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법원 향한 ‘굿캅 배드캅’ 놀이

문병주 2024. 8. 2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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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주 논설위원

법조경력자 중 법관을 뽑는 올해 절차가 막바지다. 111명이 대법원 인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뒤 자격이 있는지 의견 수렴을 받고 있다. 일반 법관의 경우 법조 경력 5년 이상이라는 조건을 갖춘 이들이다. 최소 법조 경력은 2013년 3년에서 2018년 5년으로 확대됐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7년, 2029년엔 10년으로 더 강화될 예정이다.

2013년부터 일정 경력을 갖춘 법조인들을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가 시행됐는데, 변호사 경력이 길수록 재판을 잘할 것이라는 논리가 앞섰다. 하지만 정작 실력 있는 변호사들의 경우 연차가 높을수록 낮은 보수에 격무는 많은 법관 지원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법원은 수년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처해 임용 기준을 낮추려고 했지만 국회에서 막혔다. 2021년 이런 내용의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바 있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법사위 간사와 김용민 의원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당시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이 본회의에서 “경력 기준을 5년으로 후퇴시키면 법원은 변호사 시험 성적이 좋은 사람을 재판연구원으로 입도선매하고, 대형로펌은 향후 판사로 점지된 이들을 영입하기 위한 경쟁을 할 것”이라는 반대 주장을 폈다. 사실 이런 이유보다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가에 대해 잇따라 유죄 판결이 나오자 민주당이 법원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그러던 민주당이 이번엔 달라진 것일까. 김용민 의원이 최소 법조 경력을 더 늘리지 않고 5년으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승원 의원 등 같은 당 의원 20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3년 전) 김용민 의원은 기권했고, 김승원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될 것 같으니 법원과의 대화 통로가 필요했던 것이었냐”(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는 논평이 생뚱맞지 않게 들린다.

2021년 8월 31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법원조직법 개정안 표결 내용. 국회방송 캡처


한쪽에서는 사법부를 향한 겁박성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김병주 최고위원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 대표의 위증교사ㆍ선거법 1심 선고에서 유죄 판결하면) 국민적인 아주 대분노를 일으키고 국민적 저항을 받을 거라는 걸 재판부도 너무나 잘 알겠지요”라고 했다. 이언주 최고위원도 TV조선 ‘뉴스트라다무스’에서 “뚜렷한 증거 없이 함부로 (판결)했을 때는 굉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친명팔이’로 최고위원에 오른 이들이 사법부를 향한 '굿캅 배드캅(Good Cop, Bad Cop)' 놀이에서 배드캅을 자처하는 모습이다.

「 판사 임용 완화법 민주당이 발의
한편에선 법원 겁박 발언 쏟아내
이재명 재판 의도적 지연 없어야

이 대표는 현재 7개 사건, 11개 혐의에 대해 재판을 받고 있다.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 시기는 10∼11월로 예상된다. 선거법 위반은 벌금 100만원 이상, 위증 교사는 금고형 이상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5년간 박탈된다. 비록 1심이지만 유죄가 선고될 경우 이재명 일극화ㆍ사유화에 저항하는 민주당 내 ‘집단지성’을 각성시킬 자극이 되기엔 충분할 것이란 말이 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민주당이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앞세워 재판거래를 시도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심각한 재판 지연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무적이다. 개정안 발의 취지에 ‘판사 임용을 위한 법조경력요건이 현재와 같이 유지되거나 그보다 강화될 경우 사건처리 지연 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법적 분쟁의 장기화로 인한 국민의 고통이 한층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됨’이라고 적시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아는 것 같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신임 최고위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왕 재판 지연 문제 개선에 시동을 걸었으니 지난 회기 때 여야의 다른 갈등 때문에 자동폐기된 법관 증원법(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 작업도 서둘러 다시 진행했으면 한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법관 한 명이 처리해야 할 본안 사건 수가 독일의 5.17배, 일본의 3.05배에 달한다는 산술적 수치만 봐도 필요성이 크다. 민사의 경우 단독 사건의 1심 선고는 2018년 평균 4.6개월에서 지난해 7.6개월로 늘었다. 합의 사건은 9.9개월에서 14개월이 됐다. 판사 수를 늘리도록 법을 지금 개정해도 늦은 감이 있다.

재판 지연의 문제점을 잘 안다면 민주당이 더 신경 써야 할 게 있다. 지금까지 이재명 대표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보인 시간 끌기 행태다. 줄줄이 대기해 있는 이 대표의 각종 혐의에 대한 재판과 선고 과정에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판사 선발 기준을 완화하는 이번 법안 발의가 사법부를 향한 굿캅 배드캅 놀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반증하는 셈이다. 당근 하나 던져주는 식의 의정활동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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