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19세기 작 중세도시, 카르카손
카르카손(Carcassonne)은 동서로 대서양과 지중해를, 남북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을 잇는 요충지다. 이베리아 반도 장악의 전진 기지로 기원전 4세기부터 견고한 군사 도시였고, 프랑스-스페인 영토 전쟁의 최전선 거점으로 번영을 누렸다. 오드 강변 바위 구릉에 자리한 도시는 이중 성곽을 둘렀고 53개의 망루를 세워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그러나 1635년 피레네 조약으로 두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자 역설적으로 도시는 급격히 쇠락했다.
성벽을 허물어 강 건너 신도시를 위한 채석장으로 사용하는 등 구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1844년 시작한 구도시의 복원과 보존 사업을 60여 년간 시행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사업의 기본 이념과 핵심 계획은 비올레 르 뒤크(1814~1879)가 맡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며 전통문화의 수호자로 뛰어난 이론가였다. 몽생미셸과 아미앵 대성당, 파리 노트르담 성당 등 중요한 복원 작업을 도맡은 국가적 인물이 되었다.
『중세 프랑스 건축사전』을 저술하는 등 방대한 고증적 연구는 과학적이지만 “어느 시점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완전한 상태로 복원한다”는 그의 이념은 현재까지 논쟁거리다. 카르카손의 경우, 가장 번성했던 13세기를 기준으로 하되 고증 불가한 멸실 부분은 그럴법한 상상으로 채워 넣었다. 지붕은 모두 원뿔형으로 복원하고 기와 대신 천연 슬레이트를 씌웠는데, 이러한 지붕의 형식은 북부 프랑스 양식이라고 비판받는 부분이다.
“훼손 이전 상태 그대로” 복원한다는 엄정한 시각으로는 도박이겠으나 르 뒤크의 낭만적 복원 결과, 카르카손은 중세기보다 더욱 중세적인 도시로 재탄생했다. 둥굴둥글한 망루와 성벽 상부의 목조시설들은 요새로서의 효용과 미학을 극대화한다. 고풍스러운 성문이나 마을의 신비한 분수도 모두 시간을 거스른 그의 작품이다. 신이 미래를 창조했다면 르 뒤크는 과거를 복원해 환상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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