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밈이 된 “특검하라”
몇 달 전 인기 절정의 아이돌이 출연한 유튜브 토크쇼를 보다가 창의적인 댓글에 피식한 적이 있다. 외모도 센스도 굉장한 그 친구와 감히(?) 즐거운 시간을 보낸 죄로 MC들에게 달린 네 글자. “특검하라.”
귀여운 질투와 날카로운 풍자가 섞인 한 마디에 수천 개의 ‘좋아요’와 ‘ㅋㅋㅋㅋ’ 릴레이가 붙었다. 요즘 유튜브와 SNS에선 이런 ‘특검 드립’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다정한 애인 자랑 영상에 “특검하라”, 환갑을 앞둔 미중년 배우의 빽빽한 머리숱 사진에 “특검하라”. 용례를 보아하니 ‘(부러우니) 세금 더 내세요’의 강화 버전쯤인 듯하다. ‘아무튼 괘씸하다’는 의미다.
밈의 진화 조짐도 보인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심하게 잘생겼다거나(“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생겼냐, 특검하라”),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닌 척 빼는 게 수상할 때(“어? 얼굴 붉혔네? 특검하라”), 누군가 어설픈 사투리로 ‘OO도 호소인’을 자처할 때(“신분 사칭 특검하라”)도 어김없이 특검 두 글자가 소환된다. 하여간 해학의 민족이다.
특검하라 이전엔 “구속하라”가 있었다. 저 배 아픈 녀석 구속시켜, 저 횡재한 녀석 구속시켜와 같은 상황에서 아슬아슬한 유머로 쓰인다. ‘아무튼 특검’ ‘아무튼 구속’이 일상화된 뒤틀린 현실을 비틀어 짜낸 웃음이다.
특검이나 구속이 힙한 트렌드처럼 소비되는 이 상황이 웃프다. 특검 중독에 빠진 국회의 기여가 적지 않다. 22대 임기 시작 닷새 만에 여야 할 것 없이 특검안 5개(순직해병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대북송금 특검법, 김정숙 특검법)를 줄줄이 내놓고 도대체 도착 시각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신비의 ‘특검 열차’만 수십 번 출발시켰다. 석 달이 지난 지금은 관련 발의안이 13개로 늘었다. 특검법 야당 단독처리→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폐기→재발의가 지겹도록 이어지고, 특검 후보 추천권자나 수사 대상 등 디테일을 놓고 연일 씨름한 결과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빠짐없이 전·현직 요인들과 그 가족이 온갖 수사 대상에 오르내린 탓도 클 것이다. 경찰·검찰·공수처 어디다 할 것 없이 모든 수사기관이 야금야금 신뢰를 잃어버린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증거인멸 우려나 도주 우려, 혐의 사실의 중대성 같은 실질적인 구속 요건만 보면 턱없이 모자란 데도 사람들이 “좌우지간 구속”을 외치게 된 배경은 구속을 ‘골인’이란 은어로 부르는 수사기관의 구속 성과주의와 맞닿아 있다.
참, “특검하라”와 함께 자매품 “탄핵하라”도 같이 유행이다. 특검이 들어가는 자리면 대체로 다 들어갈 수 있다. 비일상이어야 할 것들이 우리의 일상이 된 기묘함을 풍자와 해학으로 참아줄 수 있는 시간은 언제까지일까.
김정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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