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10대 파고든 딥페이크 성범죄

양성희 2024. 8. 2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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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 5월 서울대에 이어 이번에는 인하대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이 터졌다. 여성 사진을 토대로 성적 목적의 불법 합성물(허위 영상물)을 만들어 유포하는 범죄다. 해당 텔레그램 단체방 참여자는 1200명, 피해자는 20명이 넘었다. 지난 서울대 사건과 똑같이 경찰은 “서버가 외국에 있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피해자가 1년여 텔레그램 방에 잠입해 직접 증거를 모아야 했다. 2명이 경찰에 입건됐는데, 그중 한 명인 인하대 남학생은 “사진을 보기만 했다”고 주장해 풀려났다. 현행법상 딥페이크 착취물은 유포 목적이 없으면 만들어도, 시청해도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 딥페이크 가해자 4명 중 3명 10대
기술 접근 용이하고 장난처럼 여겨
처벌 강화에 교육, 문화 개선 절실

두 대학뿐이 아니다. ‘겹지인방’이라는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지역이나 대학 중심으로 모인 참가자들이 서로 같이 아는 ‘겹지인’에 대한 불법 합성물을 제작·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보도에 따르면 참가자가 1300명인 한 텔레그램 방에는 70개 대학의 개별 대화방이 존재했다. 알 만한 모든 대학의 이름이 다 나온다. 인하대 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선의로 피해 사실을 알려주는 척 접근한 후 피해자의 반응을 텔레그램 방에 공유하는가 하면, 피해자와 지인들에게 전화나 문자로 협박·조롱하는 일도 있었다. 텔레그램이라는 보호막 뒤에 숨어 피해자가 모욕감에 수치스러워하고 고통받는 반응까지 즐긴 것이다.

여성 사진을 올리면 유·무료 봇이 즉각 다양한 수위의 나체 사진으로 바꿔주는 딥페이크 제작 텔레그램 방의 존재도 알려졌다. 이용자가 22만 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X(전 트위터) 이용자는 “전국 택시가 26만 대니 길에서 택시 지나가는 정도로 성범죄자를 마주친다는 뜻”이라고 개탄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딥페이크 성범죄가 중·고등학교로도 내려와 범죄 가해자의 상당수가 10대라는 점이다. 텔레그램에는 지역별 중·고등학교 겹지인방이 존재했다. 최근 부산에서는 중학생 4명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여학생과 여교사 19명에 대한 불법 합성물을 직접 만들어 SNS 채팅방에 공유한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다. 디지털 기술 발달이 범죄의 저연령화로 이어진 아이러니한 결과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딥페이크 허위 영상물 범죄 피의자의 75.8%가 10대였다. 20대 피의자는 20%로, 1020을 합하면 95.8%에 달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디지털 기술에 능하고, 특히 10대 사이에선 범죄라는 인식 없이 또래집단 내 가벼운 놀이나 용돈벌이처럼 퍼지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사건의 절대다수는 남학생이 여학생을 상대로 한 것이지만 남학생이 남학생을, 여학생이 여학생을 대상으로 벌이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딥페이크 허위 영상물이 학폭이나 괴롭힘의 한 유형이 돼가고 있다는 의미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서는 처벌 강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미성년 대상 성범죄에만 허용된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로 확대해 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불법 합성물 유포뿐 아니라 소지·시청도 처벌할 수 있게 법 개정이 필요하다(아동 성착취물이나 실제 불법촬영 성착취물은 제작 유포자뿐 아니라 소지자도 처벌받는다).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불법 촬영물보다 현저히 낮은 불법 합성물의 양형 기준을 높일 필요도 있다.

문화와 의식의 변화, 교육도 뒷받침돼야 한다. 남녀가 성적으로 존중하는 관계를 맺는 내실 있는 성(평등)교육, 디지털 윤리교육과 함께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이 가벼운 ‘재미’가 되는 성착취적 온라인 문화의 개선 없이 달라지는 게 있을까. 딥페이크 성범죄 기사에는 백이면 백 ‘어떻게 남자를 믿고 사귀냐’라는 댓글이 달린다. 날로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 젠더 간 갈등과 혐오, 저출생으로 이어지는 비연애·비혼 트렌드, 뿌리 깊은 사법 불신 등이 다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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