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필요하다’ 대신 ‘요구되다’를 쓰면?
“시간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봤어도 “시간이 요구돼”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시간이 요구돼”라고 하면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어색해할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요구돼’라고 표현한 글은 제법 봤다. 말로 할 때와 글로 쓸 때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이렇게 쓰는 예가 적지 않다. ‘관심이 필요하다’ 또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도 ‘관심이 요구된다’라고 적는다. 말로는 “~이 필요해” “~이 있어야 해”라고 하지만, 글에서는 그러지 않는 거다. ‘~이 요구된다’가 만연한다.
‘~이 요구된다’는 영어(be required for)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방식이다. 어쩌다 보니 글을 쓸 때 도처에서 가져다 쓰는 문체가 됐다.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요구된다” “기술력과 노하우가 요구된다”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캠페인이 요구된다” “현실을 바라보는 지혜가 요구된다”…. ‘요구되다’는 이렇게 낯익은 풍경이 됐다. 그럼에도 편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경각심이 필요하다’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처럼 자연스럽지 않다. ‘~이 필요하다’처럼 직접적이지 않고 에두르는 것 같아 보인다.
“유연하고 겸손한 자세가 요구된다”도 그렇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요구된다’가 어설퍼 보인다. 일상에서처럼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으면 더 자연스러웠겠다. ‘요구된다’를 빼도 된다. “유연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하면 간결하고 전달력도 높아진다.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신중함이 요구된다”에서도 ‘요구되다’보다 ‘필요하다’가 나아 보인다. 그리고 ‘신중함이 필요하다’보다 ‘신중해야 한다’가 쉽다.
한규희 기자 han.kyu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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