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랑 싸울 때마다 30만원, 이 일에 숨겨진 차별
제 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가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열립니다. 32개국 53편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작품 중 눈에 띄는 다큐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조영준 기자]
▲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어떤 프랑스 청년> 스틸컷 |
ⓒ EBS국제다큐영화제 |
01.
프랑스 남부 아를 지역에서 열리는 카마르그 투우(Course Camarguaise)는 조금 특별한 시합으로 통한다. 경기장의 투우사들이 황소를 해치지 않고 뿔만 만지며 점수를 획득하는 경기여서다.
경기장에 들어와 황소의 시선을 빼앗으며 뛰어다니는 이들은 '라제'라고 불리는 갈고리를 손에 들고 소의 머리에 매달린 작은 장신구와 끈을 낚아챈다. 소의 목과 등에 작살을 꽂으며 점차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종국에는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넣으며 죽이는 스페인식 투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극 중 벨카 벤하무(Belkacem Benhammou)와 자와드 바쿨(Jawad Bakloul)도 그들 중 하나다. 거리에 나가면 평범한 사람이지만 경기장에서는 유명 축구 선수와 다름없는 대접을 받는다. 모두가 자신만을 바라보며 환호하는 경험을 한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이제 경기장에서 느낀다.
제레미 바타글리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떤 프랑스 청년>(A french Youth)은 카마르그 투우로부터 열정과 자유를 느끼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두 청년 자와드와 벨카의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황소와 투우가 불안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구원해 줬다고 믿는 두 사람의 모습을 따르는 동안 관객은 생계와 이민자 문제와 같은 경기장 바깥에 놓인 현실적인 감정에 다다르게 된다. 그들의 삶이 황소와 마주하는 경기장 안에서만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격렬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평소 자신을 평범한 영웅들의 숭배자(Admirer of ordinary heroes)라고 설명하는 감독이 선택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이 작품은 이번 제21회 EIDF(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들이 겪는 곤경을 다루며 타자와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지를 질문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시대에 다리를 놓다'라는 영화제의 올해 슬로건과도 상응하는 부분이 있다. 사무국은 올해 선정된 작품들을 두고 다양한 가치관이 바르게 전달되고 화합과 연결의 가교 역할을 하기 바란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정당하지 않은 사회의 차별에 맞서 인간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이야기가 그 궤를 함께한다.
02.
"황소 덕분에 성공할 수도 있고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어요."
감독이 처음 들여다보는 자리는 경기장 안의 자리, 투우사로서의 삶이다. 바쿨은 처음 카마르그 투우를 시작했을 때 주변 모든 사람이 만류했다고 한다. 부상과 위험에 무방비하게 놓일 수밖에 없는 경기의 특성 때문이다. 축구를 하겠다며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와 부모를 속인 뒤, 부야르그에 있는 투우 학교에 가서야 입문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축구라면 필요하지 않은 '라제'를 어머니에게 들키게 되는 것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난 뒤다. 그도 크고 작은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발목이 비틀어지는 정도는 직접 맞출 정도가 됐고 한 번은 배가 뚫려서 수술까지 했지만 상처를 봉합한 실을 혼자 뽑아내기도 했다.
다친 친구도 많고 죽은 친구도 벌써 둘이나 있으니 이 정도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두려움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황소가 자신을 뛰지 못하게 만들거나 두 발로 스스로 걷지 못할 때까지는 투우사의 길을 계속 걸을 생각이다.
벤하무의 경우에는 8살 때 처음 황소를 보게 됐다. 어린 시절 싸움도 많이 했고 그로 인해 고생도 했던 그의 삶에서 소와 투우는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준 대상이나 다름이 없다.
그 후로는 투우사로서 경험하는 모든 과정이 마약과도 같았다. 자칫하면 어두운 길로 빠질 수도 있었던 인생을 붙들어준 카마르그 투우이기에 그는 적당한 결과로 만족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2위에 그쳤지만, 올해는 프랑스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서고 싶다. 그는 투우로 인정받은 덕분에 스스로를 더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굳게 믿는다.
서로 다른 시작이지만 두 사람의 자리는 같은 문제로 위협받는다. 이민자의 문제다. 마그레브의 전통과 이슬람이라는 종교 속에서 자란 두 사람은 경기장 안팎에서 '네 나라로 돌아가', '멍청한 아랍인', '더러운 아랍인' 등의 인종차별적인 구호를 들어야만 한다.
이는 투우와 자신이 서로를 구원했다고 믿는 긍지와 자부심과는 별개의 것이다.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과 같은 교육을 받았는데 자신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던 면접의 기회도 비슷한 경험이다.
▲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어떤 프랑스 청년> 스틸컷 |
ⓒ EBS국제다큐영화제 |
차별의 문제는 생계와도 결부된다. 카마르그의 투우사는 한 경기당 최소 200유로, 시즌 중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경기를 하면 600유로(한화 약 90만 원)는 가뿐히 벌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언제 큰 부상으로 그만두게 될지 알 수 없다. 꼭 부상이 아니더라도 시즌이 끝나고 나면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없는 것이 걱정이다. 그들이 밤마다 지정된 구역을 돌며 경비 일을 하는 이유다.
그뿐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기 위한 열정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도 차별은 숨겨져 있다. 함께 경비일을 하는 이들 중 대부분이 흑인이나 아랍인, 집시들이라는 사실이다.
벤하무와 바쿨의 어머니가 하고 있는 가정부 일 역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들 아니면 이민 가정 출신들이 도맡고 있다. 사람들이 꺼리는 힘든 일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과거 투우사였던 벤하무의 아버지가 처음 프랑스로 올 때 자식들을 키울 곳을 먼저 정하고 그다음에 직장을 찾았다는 이야기에도 동일한 맥락이 놓인다.
지금은 파킨슨병에 걸려 거동이 어려운 상태인 아버지. 너무 많이 부딪혀서 생겼다는 그의 병은 투우사의 일을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증거에 해당하지만, 그런 그의 역사 또한 이민자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간직한 현실이기도 하다. 아들의 투우에 관심이 없다는 아버지의 속내는 그 힘들고 지난한 길을 다시 걷고자 하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인지도 모른다.
04.
두 이민자 투우사의 삶, 경기장의 안팎을 고루 들여다보던 이 작품은 종반에 이르러 벤하무의 좌절과 극복에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공식 랭킹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대형 이벤트이자 투우사의 오롯한 명예만을 위한 이벤트인 '코카르드 도르'에서 황소의 뿔에 오른 허벅다리를 찔리며 근육이 파열되고 마는 순간이 그 시작점이다.
피부가 뚫리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큰 부상을 입고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당장 토요일 경기부터 출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그동안 이 다큐멘터리가 쌓아온 서사를 함축한다.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거칠고 험난했던 시간과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불안 사이에 존재하는 한 인간의 삶이다.
이렇게 완성된 내러티브는 챔피언을 결정지을 수 있는 마지막 경기, 황소에 맞서 경기를 치르는 그의 모습을 통해 승화된다. 제레미 바타글리아 감독 역시 이 순간의 장면을 가장 역동적이고 뜨겁게 전달하기 위해 정교하게 포착해 낸다.
▲ 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어떤 프랑스 청년> 스틸컷 |
ⓒ EBS국제다큐영화제 |
첫 장면에는 투우사들이 황소에 맞서 원을 그리며 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잠깐 등장한다. 사람의 다리가 2개인데 반해 황소의 다리는 4개이기에 직선으로 뛰어서는 붙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 곡선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여 황소 역시 두 다리에만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그 '나름의 방법'이라는 부분이 참으로 좋았다. 처음에 설명했듯이, 이 방법은 황소를 죽이지 않고 투우를 즐기기 위해 고안된 것이 분명해서다. 동물권의 측면에서는 투우를 그만두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선택이겠지만 지역의 전통과 가치를 단번에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동일한 측면에서 이 작품이 바라보는 '어떤 프랑스 청년'의 삶도 그렇다. 그들은 대를 잇는 동안에도 외부의 차별과 생업의 어려움에 맞서 꿈을 키워야 했다. 이 또한 '나름의 방법'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들 또한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경기장 안에서 곡선으로 움직이는 것은 함께 상생하기 위한 보법이지만, 비난에 맞서고 남들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을 대신하며 꿈을 키우는 것은 함께하기 위한 길이 아니라서다.
벤하무는 말한다. 자신은 프랑스 출신의 모로코인이 아니라, 모로코 출신의 프랑스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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