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집
오랜만에 내가 자란 고향집에 다녀오며 ‘집’이라는 복합적인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일반적으로 집이라는 것은 현재 살고 있는 주거지라는 의미다. 매일 일과가 끝나면 돌아가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안식처다. 영어로 ‘하우스(house)’라 불리는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한국어로 ‘집’이라 함은 감성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영어로 ‘홈(home)’이라는 느낌을 포괄한다. ‘홈’이라는 곳은 내 마음이 뿌리를 박은 특별한 곳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1958)에서 선보인 공간 철학에 의하면 인간이 주거하는 공간은 집이 제공하는 기하학적인 공간을 초월하는, 즉 안과 밖이 공존하는 스페이스다. 우리가 살아온 ‘집’이란 공간은 기억과 상상력이 깃든, 일정한 시공간을 넘어 무수한 가능성이 넘치는 역동적 개념이다.
한국에 열흘 동안 있으면서 아침마다 두 살 된 딸을 목말 태워 뒷산 팔각정에 오르내렸다. 딸은 더위와 시차 때문에 내려오면서 “집에 가자”며 떼를 썼다. 미국이나 캐나다 집이 아닌 엄마가 자란 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 어느 하루는 그 말 대신에 “할머니한테 가자”라고 했다. 나는 그때 ‘집’이라는 것은 가족과 편안함을 떠올리게 하는 체험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서양의 경우 ‘집’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오이코스(oikos)’, 라틴어로 ‘도무스(domus)’다. 흥미롭게도 두 경우 다 물리적인 건물과 그 건물 내에 공존하는 가족 구성원,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집안에 딸린 노예들까지 통틀어 일컫는 말로, 물질적 구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경제’를 뜻하는 영어단어 ‘이코노미(economy)’도 어원을 따져보면 ‘가정의 절약(oikonomia)’이란 뜻이다.
한국인의 ‘집’은 공동체의 도덕적 단위로서 효제(孝悌)의 근원이다. 한국인의 집 개념이 서구 전통과 다른 안락한 느낌을 펼쳐나가기를 기원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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