먹이는 핑곗거리가 있다.

온실가스 주범인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화석 연료 소비와 늘어나는 항공편, 자동차 증가 등엔 속수무책이면서, 고작 종이컵 사용 금지 같은 소소한 실천에 매몰되는 게 우스꽝스럽다고 대꾸한다. 심지어 '종이컵을 덜 쓰자'는 주장을 듣고는 'PC(정치적 올바름)'의 일종이라며 눈을 흘기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20년 넘게 채식주의자로 살아왔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학교에서 환경 보호를 위한 노력은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공자님 말씀'이 돼 버린 것 같다. 시험에 출제되면 정답을 찾기는 쉬워도, 배운 대로 실천하기는 어렵다.

교사라면, 성인이라면 다를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과거 합의를 통해 어렵사리 교무실에서 종이컵을 치웠건만,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매일 누군가 커피 추출기 앞에 종이컵 묶음을 가져다 놓고 있다.

2년 전 학교 내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교실마다 비치된 쓰레기통을 없애고 각 층 복도마다 하나씩 분리배출함을 설치한 적이 있었다. 쓰레기통을 아예 없앤 국립공원에서 착안한 것이다. 쓰레기를 처리하기 번거로워지면 자연스럽게 양이 줄어들 걸로 예상했다. 교실 바닥이나 복도에 함부로 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여겼다.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쓰레기가 줄어들기는커녕 투기에 대한 죄의식마저 희박하게 만드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2년 전 학교 교실마다 비치된 쓰레기통을 없앤 적이 있었다. 실패로 돌아갔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아이들은 쓰레기를 처음엔 책상 속에 욱여넣더니, 가득 차면 교실 구석이나 창틀에 버렸다. 교실 구석진 곳은 쓰레기통이 됐고, 급기야 교실과 복도 아무 데나 마구 버렸다. 곳곳에 쓰레기가 나뒹구는데도 누구 하나 치우지 않았고, 결국 교육 실험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귀차니즘'을 간과한 게 패착이었다. 승강기나 종이컵, 쓰레기만의 문제도 아니다. 요즘 아이들의 책가방에는 책이 들어있지 않다. 학년 초에 받은 교과서는 단 한 번 펴보지 않은 채 개인 사물함이나 집 책장에 그대로 꽂혀 있다. 교과서는 물론, 참고서나 문제집도 태블릿피시에 PDF 파일로 내려받아 쓴다. 그래선지 아예 책가방 없이 등교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가방은 이제 옛말이다. 기껏해야 태블릿피시와 충전기, 에어팟 정도가 들어있을 따름이다. 내년부터 학교마다 도입되는 디지털 교과서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아이들은 요일별 시간표를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아침마다 교과서와 준비물 챙기는 게 번거롭다는 거다. 정작 인공지능 활용 등 수업 효율화라는 정책의 취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생뚱맞지만, 아이들이 생선을 싫어하는 이유도 '귀차니즘'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특유의 비린내 때문이라고 답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가시 바르는 게 귀찮다고 말한다. 굽거나 튀기고 자극적인 소스까지 발라 먹음직스럽게 조리를 해도 절반 이상은 젓가락 한 번 닿지 않은 채 그대로 버려진다. 시나브로 생선이 급식 메뉴에서 사라지고 있는 이유다.

아이들은 육식보다 즉석식품을 더 좋아한다. 하긴 즉석식품이 대개 육식 위주여서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을 성싶다. 그들에게 맛있는 것과, 간편한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요리 시간이 길거나 손이 많이 가는 거라면 질색이라고 이구동성 답한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하고 곧장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최고라는 거다.

'채소 싫다'는 아이들... 일부 학교선 '채식의 날'도 운영한다지만

몇몇 지역 교육청에서 매주 하루를 '채식의 날'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넘쳐나는 잔반 문제와 불만족스럽다는 민원에 치여 흐지부지되는 모양새다.

아이들이 채식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맛이 없다'는 거다. 채소 특유의 쌉쌀함이 싫다는 건데, 한 아이는 '채소는 입안을 불편하게 한다'고 표현했다. 기후 위기는 멀게만 느껴지는지, 불편함을 일단 못 견뎌 한다.

나는 20년 넘게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사먹는 대신 도시락을 챙기고, 종이컵과 나무젓가락은 사용하지 않으며, 일주일에 한 번은 자전거나 도보로 출근한다.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 말 그대로 솔선수범하려는 노력이다.
 아이들이 채식과 채소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맛이 없다'는 거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그런데, 요즘 들어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온실가스와 기후 위기 등 얘기는 물론, 채식의 필요성과 일회용품 줄이기에 대한 '훈화'는 아무런 교육적 효과가 없을뿐더러 자칫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을 꿈꾸다 감정 소모가 지나쳐, 그 길에서 내가 먼저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마저 든다.

20여 년 전 내가 육식을 끊게 된 계기를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하는 건 작위적일뿐더러 효과적이지도 않을 것 같다. 애초 나는 닭 상품성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닭의 부리를 자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게 뭐가 대수냐며 시큰둥하다(참고로, 부리를 자르는 건 A4 용지 크기의 우리에 갇혀 달걀을 낳고 살을 찌우는 닭이 스트레스로 인해 제 몸을 쪼아대기 때문이다).

소를 도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은 채 지방을 늘리기 위해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야만적인 공장식 축산을 몇몇은 알고 있다. 육질을 좋게 한답시고 해머로 소의 정수리를 때려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뒤, 나는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었다.

채식을 시작한 뒤 나는 일회용품을 덜 쓰게 되고, 옷도 덜 사게 되고, 하다못해 에어컨도 덜 틀게 됐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다는 걸, 듣거나 보고도 아이들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은 서로 유기체적으로 엮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좌절은 금물'이라고 다짐해본다. 그건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일인 것 같아서다.

대신 아이들에게 내 '개똥철학'을 전수하려 한다. 당위와 대위에 지친 그들에게 인생 선배의 조언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산다는 건 일상의 불편함을 기꺼이 견뎌내야 하는 일이며, 헬스클럽에서 바벨을 들고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며 육체와 정신을 불편하게 할수록 우리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성숙해진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언젠가는 기후 위기가 내 일처럼 가깝게 느껴질 때가 오리라는 바람으로.

"누구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 한다. 그러나 건강해지고 싶다면 중력을 거슬러야 한다. 눕고 싶으면 앉고, 앉고 싶다면 서자.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단다. 우리 모두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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