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만약에'…서도호의 스페큘레이션스.zip

김희윤 2024. 8. 2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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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서도호 개인전
첫 전시 후 21년 만에 같은 공간 찾아
영상·설치 등 30년 작업 집대성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 사회에서 집은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 자산의 상징이자 투기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주사위를 굴려 도시를 사고파는 모노폴리 게임처럼 먼저 서울에 집을 사는 사람이 이익을 취하고, 후발 주자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 순간 시작된 자산 격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부동산 양극화를 만들어냈고, 곧 집은 경제적 상향이동의 도구이자 성공의 상징이 됐다.

서도호 작가.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작가 서도호(62)는 세상이 자산으로서의 집에 천착하고 있을 때, 집을 통해 자신이 살았던 장소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장소가 건축물과 재료에 의해 어떻게 구현되고 개인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지 오랜 시간 조명해왔다. 천을 이용해 자신이 성장했던 성북동 한옥과 유학 시절 뉴욕의 아파트 등을 구현해 '집 짓는 미술가'로 불려온 그가 21년 만에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갖는 개인전에서 자신의 머릿속 상상을 꺼내 펼쳐 보인다. 그 미래적 결과물 속에 '과거'의 대표작 천으로 지은 집은 자취를 감췄다.

"'만약에'라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펼쳐지는 작업 과정을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라고 표현했다. 천으로 만든 집도 '지금 사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면'이란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만약에'를 통해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작품을 구상할 수 있게 됐다."

서도호, The Bridge Project (Selection of 180 Drawings), 2024, Mixed media, each 29.7 x 42 cm.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사변·추론·사색을 의미하는 전시명 '스페큘레이션스'는 현실의 물리적 제약을 벗어난 작가의 아이디어 구상과 작업 과정을 포괄한다. 제목에 충실하게 전시는 1991년 작가의 미국 예일대 유학 시절부터 같은 스케치북에 작업한 드로잉 작품 수백 점을 비롯한 건축 모형과 영상으로 가득 차 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는) 서도호의 브레인을 다운로드한 듯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층 '더 그라운드'에서 태평양과 북극해에 다리를 놓는 몽상을 담은 다리 프로젝트 도면과 영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앞서 서도호는 2010년 '완벽한 집: 다리프로젝트'를 통해 뉴욕과 서울의 중간 지점인 태평양 한가운데 집을 짓고자 했다. 이번에는 현재 사는 런던을 포함한 세 도시 중간 지점, 북극해 어딘가에 집을 짓기 위해 물리학자, 건축가와 협업해 조류와 바람을 견딜 수 있는 집을 상상했다. 그렇게 '다리프로젝트2'의 결과물이 드로잉 수백 장과 영상으로 구현됐다.

더 그라운드에서 서도호는 집과 거주공간에 대한 자기 생각을 관객에게 전한다. 전시장 복판에 우뚝 선 주홍색 구명복은 북극해의 극한 상황에서 일주일간 살아 있을 수 있는, 일종의 최소 생존 공간이다. ‘완벽한 집 S.O.S.(Smallest Occupiable Shelter)’란 제목의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작은 대피소이자 가장 작은 집의 형식으로 이 구명복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Secret Garden, 2012, Mixed media, display case with LED lighting, 199 x 180 x 82cm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2층 스페이스1은 스페큘레이션스 연작을 통해 집을 정주 장소가 아닌 이동 가능 매체로 다루는 작가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서도호가 나고 자란 서울 성북구 성북동 한옥은 런던의 한 다리 위에 있기도 하고,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 위에 불시착하기도 한다. 작품 '비밀의 정원'에서 그렇게 작가의 옛집은 16t 대형 트레일러트럭에 실려 아메리카대륙을 횡단하고 있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제이콥스 홀 7층 건물 꼭대기에 오두막을 위태롭게 설치했던 작품 '별똥별'도 32분의 1 스케일로 재현했다. 전형적인 정원 딸린 미국 중산층 주택이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제이콥스 홀 꼭대기에 불시착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은 작가가 앞서 언급한 '스페큘레이션스' 자체를 잘 보여준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서도호 작가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에 '완벽한 집 S.O.S.'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열린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010년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리버풀의 두 빌딩 사이에 작가가 살았던 집을 끼워 넣어 설치한 '다리를 놓는 집'은 이번 전시에서 모형으로 재현해 선보인다. 올해 4월 미국 워싱턴디시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앞에 설치돼 화제를 모은 작가의 빈 동상 좌대 설치작품 '공인' 또한 6분의 1로 축소해 공개한다. 특히, 아트선재 공개작에는 민중 조형상에 모터를 설치해 이들이 발맞춰 좌대를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3층 스페이스2에서는 한국과 영국의 두 공동주택단지 영상을 상영한다. 대구 '동인아파트'(2022)와 런던 주택단지 '로빈 후드 가든'(2018)의 철거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한 그는 마치 탁본으로 공간을 그대로 떠내듯 냉정하고 담담하게 공간에 묻어나는 주민의 삶과 공동체의 역사, 집의 이동과 시간의 흐름을 한 화면에 담아냈다. 집에 대한 기억, 공간에 대한 작가의 웅숭깊은 관심을 집약한 영상에서 충돌하는 시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집이 갖는 의미를 사회학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서도호 작가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열린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늘 여러 프로젝트를 스튜디오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작가의 고백만큼이나 방대하고 다채로운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관객과 만나지만, 서도호의 출세작인 '천으로 만든 한옥'은 전시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천으로 만든 한옥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는 발상에서 발전한 작업이고, 많은 작업 중 '빙산의 일각'"이라 말한다. 그는 "사실 제 머리는 셀 수 없는 프로젝트가 가득 채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집으로 대표되는 공간에 대한 작가의 사유, 그리고 무수한 아이디어만큼이나 변화하는 질문처럼 작가의 스페큘레이션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전시는 올해 11월 3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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