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전 軍신검으로 '장애연금 지급 안된다'는 국민연금…법원 "취소해야"
2010년 6월, 당시 48세이던 A씨는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깜짝 놀라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왼쪽 청력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된 건 처음이었고, 청력 때문에 병원을 찾은 것도 처음이었다.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A씨의 어음명료도(듣는 말을 이해하는 정도)는 50%에 그쳤다. 감각신경성 난청을 진단받은 A씨는 이때부터 병원에 다니게 됐다. 청각장애 4급의 장애진단서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A씨의 난청은 더 악화돼 2022년에는 어음명료도가 오른쪽 귀 44%, 왼쪽 귀 12%까지 떨어졌다. 이에 A씨는 2022년 국민연금 장애심사를 신청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A씨가 제기한 장애연금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걸림돌이 된 건 A씨가 23세 때 받았던 병역판정 신체검사였다. 국민연금은 A씨가 1985년 6월 징병신체검사에서 난청 4급 판정을 받았던 점을 근거로 A씨에게 수급권이 없다고 봤다. 국민연금법상 장애연금을 받으려면 원인이 된 질병의 발병일이나 초진일이 국민연금 가입기간 중이어야 하는데, A씨의 난청은 A씨가 연금에 가입한 1999년보다 이전에 발병했다는 것이다.
A씨는 신체검사 당시 귀에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거나 1종 보통 운전면허를 따고 유지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보청기 없이도 문제 없이 해왔다며 반발했다. 이어 국민보험공단을 상대로 이같은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강재원)는 A씨가 국민연금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연금 수급권 미해당 결정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난청 발병일을 이비인후과에 처음 방문한 2010년 6월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A씨가 1989년부터 회사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고 2000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사업체를 차려 운영하는 등 그간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해왔던 점이 인정됐다.
또 1985년 A씨가 받은 징병 신체검사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당시 청력 검사는 군의관으로부터 5m 떨어진 곳에 선 뒤 군의관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한발씩 다가오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이는 의학적·객관적 측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0년 병원에서 “A씨가 심한 고도 난청으로, 이전부터 난청이 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판단하긴 했으나 이것이 1999년 이전부터 난청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봤다.
아울러 국민연금법의 관련 규정은 질병을 이미 가진 사람이 장애연금을 목적으로 연금에 가입하는 걸 막기 위한 장치인데, A씨가 이같은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A씨는 오히려 1999년 이후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며 장기간 재원 구성에 기여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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