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백 번째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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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혜화동 로터리에 위치한 오랜 서점, 동양서림의 나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시집으로 가득 찬 비밀 다락방 같은 공간이 등장한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이다.
서점에서 낭독회가 진행된다는 사실조차 낯설었던 시절부터 매주 전국에서 다양한 낭독회가 열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위트앤시니컬의 시 낭독회는 언제나 이러한 흐름을 부드럽게 이끄는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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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혜화동 로터리에 위치한 오랜 서점, 동양서림의 나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시집으로 가득 찬 비밀 다락방 같은 공간이 등장한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이다. 시집과 시 관련 서적만을 판매하는 서점이 월세 높은 서울에서 십 년 가까이 운영되어 왔다는 사실은 놀랍고 감동적이다. 공간을 꾸려나감에 있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을지, 동시에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시집 독자들의 꾸준하고 다정한 사랑이 이 공간에 얼마나 깊게 스며들어 있을지 상상해보면 동시대 독자이자 시인으로서 애틋한 마음이 된다.
지난주 위트앤시니컬의 백 번째 낭독 행사가 있었다. 서점에서 낭독회가 진행된다는 사실조차 낯설었던 시절부터 매주 전국에서 다양한 낭독회가 열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위트앤시니컬의 시 낭독회는 언제나 이러한 흐름을 부드럽게 이끄는 역할이었다. 풍요와 과잉의 시대에서 낭독회는 오로지 시를 읽는 목소리와 시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채워진, 얼마간 비어 있는 시공간에의 경험이다. 시는 글자로 이루어진 기호에 불과하지만 낭독회에서는 인쇄된 글이 인간의 목소리에 의해 공연의 형식으로 물질화된다.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이 음악의 구성 요소인 음표들 혹은 음표가 나열된 악보와 같은 위상으로 가라앉고, 시를 읽는 목소리가 연주되는 음악의 역할을 맡는다. 종이 위의 반영구적인 기록물을 시라는 장르의 총체라 여기기 마련이지만, 낭독회라는 시공간에서만큼은 관계가 역전되고 시의 범주가 확장된다. 낭독회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문학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백 번째 낭독회가 열렸다는 사실은 시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시간이 백 번 있었다는 뜻이다. 그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사람들이 백 번 모이고 흩어졌다는 뜻이다. 백 번째 낭독회에는 독자들이 모여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읽었다. 나는 독자로서 앉아 좋아하는 이승훈 시인의 시를 한 편 읽었다. 모두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끼는 공간을 채워나가던 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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