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집 앞에 김치를 놓고 갔다... 범인은 외국인
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제스혜영 기자]
영국 스코틀랜드 틸리라는 마을로 처음 이사 온 날(2021년), '웰컴'이라고 적힌 작은 노트와 함께 대문 앞으로 김치가 배달되었다. 4600명이 사는 이 조그만 마을에서 김치를 알고 있다니. 더 놀라웠던 건 우리 집 건너편에 살고 있는 피터가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피터의 아내가 의사인데 어느 날 의사들이 모이는 컨퍼런스에서 '김치'의 효능에 대한 강의가 있었단다.
퓨전 요리를 좋아하는 피터는 그 후로 종종 김치를 담갔다. 피터의 김치에는 미소와 고추장이 들어있었다. 이상한 조화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김치는 구수하면서 맛있었다. 그 후로도 생일 때나 최근에 내가 병원에서 퇴원헀을 때에도 김치를 큰 유리병 안에 가득가득 담아 주었다. 이번에는 미소와 고추장을 빼고 빨간 고추를 직접 잘게 썰어서 만들었단다. 그의 김치에서 한국김치 같은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 스코틀랜드 친구 피터가 만들어준 김치 |
ⓒ 제스혜영 |
▲ 글라스고시 아시안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고모김치 |
ⓒ 제스혜영 |
집으로 배달되는 비빔밥 밀키트
'헬로 프레시'를 자주 이용하는 한 스코틀랜드 친구는 처음으로 한국음식인 '비빔밥'을 직접 만들어서 먹을 수 있었다며 두 엄지손가락을 번쩍 추켜올렸다. 매번 메뉴가 바뀌는데 나도 '한국식 바비큐'와 '한국식 치즈 컬리플라워 너겟'을 주문해 보았다. 얼마나 '한국식'으로 나올지 궁금했다.
▲ '헬로 프레쉬'(Hello Fresh)에서 주문한 '한국식 바비큐'. 요리의 재료와 소스, 레시피를 줍니다. |
ⓒ 제스혜영 |
▲ 점심으로 먹었던 한국식 '또띠아랩' 맛있었다. |
ⓒ 제스혜영 |
▲ 글라스고시에 있는 '김 씨네 길거리 한국음식점'(Kim's Korean Street Food)에서 먹었던 떡볶이, 김치전, 돈가스 |
ⓒ 제스혜영 |
스코틀랜드에서 떡볶이 떡이 하도 귀한지라 오랫만에 통통한 쌀떡볶이가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좋았다. 김치전은 김치가 별로 없었지만 고소했다. 가격에 비해 양이 적어서 식사라기보다는 스낵에 가까울 것 같다.
▲ 큰 슈퍼마켓에 파는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
ⓒ 제스혜영 |
2011년, 내가 영국 런던에서 살았을 때만 해도 한국식품을 사려면 한국인이 가장 많은 뉴몰든시를 직접 찾아가거나 런던 대학교 근처에 있는 아시안 마트를 갔어야 했다. 거기서 한국 글자가 적힌 '고추장'과 '라면'을 잔뜩 사들고 오는 날은 마치 한국을 방문하고 온 것처럼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 영국 슈퍼마켓에서 만난 냉동만두. 원산지는 한국. |
ⓒ 제스혜영 |
▲ 테스코(TESCO) 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비빔밥 키트 |
ⓒ 제스혜영 |
▲ 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김치전 믹스 |
ⓒ 제스혜영 |
이번 여름에는 뒷마당에 배추를 심었다. 머나먼 한국에서 배를 타고 영국까지 건너온 이 배추 씨앗들이 스코틀랜드의 흙 속에서 잘도 뿌리내리는 것이 기특했다. 무럭무럭 자란 초록 배추에다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서 김치를 만들었다. 두 병에다 김치를 꼭꼭 눌러 담고는 스코틀랜드 두 명의 친구한테 나누어 주었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이틀 만에 다 먹었다고 했다. 여기서 김치가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줄이야.
이렇듯 스코틀랜드의 작은 틸리 마을에서도 K(한국)의 바람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나에겐 피터의 김치가 아직도 남아 있다. 푸른 언덕으로 하얀 솜사탕 같은 옷을 입은 양들을 바라보며 식탁에서 먹는 피터의 김치는 나를 고향으로 데려다준다. 나는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고향을 방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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