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집 앞에 김치를 놓고 갔다... 범인은 외국인

제스혜영 2024. 8. 2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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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글로벌리포트 - K푸드 월드투어] 영국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한식 사랑

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의 맛과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4년 하반기 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한식 열풍을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간 김밥, 유럽을 강타한 불닭볶음면과 바나나맛 우유까지... 세계를 사로잡은 한식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제스혜영 기자]

영국 스코틀랜드 틸리라는 마을로 처음 이사 온 날(2021년), '웰컴'이라고 적힌 작은 노트와 함께 대문 앞으로 김치가 배달되었다. 4600명이 사는 이 조그만 마을에서 김치를 알고 있다니. 더 놀라웠던 건 우리 집 건너편에 살고 있는 피터가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피터의 아내가 의사인데 어느 날 의사들이 모이는 컨퍼런스에서 '김치'의 효능에 대한 강의가 있었단다.

퓨전 요리를 좋아하는 피터는 그 후로 종종 김치를 담갔다. 피터의 김치에는 미소와 고추장이 들어있었다. 이상한 조화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김치는 구수하면서 맛있었다. 그 후로도 생일 때나 최근에 내가 병원에서 퇴원헀을 때에도 김치를 큰 유리병 안에 가득가득 담아 주었다. 이번에는 미소와 고추장을 빼고 빨간 고추를 직접 잘게 썰어서 만들었단다. 그의 김치에서 한국김치 같은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김치를 담가 먹는 스코틀랜드 사람들
 스코틀랜드 친구 피터가 만들어준 김치
ⓒ 제스혜영
스코틀랜드 유기농 슈퍼나 카페에 가면 눈에 띄는 김치 하나가 있다. '고모김치'. 글래스고 사람이 직접 만든 김치라 의미가 있다. 이 '고모김치'의 사장은 한국계 미국인 에디(Eddie)이고 그의 파트너 매기(Maggie)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사람이다. 글래스고 시에서 '고모김치'라는 식당을 운영한다. 식당에서는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전을 판다.
사장은 그의 고모로부터 김치 레시피를 받았다고 한다. 작은 병(250g) 하나에 7.50파운드(1만3400원). 영국 일반 슈퍼에서 대량으로 판매되는 김치보다 두 배 비싸다. '고모김치'의 병뚜껑을 열자마자 '뻥'하고 깊게 발효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백김치에 고춧가루만 뿌려 놓은 듯 밋밋했다. 현지 입맛에 맞추려 보니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글라스고시 아시안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고모김치
ⓒ 제스혜영
영국에서의 배달음식은 한국처럼 흔치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곳에도 집으로 음식이 배달되면서 최근 핫하게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는데 바로 '헬로 프레시'(Hello Fresh)다.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장을 따로 보지 않고도 다양한 메뉴를 30-40분 만에 직접 요리할 수 있도록 모든 재료와 소스를 가져다주고 유기농, 친환경 재료를 쓰기 때문이다.

집으로 배달되는 비빔밥 밀키트

'헬로 프레시'를 자주 이용하는 한 스코틀랜드 친구는 처음으로 한국음식인 '비빔밥'을 직접 만들어서 먹을 수 있었다며 두 엄지손가락을 번쩍 추켜올렸다. 매번 메뉴가 바뀌는데 나도 '한국식 바비큐'와 '한국식 치즈 컬리플라워 너겟'을 주문해 보았다. 얼마나 '한국식'으로 나올지 궁금했다.

한 박스 안에 모든 재료와 소스가 들어있는 레시피를 받고 보니 진짜 신기했다. 15살인 딸이 직접 요리하기에도 쉬웠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고추장 소스다. 한국 고추장과 냄새와 색깔은 같았지만 숙성된 깊음이 빠져 있었다.
 '헬로 프레쉬'(Hello Fresh)에서 주문한 '한국식 바비큐'. 요리의 재료와 소스, 레시피를 줍니다.
ⓒ 제스혜영
예전에 영국 런던에서 살 때 슈퍼에서 산 인도 카레 소스로 인도음식을 만들었던 게 기억난다. 나와 다른 영국친구들은 맛있다며 신이 났는데 정작 한 인도친구가 이 맛이 아니라며 섭섭해했다. 어찌 외국에서 고향의 음식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다만 현지인에게 고추장은 새롭고 흥미로운 맛임은 분명하다.
고추장이나 김치가 들어있는 또띠아랩은 점심 샌드위치 메뉴로 인기가 많아서 요즘은 어느 마트에서나 볼 수 있다. 지난번에는 고추장이 들어있는 감자칩스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점심으로 먹었던 한국식 '또띠아랩' 맛있었다.
ⓒ 제스혜영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는 21개의 한국식당이 있고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인 글래스고에는 13개의 한국식당이 있다. 물론 중국, 일본 음식과 함께 파는 아시안 식당도 포함된다. 스코틀랜드에 사는 한인의(716명, 스코틀랜드 인구조사) 수에 비하면 한국식당이 많은 편이다.
 글라스고시에 있는 '김 씨네 길거리 한국음식점'(Kim's Korean Street Food)에서 먹었던 떡볶이, 김치전, 돈가스
ⓒ 제스혜영
글래스고시에 있는 '김씨네 길거리 한국음식점'(Kim's Korean Street Food)은 글래스고 대학교가 있는 큰 쇼핑센터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버거킹 바로 옆에서 한국식 패스트푸드로 알려져 있다. 핫도그, 떡볶이, 돈가스, 김치전 등을 판매한다. 어묵 떡볶이와 김치전이 7파운드(1만2500원), 돈가스 10.80파운드(1만9200원). 여기다 음료수까지 시키면 버거킹의 햄버거 세트와 비슷한 가격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떡볶이 떡이 하도 귀한지라 오랫만에 통통한 쌀떡볶이가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좋았다. 김치전은 김치가 별로 없었지만 고소했다. 가격에 비해 양이 적어서 식사라기보다는 스낵에 가까울 것 같다.

영국 <더 미러>(The Mirror)에서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15%가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 한국 식품을 골랐다고 한다. 가장 많이 먹어본 요리로는 한국식 프라이드치킨(68%), 김치(55%), 소 불고기(28%), 비빔밥(34%)을 꼽았다.
 큰 슈퍼마켓에 파는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 제스혜영
K푸드 열풍 덕에 매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

2011년, 내가 영국 런던에서 살았을 때만 해도 한국식품을 사려면 한국인이 가장 많은 뉴몰든시를 직접 찾아가거나 런던 대학교 근처에 있는 아시안 마트를 갔어야 했다. 거기서 한국 글자가 적힌 '고추장'과 '라면'을 잔뜩 사들고 오는 날은 마치 한국을 방문하고 온 것처럼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시내까지 멀리 가지 않고도 가까운 큰 슈퍼마켓에서 고추장, 된장, 컵라면뿐만 아니라 한국식 양념치킨, 비빔밥 키트나 김치전 믹스를 찾을 수 있다. 최근 이쓰(Itsu)에서 만든 냉동만두도 원산지가 한국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솔직히 이런 정보들은 스코틀랜드 친구들이 종종 알려준다.
 영국 슈퍼마켓에서 만난 냉동만두. 원산지는 한국.
ⓒ 제스혜영
 테스코(TESCO) 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비빔밥 키트
ⓒ 제스혜영
 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김치전 믹스
ⓒ 제스혜영
스코틀랜드에서 막상 김치를 만들려고 보니 배추 찾기가 어려웠다. 우리 집 건너편에 사는 피터가 꿀팁으로 배추 대신 청경채를 넣어보라고 권했다. 청경채는 어느 마트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청경채로 김치를 만들었는데 아삭아삭한 맛이 배추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 여름에는 뒷마당에 배추를 심었다. 머나먼 한국에서 배를 타고 영국까지 건너온 이 배추 씨앗들이 스코틀랜드의 흙 속에서 잘도 뿌리내리는 것이 기특했다. 무럭무럭 자란 초록 배추에다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서 김치를 만들었다. 두 병에다 김치를 꼭꼭 눌러 담고는 스코틀랜드 두 명의 친구한테 나누어 주었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이틀 만에 다 먹었다고 했다. 여기서 김치가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줄이야.

이렇듯 스코틀랜드의 작은 틸리 마을에서도 K(한국)의 바람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나에겐 피터의 김치가 아직도 남아 있다. 푸른 언덕으로 하얀 솜사탕 같은 옷을 입은 양들을 바라보며 식탁에서 먹는 피터의 김치는 나를 고향으로 데려다준다. 나는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고향을 방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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